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속아주는 연습

by 진희도

오늘은 내가 즐겨 마시던

따뜻한 바닐라 라테 대신
느끼한 크림이 얹힌
차가운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그러고 싶었다.
이런 사소한 선택이라도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생이 나를 속일 때마다
나는 처음도 아닌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도
몸은 늘 처음처럼 반응한다.
맞다 보면 단단해질 법도 한데,
맷집은 생기지 않고
아픔만 더 짙어진다.


마치 이물질을 품은 진주조개처럼.
겉은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에서는 계속 쓰린 시간이 흐른다.
조개는 그런 시간을 잘 견디면
그 아픔으로 진주를 만들어 낸다지만,
나는 그저
바닐라 라테에서 아인슈페너로
하루의 맛을 바꿀 뿐이다.


그래도 다음에 또
인생이 나를 속이려 들면,
그때에도 그냥 속아 주기로 한다.
포기하고, 실망하고,
조금은 더 움츠러들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면 너무 잘 속는 나를 보고
인생도 언젠가는
조금은 미안해할지도 모르니까.


진주 같은 건 만들지 못해도,
나는 오늘도
내가 고른 커피를 마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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