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모어 Jan 01. 2023

대도가 나타났다

경상북도 포항시 환호동 대도중학교 전경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급하게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잘못 건조한 티셔츠가 땀을 흡수해서 코 밑에서 쉰 냄새가 났다. 숨을 고르면서 자리에 앉아 책상 서랍 속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서랍 안 양쪽 교과서가 네 권 정도씩 쌓인 틈 사이로 손이 미끄덩히 들어갔다. 그곳에 있어야 했던 내 필통이 없었다.

 나는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방 내용물 위에 얹힌 교복 셔츠를 거두어내니 가방 속이 훤히 보였다. 학원 영어 교재 사이로 가방의 새까만 바닥이 보였다. 가방 보조 주머니와 속주머니를 뒤지는데 선생님이 들어왔다. 선생님은 번잡하게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앉히기 위해 두꺼운 나무 막대로 교탁을 내리치며 소리질렀다. 나는 나무 막대 소리 아래로 주변에 앉은 친구들에게 물었다.

 “내 필통 못 봤어?”

 친구들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조금씩 교실 안의 공기가 가라 앉고 선생님은 출석부를 펼치고 학생들의 이름을 호명한다. 출석 번호가 앞쪽에 있는 나는 세 번째로 출석을 선생님에게 확인시켰다. 그리고 다시 주변 친구들에게 물었다.

 “점심 시간에 내 자리에서 필통 가져가는 사람 못 봤어?”

 친구들은 고개를 젓는다. 나의 소유물이 나에게서 이탈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나의 이름을 다시 호명했다.

 “김도겸, 내가 조용히 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 떠들고 있어? 앞으로 나와.”

 “선생님, 누가 제 필통 훔쳐갔어요.”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쉬는 시간에 찾고 엉덩이 대.” 선생님은 나의 필통을 찾아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칠판에 대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등 뒤에서는 곧 둔탁한 소리가 몇 번 울렸다. 엉덩이는 아프지 않았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무언가가 나에게서 벗어났을 때 외로워졌다. 누가 나를 싫어해서 나의 물건을 훔쳐갔나.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나쁜 짓을 했던가. 아니면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싫어하는가. 적어도 그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다면 나의 물건을 훔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세상은 나에게서 10cm 정도 멀어졌다. 세상과 나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겼다. 선생님의 나무 막대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평상시 내 행동을 반성했다. 중학교에 들어와서 반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누구에게 그렇게 못된 사람이었나.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시덥잖은 장난을 치면 웃는 아이들 틈으로 웃지 않는 녀석도 분명 있을 터였다. 내 상상 속에서 그 녀석들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나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 이발할 때가 이주일 정도 지난 상고머리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징그럽다는 듯이 눈을 찌푸리고 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교실 뒤 사물함과 벽 사이에 놓인 쓰레기통을 뒤졌다. 범인은 필통 안의 만 원이 넘는 샤프만 필요했을 거다. 내가 쓰던 철로 된 필통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사용의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철이 쨍그랑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면서 이곳저곳이 음푹 파여 있다. 그 필통을 가지고 다니면 나에게 발각될 위험이 너무 크다. 따라서 범인은 고가의 필기구만 빼내고 필통을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야 했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쓰레기통이다.

 바로 전 시간에 훔쳤으니 필통은 쓰레기통의 상단부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겨우 한 시간 만에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쓰레기를 버렸을 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오른손으로 슥슥 훑으며 철로 된 필통을 찾았다. 손에 끈적한 액이 묻었다. 초코 쭈쭈바의 내용물이었다. 초코는 타액과 섞여서 수십 개의 거품이 일어 있었다. 휴지로 초코를 닦는데 타액이 길게 늘어졌다. 나는 욕지거리를 하며 쓰레기통 옆에 있는 사물함을 주먹으로 마구 치고 싶었다. 그러지는 않았다. 나를 싫어했던 범인이 더 나를 싫어할지도 모르니까. 욕을 삼키는 만큼 울분이 올라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끈적한 타액을 씻어내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타액이 수도꼭지에 묻지 않게 왼손으로 물을 틀었다. 물은 창문으로 들어온 빛을 산란시키며 손을 씻어냈다. 나는 비누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손 안에서 10바퀴를 돌렸다. 비누거품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았다. 대신 빨랫비누에서 나는 것과 같은 방향제 냄새가 났다. 그래도 손은 깨끗해졌다. 손 끝에 오물이 묻었을 때는 냄새를 맡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곳에서 나는 냄새는 콤콤한 방향제 냄새뿐이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눈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얼굴에서 침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복도에는 여전히 학생들이 뛰놀고 있었다. 나는 벽에 붙어 아주 천천히 교실로 향했다. 교실 안도 여전히 부산스러웠다. 교탁 옆자리에서는 덩치 작은 녀석을 비슷하게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다음 시간의 교과서를 꺼내려고 교실 뒤 사물함을 열었다. 사물함 안에는 필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필통을 열었는데 가장 비싼 만 오천 원짜리 일제 샤프만 없어져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 몇 번이나 또 필기구를 도둑맞았다. 필기구를 도둑맞아도 그리 놀랍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교실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필기구가 사라졌다. 친구들은 필통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몸을 부딪히며 장난을 칠 때면 친구의 왼쪽 가슴팍에서는 단단한 필통이 느껴졌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교실에는 도둑놈들 천지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친구는 많았다.

 그리고 2학년이 끝날 무렵, 대도는 젊은 음악 선생님의 최신형 아이폰4마저 훔쳤다. 나는 그날 저녁, 노을이 벌겋게 들어오는 교실에서 교탁에 엎드려 있는 음악 선생님을 봤다. 1년 전 교실에서 나의 엉덩이를 때렸던 선생님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2021 새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