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한 마음

차 한잔의 값

by 진희도


난 지금 멍하다.


그리고
자책하려고 한다.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내 얼굴엔
‘우습게 여겨도 괜찮습니다’라는
문구라도 쓰여 있는 걸까.


이용당했다는 기분,
결국
호구가 된 것 같은
씁쓸함이 밀려온다.


그 사람들과는
더 이상 관계를 맺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고작 차 한 잔 얻어먹고
마음이 체한 것만 같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자주 마주하면
피곤한 사람이라는 걸.


내 직관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데,
늘 내 ‘도덕심’이 문제였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강박,
어떻게든 존중해야 한다는 오지랖.


그 선량함이
나를
만만한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닌 건

역시 아닌 거다.


이제부터는
내 안목을 믿어보려 한다.


설령
내 판단이 틀렸을지라도,
내 감정과 생각을
먼저 존중할 것이다.


좋게 보려 애쓰다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


그러고는 다시
‘나는 쉽게 상처받는 약한 사람이구나’ 하며

나를 괴롭히는 일.


차라리
거리를 두는 사람이 되겠다.


모두와 잘 지내려 애쓰는 대신
나와 잘 지내는 사람만
곁에 두는 쪽으로.


이 불쾌한 경험 덕분에
글감이 하나 생겼다.


차 한 잔의 값으로는
꽤 괜찮은 수확이다.


무겁게 얹혀 있던 마음을
이 글에 쏟아내고 나니
이제야 속이 조금 풀린다.


내 마음을 체하게 했던 그들에게
내 글의 재료가 되는
영광을 선사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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