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친 피아노

긴긴 이야기의 시작

by 에원

바이올린에 대한 책에서 '피아노'라는 주제로 글을 처음 쓰다니,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그러나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유를 묻는다면 피아노를 제외할 수 없을 것 같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유 자체가 피아노 때문이니까.


위에 사진을 보면, 전남친 주제에 피아노는 정말 멋진 것 같다.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해왔고, '현남친'인 바이올린을 앞두고 말하기 뭐 한 말이지만, 피아노는 참 내 스타일이다. 멋있고, 우아하고, 소리도 깽깽 대지 않고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저 사진은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첩을 뒤적여도 나오는 건 한두 장밖에 없는 걸 보니, 전남친을 그렇게 그리워하진 않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는 7살 무렵 때 피아노를 배웠다. 유치원에서 셔틀을 타고 학원에 갔다가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오는 형식으로 다녔던 기억이 난다. 꽤 큰 학원이었고 엄청 많은 개인 연습실과 2~3개 정도의 큰 거실 같은 형태의 개인지도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렸던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꽤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유치원에서 나왔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지금부터 차차 다룰 친한 친구가 학원을 같이 다니기도 했고, 좋아하는 언니도 있었다.


물론 피아노 학원이 어린아이에게 도전이 없는 공간은 아니긴 했다. 대표적으로, 학원 밖으로 나와서 가야 하는 화장실은 어찌나 무섭던지. 그래서 나같이 어린애들은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선생님께 얘기하면 선생님이 아무나 불러서 같이 가라고 시켰다. 우리를 위해 심부름을 맡았던 사람들은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들'. 말도 섞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위안이 참됐다...


화장실 밖에서 언니가 기다리는데 그런 언니들이 그냥 가버릴까 봐 초조하게 계속 물어봤었다.

"언니, 거기 있지? 아직 있지?"

"어~"

그런 대답을 몇 번 들어야지 안심이 되었다.


사실 우리 같은 어린애들보다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조금 실세? 였다.


학원 앞에 엘리베이터 앞에 넓은 공간이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그 앞에 줄 서서 셔틀 탈 시간이 되길 목 빠져라 기다리기도 했다. 학원 시작하기 전에 거기서 불닭을 먹고서는 맵다고 자기 가방에 우유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던 언니들도 있었다.


한때는 우리가 셔틀을 기다릴 때 다른 지역에서 약한 지진이 일어났다고 재난 문자가 왔는데, 그걸 본 언니들이 엘리베이터 앞 공간 불을 끄고 모두 엎드리자고 했다.


음...


생각해 보니까 그 '언니들'도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와 내 또래 애들은 시키는 대로 했고, 결국 옆 바둑학원 선생님의 제지로 그 난리가 끝났다.


학원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정말 재밌다. 그때는 무섭고 버거웠던 것들도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수많은 일화가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선생님은 청소기를 미시면서 이 학원은 너무 청소하기 힘들다고 내게 토로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구조가 좀 그렇게 생기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이 나보고 개인지도 하자고 부를 때,

"에원아~~~"

하면 옆에 앉아있던 언니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날 다시 불러보라고 했다. 선생님이 다시 부르자...

"에원아~~~~~~"

"오지 마~~~"

그렇게 합창하는 언니들은 까르르 웃었었다. 난 아직 그 정도 유머에 웃을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는데ㅎㅎ


어떤 언니가 자신과 친한 오빠와 같이 욕을 섞어가며 얘기하던 적도 있었다. 나는 한번 그 욕을 따라 했다. 언니 오빠들이 웃으면서 나보고 하지 말라고 말렸다. 나는 "응? 이게 뭔데?"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서 일부러 그 욕들을 이상하게 따라 했었다. 그 언니오빠들 반응이 웃겨서.

연습을 마치고 그날 외울 분량을 외우면 주는 마이쭈도 좋아라 받아먹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재밌던 시절 같다. 지금은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나는 왜 그렇게 싫어했을까...




그렇다.


나는 피아노를 싫어했다.

학원 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다. 박자 세는 것도 진짜 싫어했고 낮은음자리표를 잘 읽을 줄 몰랐다. 선생님이랑 수업할 때 선생님이 나한테 신경 쓰는 것도 싫었다.


혼자 연습실에 들어가 연습하는 것도 무서웠다. 연습실에 들어와 정해진 횟수만큼 연습을 하고 나와야 했는데, 체크지에 연습한 횟수만큼 표시하며 연습해야 했다.

혼자 피아노밖에 없는 좁은 연습실에서 문 닫고 있는 게 너무 무서워서 들어가자마자 체크지를 모두 체크하고 나오기도 했다. 내가 들어가서 2초 만에 나오는 걸 본 선생님은 눈이 휘둥그레지셔서 날 바라보았었다.


"에원아, 벌써 다 했어?"

"네!"


나는 선생님이 믿을 거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선생님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되물으셨다.


"그렇게 빨리 할 수 없을 텐데?"

"에?"


그때는 몰랐다. 2초 만에, 아무리 기본적인 곡이더라도, 20번을 다 끝낼 수 없다는 걸.

결국 선생님 옆에서 다시 했다.


그렇게 싫어했는데도 꽤 오래 피아노를 다닌 이유는 아마 친구들과 언니들이 재미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만둘 줄 몰라서였나?ㅎ




연습실 중에서 '모차르트' 연습실이랑 '바흐' 연습실이었나, 한 연습실 안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 거기서 또 문을 통해 다른 연습실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의 방들이 있었다. 나는 그 방을 정말 좋아했었다. 밖과 연결된 문을 닫으면 선생님은 두 명 모두 연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나와 다른 아이가 함께 놀 수 있었으니까.


실제로 거기에서 나와 많이 놀지는 못했지만, 내가 그 안에서 같이 연습할 수 있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이 있었다. 유난히 내가 좋아하고 잘 따르던 언니인데, 이름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 생김새도 잘 모르겠다. 몇 학년이었는지도...

굉장히 성숙했던 것 같은데 내가 어려서 그렇게 느꼈던 걸까.


그 언니는 착해서 내가 같이 그 연습실에 가자고 하면 같이 가 연습했고 내게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동안 내 유일한 친구였던 그 언니는 진짜 어려워 보이던...? 곡들을 연주했었다. 내가 수업을 몇 분 만에 끝내고 방 2개가 같이 달린 연습실에서 계속 기다려도 언니의 수업은 끝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언니랑 같이 연습을 시작하고 싶어서 계속 기다리고, 언니 수업하는데 옆에서 기웃거리고...

그러다가 언니 수업이 끝날 때 즈음 연습 안 한다고 잡혀가서 선생님이랑 같이 연습했던 슬픈 기억이 남아있다ㅎㅎ 그때 '헉! 나 기다렸을 텐데?' 하며 날 바라보던 그 언니의 표정이 묘하게 기억난다. 얼굴은 기억 안 나는데, 표정만.


그 방 두 개의 연습실을 생각하니, 그 언니 말고 다른 사람도 생각난다. 지금까지도 말을 섞으며 지내는 친구가 그 학원에 같이 다녔었다. 나보다 늦게 학원을 등록해 뒤늦게 합류한 친구였다. 동갑이고 그땐 꽤 친했으니까, 그 방에 걔랑 같이 들어가서 놀곤 했다. 연습 안 하고, 수다 떨고, 놀고, 그러다 찔려서 몰아서 연습하고.


하루는 파란 토끼 삔 두 개를 하고 간 날이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와 연습실에서 그 핀으로 인형놀이 하면서 놀았었다. 아직도 그게 상세히 기억날 정도라면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을까...

그다음에 그렇게 놀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아마 엄마는 아직도 내가 피아노 학원에 왜 굳이 그 핀을 고집했는지 아직도 모르실 것이다.




당연히,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잘못도 했다. 예의 없는 행동에 그치지 않고 정말 심한 잘못을 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처음 고백하자니 뭐 하지만, 일종의 도둑질이랄까.


선생님들은 우리가 개인지도 할 때 잘하거나 외울 거 다 외워오면 비타민C 1개를 주셨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작고 노랗고 동글동글한 비타민C. 난 그게 너무 맛있었다. 또 하나면 얼마나 감질맛이 나던지. 그래서 몰래 꺼내먹었다. 한 번도 아니고 꽤 많이. 처음에는 한두 개, 나중에는 아예 입에다 대고 붓는 정도로 많이 먹었다... 도둑이 점점 대담해지는 심리랄까.


처음에는 굉장히 두려워하면서 조심조심 비타민C를 가져갔지만, 나중에는 거의 대놓고 하기도 했다. 아까 그 친구랑 놀 때 비타민C 통을 들고 피아노 의자 밑으로 숨기도 했다. 숨어서 먹으려는데 친구가 계속 말 걸었었다. 걔가 바보도 아니고, 당연히 눈치챘을 텐데 난 뭘 믿고 그렇게 대담했던 건지...


"에원아 밑에서 뭐 해??"

"아 그냥."

"그거 왜 들고 간 거야?"

"안 먹을 거야, 냄새 맡으려고."


그 비타민C를 한꺼번에 많이 입속에 털어 넣으면 그게 녹아 거칠거칠해지면서 혓바닥이 까슬까슬한 느낌이 들었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 느낌을 갈구했다. 선생님들께는 죄송하다. 아마 그때 내가 먹어치운 총합은 한통을 넘었을 것 같다...


꼬리가 너무 길면 밟히는 법이다. 결국 선생님이 가신 줄 알고 비타민 통을 집어 들었을 때 선생님이 다시 들어오셨다. 심지어 그때 뚜껑을 열고 얼굴에 가까이 들이밀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

"먹은 거 아니에요, 냄새만..."


그렇게 중얼거린 기억이 나지만, 그게 선생님께 들렸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안 들렸을 것 같다. 아직도 그분께서는 몰래 비타민을 먹다가 걸린 후에 그냥 말없이 걸어 나간 나쁜 애로 기억되고 있을 수도...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 얼굴은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일들은 이렇게 기억하고 있네요 ;)




피아노 학원은 내가 유치원 이후에 느낀 처음의 공동체 생활이었다. 따르기 싫은 규칙이 있어도 따랐고, 정해진 방식대로 움직였다. 또 내가 중심이 아닌, 그저 부속 구성원이었던 첫 공동체였다. 인원이 많고 초등 고학년이 실세인 학원이라서 할 것을 못 찾고 방황하거나 혼자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도 그때 겪었다.

또한 피아노는 내가 처음 접한 음악, 혹은 악기이기도 하다. (주로 때려 부수기 용이었던 실로폰 제외.)


나는 어렸다, 그리고 지금도 어리다. 피아노는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게 도와주지 않았을까? 여러 번 회상을 하다 보니 첫 악기였던 피아노가 어느 정도 그리워진다. 이런, 전남친이 그리워지면 안 되는데.



그럼 나는 왜 피아노가 아닌 바이올린과 7년을 함께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아서 다시 올 다음을 위해 오늘도 회상한다.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