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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Oct 04. 2018

매일 변화하는 우리를 사랑해

에브리데이(Every Day, 2018)

            내가 최초로 이야기 장르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쯤이었다. 당시 나는 신화의 팬이어서 신화 팬픽을 썼었다. 해리포터 팬픽도 썼었다. 신화 팬픽은 남자끼리 커플링을 해서 쓸 수도 있었고, 해리포터 팬픽은 헤르미온느랑 말포이를 이어주는 팬픽도 썼었다. 하여튼 좋아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것들에 대한 2차 창작으로 글쓰기를 시작했었다. 나는 이미 그 캐릭터들의 성격을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원하는 새로운 성격을 입혀서 그들을 다시 만들어내곤 했다. 팬픽의 존재 이유란 그런 거였다. 내 외모적 이상형이 내 성격의 이상형인 모습을 보기 위한 가상 시뮬레이션 같은 거였다. <에브리데이>의 주인공 리아넌(배우 앵거리 라이스)에게 우연히 등장한 A는 마치 리아넌이 쓴 팬픽 같은 사람이다.


   

          <에브리데이>(Every Day, 2018)의 리아넌(배우 앵거리 라이스)의 남자친구인 저스틴(배우 저스티스 스미스)은 누군가에게 연애 상담 하면 헤어지라고 할 사람이다. 리아넌은 그걸 알지만 헤어지라는 말 듣기가 싫어서 연애 상담도 하지 않을 성격의 여자 고등학생이다. 저스틴은 리아넌을 악세사리처럼 친구들 모임에 데리고 다니기는 하지만 절대 그녀가 원하는 데이트는 해주지 않는다. 자신은 파티에서 친구들과 놀고, 리아넌은 혼자 홀에 덩그러니 서 있는 식이다. 하지만 리아넌은 며칠 전 저스틴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데이트해주었던 시간에 기대어 저스틴이 언젠가 그때처럼 대해줄 거라고 믿는다. 파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슬쩍 틀지만 며칠 전과 달리 저스틴은 반응조차 없고, 뜬금없이 다른 남자아이가 능숙하게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리아넌에게 다가온다. 둘은 처음 봤지만 마치 원래 알았던 사이처럼 춤을 춘다. 그는 자신을 네이든(배우 루카스 제이드 주먼)이라고 소개하고 혼자인 리아넌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는 맥락없이 급작스럽게 도망치고, 다음날 뉴스에 전날과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나타난 네이든이 ‘악령에 씌였다’는 증언을 하며 등장한다.


   

          리아넌은 혼란스러워진다. 네이든을 찾아가보지만 네이든은 파티한 날의 기억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리아넌과 같은 또래의 한 여자아이가 자신은 네이든이었고, 저스틴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리아넌은 도망치지만, 저스틴이 너무나도 잘해주었던 날이 잊히지 않아서 그 아이를 찾아가고, 그 아이는 자신을 A라고 소개한다. 이 영화의 마케팅에 잘 드러나 있듯이, A는 매일 모습이 변하는 사람이다. 이 설정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 2015)와 비슷하기 때문에 A가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결말이 예상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뷰티 인사이드>와 다른 길을 간다. 


             <에브리데이>의 A는 매일 특정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른 사람의 육체로 깨어난다. 이미 판타지 장르에서 빙의 등을 통해 영혼이 타인의 육신에 들어가는 설정은 하나의 유형이 되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이후의 규칙은 특별하다. 타인의 몸에 하루 머무는 동안, 그 사람의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생활할 것. 영화의 마케팅은 리아넌이 매일 바뀌는 A의 외모를 비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으나, 영화는 오히려 A를 사랑하는 리아넌의 시선을 통해 A가 매일 깨어나는 사람들 개개인의 인격이나 개성을 존중하게끔 만든다. 단순히 외모의 잘남과 못남이 아닌 외형, 인종, 성격, 성장 배경 등의 차이를 고유한 매력으로 부각되게끔 연출한다. 통상적인 시선으로 남성으로 패싱되는 여성, 엄격한 집안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학생,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 학생 등 다양한 외형과 배경들을 가진 인물들이 리아넌에게 다가오면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중략)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방문객, 정현종)라는 말처럼 리아넌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면서 매일 익숙하지만 새로운 A를 통해 세상을 접하게 된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의 로틱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지점도 이 영화의 강점이다.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홍이수(배우 한효주)와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 것은 오직 생물학적 남성에 국한된 것에 비해, 리아넌은 남성, 여성,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하는 하나의 존재로서 A를 만난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놀라운 지점은 A가 리아넌으로 깨어나는 날이다. A는 리아넌으로 깨어난 날, 리아넌의 가족, 남자친구 저스틴을 만나 리아넌이 어떤 환경에 있는 사람인지 겪는다. 계속해서 타자로 사랑하다가 직접 본인이 되어 그 존재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좋아하는 상대로 몸이 변화되었을 때 성적인 접근으로 묘사를 하거나 자신이 상대방이 된다면 하고 싶었던 행동을 무작정 하고 보는 피상적인 접근이 아닌, 너무나 소중한 사람으로 깨어났기에 리아넌의 일상을 흔들지 않으면서 조용히 지켜보고 작은 변화의 씨앗만을 남겨둔 채, 소중한 사람으로 깨어나서 행복했다고 편지를 쓰고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음날 깨어난 리아넌은 a가 자신의 몸에 들어왔던 것을 기억하고, 그동안 의심했던 A의 진정성과 그의 삶의 피로함을 직접 깨닫게 되어 A라는 존재를 존중하고, 더욱 빠져들게 된다. 


                A의 특별한 정체성을 경험한 후, 리아넌은 그 정체성을 좀더 이타적인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자살을 결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소녀로 깨어난 날에는 그 몸에 하루 이상 머물러서 소녀로서 부모에게 자신의 자살 계획을 말해 생명을 구한다. 이 상황에서 A의 정체성을 둘러싼 둘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A는 하루 이상 타인의 몸에 머무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리아넌은 A가 자신의 몸에 들어왔을 때 남기고 한 작은 씨앗들로 인해 가족과 남자친구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에 좀더 과감하게 활용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욕망이 리아넌과 A의 로맨스에 끼어들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커진다. A는 리아넌과 같은 학교 남학생인 알렉산더로 깨어난다. A가 경험한 알렉산더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신념이 깊은, 게다가 리아넌의 이상형인 슬림한 몸에 넓은 어깨를 가진 완벽한 이상형. 리아넌은 A에게 알렉산더의 몸에 더 머물 것을 부탁한다. A가 알렉산더의 몸에 더 머물면서 가족과 가까웠던 그를 어긋나게 만들지만 리아넌은 매일 모습이 바뀌는 A 와 만나면서 자신의 이상형과 만나는 기쁨과 누군가에게 그를 소개할 수 없었던 갈등을 해소한다. 하지만 리아넌과 A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언제까지 이 사랑이 유효할까?’



            둘의 사랑은 앞서 말했던 이 영화에서 A가 특별하게 설정된 지점을 지킬 때 지속될 수 있다. ‘매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깨어난다’, ‘그 사람의 일상을 해치지 않는다’. 이는 정해진 시간 동안만 만나고 끝나게 되는 사랑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어제 만났던 다른 사람, 자신까지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이다. 그것을 거스르고 변화를 거부하는 방법은 없다.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랑도 이러한 물리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매일 달라지는 육체를 갖고 리아넌 앞에 나타나는 A가 판타지로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거대한 시간이라는 물리 법칙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인간 생애에 대한 거대한 비유인 것이다. 결국 이 법칙을 어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리아넌과 A는 이별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별은 단순한 헤어짐이 아닌, 서로의 인생에 자국을 남기는 어떤 것이다. 사람의 얼굴에 시간이 주름을 남기듯이.



            리아넌은 매일 변하는 A를 통해 변화하는 다양한 세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 스스로도 변화한다. 조울증이 있던 아빠와 그런 아빠가 경제 생활을 그만두면서 돈을 벌기 위해 일에만 집착하게 된 엄마, 집안일에 무심한 척 하지만 사실 상처받았던 언니가 있는 가족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던 남자친구 저스틴과도 헤어진다. 사랑하던 A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원래의 알렉산더에게 먼저 다가간다. 


            우리는 좀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매일 낯설지만 매력적인 타자(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기에 다른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내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타자가 되어보는 경험, 다양한 타자를 바라보는 포용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리아넌과 A는 로맨스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평생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삶에 변화라는 법칙을 온몸으로 포용했기 때문에.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일시 : 2018년 9월 27일 목요일 19시 30분

장소 : CGV 용산아이파크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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