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인연들.

나, J, C

by 에원

저번주 오케스트라 신입생 오디션을 시작으로 오케스트라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3학년이 되니 같이 들어왔던 친구들 대부분이 나갔다. 바이올린뿐만이 아니라 다른 파트에서도.


퍼스트 바이올린에선 3학년은 두 명뿐. 나와 악장 친구.

애초에 24명의 바이올린 연주자들 중에서 3학년은 네 명뿐이다. 퍼스트 2명 세컨 2명.

오케스트라는 자신이 지원서를 내냐 안내냐로 갈리기에 많은 아이들이 올해 하지 않는다는 걸 첫 모임 때서야 알게 되었다.


역시나 신입생인 1학년은 득실득실. 같이 들어온 애들, 같은 파트가 된 아이들끼리 똘똘 뭉친다. 나도 그랬듯이. 2학년들도 마찬가지다. 대게 2학년때까진 같이 하니까.

그렇게 같이 만나 같이 연주한 친구들은 상당히 특별해진다.


오케스트라뿐이 아니더라도,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고 말 몇 마디 나누어본 적 없어도,

같이 만나 같이 연주하면 무언가 달라진다.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친구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의 찬란했던 바이올린과의 인연에서 마지막을 장식해 준 두 친구.

그들은 날 그리 특별히 여기지 않는 것 같긴 한데ㅎ 오지랖이랄까 난 그 두 명이 참 정겹다.





두 친구는 C와 J.

내 이야기에 꽤 나왔던 친구들이다.

어렸을 적부터 알던 사이인 J와 기억나지 않을 어느 순간부터 같이 합주실에 있던 C.


J는 어릴 적 나보다 늦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그러나 분명 바이올린에 대한 흥미나 열정은 내 것보다 대단했다. 진도가 빠르단 이유만으로 내가 걔보다 잘났다고 생각했던 어릴 적 나는, 코로나 공백기로 인해 레슨 진도가 비슷해지자 J가 꽤 잘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C는 키가 커서 처음 보았을 때 나보다 오빠인 줄 알았다. 엄마가 '쟤 너랑 동갑인데 되게 잘하지 않냐?' 이런 이야기를 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친구 역시 나보다 열정이나 흥미가 뛰어난 듯했다. 처음 정체를 알아낸 그 합주날에도 꽤 잘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으며 자신의 차례가 끝난 후에도 무대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손가락으로 나중에 배울 음을 짚어보곤 했으니.

더불어 나중에 합주 후 C 어머니랑 대화하다 알게 되었는데, C가 다리가 다쳐 나보다 진도가 느려졌을 때 굉장히 속상해하기도 했다고 한다ㅎㅎ


코로나 공백기가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었고 그를 통해 나는 수많은 인연들을 기억 속에 묻어버렸다. 그중 하나가 J, 하나가 C.


그러나 코로나가 끝나고 '연장자' 위치에서 Y언니와 더불어 이 둘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J가 학원을 계속 다닌다는 것은 얼추 아는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반가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합주를 간다는 사실에는 들떠 있었지만 옛날 인연들을 만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보자 J는 많이 성숙해졌고 내성적으로 변했으며 과거의 일이나 인연들을 유난히 잘 기억하는 나와 달리 그다지 우리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내가 말을 걸어야지만 대화하는, 그런 사이가 유지되었다.

대화할 때 어색하진 않지만 J가 내 눈을 마주하지는 않는, 그런 관계ㅎㅎ


C는 다른 중학교에 바이올린 이외에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대화하기도 참 어색한 관계였다.



둘 다 나보다 크고 내성적인 남학생들이었기에 어쩌면 나와 자연스레 대화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든 일일수도.



오히려 이 인연은 셋 다 말하지 않을 때에서야 가장 찬란히 빛났다.

셋이서 연주할 때.

그때서야 나는 그 인연을 충분히 관심 갖고 즐길 수 있었으며 음악이란 핑계 하나로 셋을 엮어놓을 수 있었다.




6학년이 되며 서서히 합주의 형태가 바뀌었다.



원래 정해진 시간에 어린아이들이 와서 1차 합주를 한다.

대부분 1~4권까지 할 줄 아는 아이들로 진짜 조그만 애들도 많았다.

유치원생~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수많은 부모님들을 동반한 채로 반짝이는 신발을 신고 오는 그들은 한바탕 연주를 마친 후 우르르 나서곤 했다.

멀뚱히 앉아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로, 오늘 합주나 끝나고 놀자 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서로서로 이어나갔으며 아까 읽다 만 만화책을 집어 들기도 했다.

어머니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시며 나와 바이올린을 챙기시고 아이들을 억지로 끌고 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합주가 시작된다.

선생님이 우리를 부르면 나와 J, C는 악보대와 악기를 들고 합주실로 들어가 무대 뒤편에 선다.

대충 4~6권 정도를 할 줄 아는 애매한 아이들은 우리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이미 무대 위에 서있는 그들의 눈빛이 우리를 졸졸 따라오며 그때가 사실 제일 부담스럽다.

무대 앞에는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 정도만 앉아계신다. 가끔 흥미 있는 어린아이들.



나와 J, C의 부모님들이 오시지 않은지는 꽤 되었다.

어쩌면 당연하다. 굳이 지켜봐야 할 나이도 아니고, 1,2년 연주하던 악기도 아니고.



그렇게 두 번째 합주가 시작된다.


곡을 연주하고 또 연주하고 권수가 올라갈수록 우리 앞에 서있던 애들은 하나 둘 엄마 곁으로 빠진다. 6권을 할 줄 아는 애들은 우릴 제외하고 초반에는 한 2명이었던 것 같다.

6권에 후반부 곡이 끝나면 묘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6권을 계속하냐, 아니면 7권으로 넘어가나.


선생님이 곡명을 항상 호명하시는데,


"7-1번!"


외치시는 순간 두 아이들은 악기와 악보대를 들고 내려간다.

엄마들은 악기와 악보대를 받는다.

이제 무대 위에 서있는 건 우리 셋 뿐.


초반에는 아이들과 부모님 모두 앉아서 우리의 연주를 듣는다. 중후반에도 몇 번 그랬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시간은 늦고 우리 연주는 길며 인내심은 바닥난다.

주로 어머니들이 하던 이야기를 하거나 바이올린을 정리하는 시간, 그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 떠난다. 우리의 연주는 한두 곡만 들려주는 셈.




그때부터 우리의 무대는 진짜 시작한다.


합주실 안에 있는 건 선생님, 그리고 우리 셋.


소리는 작다, 그렇지만 빈약하진 않다.

4/4의 성인용 바이올린을 쓰는 두 남자들과 그보다 한 치수 작은 걸 쓰는 나, 우리 셋의 소리는 꽤 견고했던 탓이다. 더불에 앞에서 같이 연주해 주시는 선생님 덕도 있고.


7권은 우리 모두 레슨 중이므로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고음의 영역도 불안정했다.

나는 가끔 우리 연주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이 사실을 감추려 노력하곤 했다.


셋이 된 이후로 선생님은 독주를 잘 시키지 않으셨다.

어쩌면 당연한 건가.

에어컨 옆으로 보이는 창문의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지만 우리는 전부 연주할 때까지는 떠나지 않는다.

마지막 연주가 끝이 나면 선생님은 늘 하시던 말씀을 하신다.



'차렷, 선생님께 인사.'


바이올린을 대충 들거나 옆에 끼고 있는 우리는 인사를 한다.

선생님도 '부모님께 인사'를 외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의 연주는 늘 외로웠으니.

차례대로 악보대를 들고 악기를 들고 합주실 밖으로 나간다.

대게 J, 나, C의 순서였다.


밖으로 나가면 C의 아버지가 계셨다.

C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 위해 늘 오셨지만, 아무리 일찍 오셔도, 아무리 우리의 연주가 늦어져도 합주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으셨다.

키가 큰 C가 어떻게 그 유전자를 받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C의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 C의 악보대를 받고 선생님께 인사하신다.


먼저 나간 J는 소파 가장 안쪽에 있던 자신의 케이스에 정리를 시작하고

바이올린 케이스가 레슨실에 있는 나는 레슨실 안으로 들어가 정리를 시작한다.

C도 아버지 옆에서 정리를 시작한다.


하나 둘 정리를 마치고 조용히 학원을 떠난다.



'안녕히 계세요'


를 말하고 혼자 떠나는 J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C, C의 악기를 등에 매신 채 선생님과 인사를 한 3차례 주고받는 C의 아버지.

그리고 딱히 인사를 할 사이는 아니라 레슨실 안에서 멍 때 리던 나.

그게 반복되길 몇 주 몇 달 거의 몇 년. 이런 미묘한 공기의 반복 속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안정감이 있다.





우리는 나름 잘하는 포지션의 아이들이었으므로 어린애들과 합주할 때는 모범이나 시험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우리가 다 같이 처음으로 '백만장자'라는 곡을 연주할 때는, 이미 장기자랑으로 그것을 연습했던 내가 독주로 선보였다.


'두대의 바이올린'을 합주로 연주할 때면 (두 개의 다른 노래를 연주, 두 개가 어울리며 하나가 됨)

더 어려워 5권에 수록된 두대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건 우리의 몫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다. 옛날 곡들은 기억이 안 나기 때문..)


6권에 '라폴리아'였나, 극악의 난이도의 한 곡을 연주할 때는 특정 구간에서 우리를 포함한 단 한 명도 제대로 연주할 줄 몰랐다.

음은 알았으나 도저히 그 적절한 타이밍에 손가락을 그 자리에 놓을 수 없었다. 놓다 하더라도 활을 그을 수 없었다.

대부분 연주하다 부분을 노치면.... 연주하는 척을 한다.


합주니까^^


옆 친구 거 슬쩍 보면서 대충 활만 맞추면 티가 잘 안 난다.

더불어 우린 오랫동안 한 곡들이라 다시 따라잡을 수 있고. 어린애들도 일명 '활싱크'를 애용한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기 위해.)


그렇지만 라폴리아 그 구간에서는 모두가 연주를 못해 선생님을 제외하고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멍청한 우리는 활만 움직이고 소리는 안내는 꼴.


그러던 어느 날 J가 그것에 성공했다.

그 이후로 그 구간에 나오는 소리는 둘이 되었다.

나와 C는 끝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졸업연주회였나, 아니면 그냥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 싶으셨었나,

우리 셋이 한 곡을 엄청 열심히 연습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 셋과 선생님만 남은 합주 때,

갑자기 한 명씩 무대 밖으로 나와 무대를 마주 보고 연주하라셨다.

그럼 셋이서 무언가 이상한 삼각형 모양으로 서로를 마주 보게 되는데, 상당히 어색했다.


J와 C가 나왔을 때 그들은 앞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내성적인 둘은 참.

선생님이 옆에서


'나 한번 체크, 앞에 친구들 한번 체크 이렇게 확인하면서 연주해!'


를 외치셔도 눈을 잘 들지 않았다.

설사 앞을 보더라도 죽어도 날 보지 않았다ㅎㅎ

차라리 서로를 보는 게 낫다고 여긴 걸까, J는 C를 보았고 C는 J를 보았다.


내가 나갔을 때 난 공평히 둘 다 보았다.

둘 다 내 눈을 마주하진 않았지만.

그렇지만 그렇게 삼각형으로 섰다는 사실 만으로도 무언가 '합주'이상으로 연주를 같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J가 아닌 C와 자발적으로 말을 나눈 건 한번뿐인 것 같다.


선생님이


"두대의 바이올린 할게요!!"


를 외치셨을 때 나와 J, C는 우리가 5권을 연주해야 하는지, 같이 4권을 연주해야 하는지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막 반주를 켜시려고 하고 악보를 바꿔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고....


그때 C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5권이야?"

"잘 모르겠어."


ㅎㅎㅎㅎ

끝. 아마 C가 선생님께 여쭤봤던 것 같다.

졸업연주회가 아닌 합주 때 우리가 나눴던 말은 아마 이 정도였을 것이다.




내 기억 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초등학교 6학년때의 바이올린을 이들과 함께했다.

엄청나게 낭만적으로 끝없이 추억을 나열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다르다.


어쩌면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항상 똑같았기에 이렇게 크게 마음속에 남았던 걸까.

항상 한결같이 월요일 밤에 모였던 세명, 한결같은 그 애매한 공기, 한결같던 미묘한 관계, 한결같던 연주.

변하던 삶에 변하지 않던 하루 저녁이란 이유로 그렇게 편안히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어쩌면 약간의 미련도 존재한다.

만약 우리 셋이 조금 더 친했더라면, 조금 더 즐겁게 지냈더라면.

나의 욕심이겠지, 쓸데없는 미련이겠지.



중학교를 올라가며 셋다 합주를 그만두었다.

중학교를 올라가면서 학교가 늦게 끝나고 학원 시간들이 다 뒤로 밀리면서 아무도 스케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별.



J를 안 본 지 꽤 됐다.

대신 J와 나의 어릴 적 친구를 학원가는 버스에서 종종 만났는데, 그 친구를 통해 안부를 몇 번 전해 들었다. 괜찮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렇겠지.


C는 평생 다시 안 볼 줄 알았다.

그러나 옛 동네에 놀러 갔다가 마트에서 우연히 C와 C아버지를 만났다. 당연히 아무도 인사를 안 했고 그분들은 날 보지 못하신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난 분명히 알아봤다. 그것은 C였다.

C는 키가 정말 어마무시하게 컸다. 180이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나보다 바이올린을 좋아하던 C는 바이올린을 계속하는 줄 알았지만,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진작에 그만뒀다고 한다.


결국 셋 중 마지막까지 남았던 건 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즐기지 않았던 나.


이젠 셋다 그곳을 떠났다.


대신 그 학원에 누군가라도 우리 셋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어도 좋으니 우리 셋을.

내가 이런 글을 쓰며 이름은 몰라도 얼굴이 기억나는 인연들이 있는 것처럼, 어렴풋이라도 그 '언니오빠' 세명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음에 만날 새 인연들, 그 애들이 우릴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기억나니 얘들아.

나 되게 멋진 언니였지 않았니?

....ㅎ




오늘도 간절함 속에서 피어난 뜨거운 글쓰기를 이어나가는 에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