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말결산, 올해의 책책책 …
연말을 맞아 올해 작성한 책에 대한 기록들을 모았다. 짧은 메모와 단편적인 글, 필사한 문장들까지 함께 꺼내어 정리하다 보니 어떤 책을 읽든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정리하지 않고 흘려보낸 생각들이 아깝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이 글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내가 책을 읽으며 품었던 질문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 대답을 찾았는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순서는 읽은 순서대로 정렬했다.
1.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결말에 이르러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모든 과정이 화자의 오만인 동시에 독자의 오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해의 성취가 아닌 불가능성을 깨닫는 것으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유독 읽기 까다로운 소설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완독한 것이 뿌듯하다.
2. 『공룡의 이동경로』, 김화진
- 등장인물들이 마치 나의 지인이거나 나 자신인 것처럼 마음이 가는 글이 있다. 이 소설이 그렇다.
- 일반적인 감정을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내가 느낀 김화진 작가의 글의 가장 큰 매력이다.
3.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다작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건 재능의 문제죠”
P가 말하는 재능이란 게 무엇이길래? 창작자의 삶에서 꿈꾸는 일이란 더욱 중요해 보인다. P에 의하면 소설가의 타고난 자질과 재능은 꿈을 꾸는 것에 있다. 꿈을 소진한 창작자는 더이상 꿈을 창작할 수 없다. P는 꿈을 소진하여 더이상 꿈을 꾸지 못하는 작가가 되었다. 결국 ‘고작 한 뼘’을 넘어 무한한 꿈의 서재를 얻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순수한 꿈의 눈이 필요하다. 찰나일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불순물 없는 꿈의 눈’을 가졌던 시절이 있다. 당연하다고 여긴 많은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과 이별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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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향한 다정함과 완전한 공감은 타인의 상황과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화자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타인의 모르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순간, 진정한 공감을 이루고 이유 없는 다정함을 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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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고 있자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찾아 손에 담아내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젖지 않고」의 인터뷰이처럼 어두운 세상에 젖지 않고 나의 세계로 온전히 깨어나는 법을,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만으로’ 삶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는 나는 비로소 삶의 암흑마저도 끌어안을 용기를 얻는다.
4.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이꽃님
-어떤 이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그이는 영원히 보지 못한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될 수는 없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는 있을 것이다.
5. 『고요한 읽기』, 이승우
나의 삶이 어떤 국면에 있든, 멈춰있지 않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6. 『생의 이면』, 이승우
-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해변의 수평선을 바라본다. 저 너머의 무언가를 응시하는 행위에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내재되어 있다. 바라봄의 행위는 그 자체로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암울한 감정 상태를 지각하는 일은 곧 더 나은 상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가능한 인식이다.
- 『생의 이면』은 결말에 이르러 희망을 말하는가, 끝내 절망에 잠식당하는가? 작가는 한 쪽에 치우치기보다는 삶의 본질적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의 말에 언급된 인생의 ‘수렁’을 겪어보지 않은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깊은 수렁에 빠질지라도 그 길이 곧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는 그 걸음을 멈출 수 없다. 삶은 그렇게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 자체로, 삶은 삶이라는 이유 자체로 지속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7. 『어느 삶의 음악』, 안드레이 마킨
알렉세이에게 음악의 상실은 삶의 상실과 같았다. 어느 삶의 '음악'은 곧 어느 삶의 ‘가족’, ‘글’, ‘나라’, ‘신념’.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 가장 소중한 무언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존엄을 잃는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상실되고 희생된 수많은 삶들을 생각한다. 알렉세이의 삶을 앗아간 주체는 무엇이며 그의 희생은 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는가. 전쟁과 이데올로기가 강요한 그의 수십 년의 익명의 삶은, 불길 속에서 끊어진 바이올린 현이 내는 소리보다도 침묵에 가까워야 했다.
8. 『그린 레터』, 황모과
잎새는 시대를 관통하여 살아남은 사랑과 서로를 향한 간절한 기도를 간직하고 있었다.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준 사랑의 대상에게, 잊지 않으리라는, 모든 여정을 함께하겠다는 진심 어린 메세지는 잎맥을 타고 흐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푸룬의 손자인 이륀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본다.
수 세대를 걸쳐 잎새에 새겨진 것은 푸룬과 로밀야의 사랑이었다. 모든 풍파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끝내 살아남는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잠자코 듣고 있던 잎새는 이를 증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전개라고 하더라도 이 플롯이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온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어떤 현실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해 살아갈 수 있다. 그 이야기가 주는 위로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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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은 사랑의 생명력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9. 『쇼코의 미소』, 최은영
관계의 틈에 동결한 감정은 내뱉어진 감정보다 선명하다.
10. 『책과 우연들』, 김초엽
-- 맑고 투명한 사람이 좋다. 투명한 사람은 숨길 것이 없고, 그만큼 솔직하다. 내가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동경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유튜브로 김초엽 작가를 마주했을 때와 유사한 인상을 받았다. ‘책과 우연들’은 책과 세상을 바라보는 투명한 마음을 담아낸 한 창작자의 글이다.
---글을 쓴다는 것과 어떤 이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내밀한 행위이다. 어떤 이의 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글이든 음악이든 무언가를 창작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깨닫는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창작자의 모습에 닿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것을 기피하며 내가 다루고자 하는 현상 자체, 나아가 나 자신을 투명한 창작물로서 내보일 용기가 필요하구나.
----작가의 글쓰는 과정과 나의 작곡과정에 교차점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을 했다. 작곡과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마다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방식으로 곡을 쓴다. 나의 경우에는, 곡의 구성과 음악적 재료들을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곡의 진행이 아예 불가능하다. (직관적으로 곡이 술술 써진다는 친구들이 정말 부럽다.) 실질적으로 곡을 쓰는 시간보다 어떻게 쓸 지 계획하고 상상하는 데에 훨씬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나의 작곡방식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라는 걱정을 꽤 해왔다. 내가 동경하는 작가 또한 하나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논문과 책을 읽어낸다는 것을 보며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동질감과 함께 지금처럼 해나가도 괜찮겠다는 조금의 확신과 위로를 얻는다.
11.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사막으로」
보지 않은 걸 보았다고 믿어볼 수 있을까. 이따금씩 나 자신을 위해 그런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런 거짓을 요구할 때가 있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선망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나에게 그 세계는 특정한 마음의 상태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미래이기도 하고, 실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나를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공허한 우주를 뚫고 사막에 도달한 별들처럼, 인간은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동경하는 세계로 나아간다.
12.『호빗』, J.R.R. 톨킨
백 번 읽어도 재밌을 소설이다.
13.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차별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 박상현 작가의 책 『친애하는 슐츠 씨』를 관통하는,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때로는 개인의 무지가 차별의 원인이 된다. 이 문장을 접하고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지를 경계해야 하고, 내면의 무감각함과 대면해야 한다. 『사이보그가 되다』와 같이 사유의 장을 열어주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지를 배척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엄청난 행운이나 다름 없다.
몇 권의 책을 읽었다고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며 실례가 되는 말일지 모른다. 특히나 사이보그가 되다 6장에서 제시된 *'장애의 패션화와 패티시즘'*의 문제는 아직도 나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주며,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한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많은 고려 후에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그들이 사회에서 겪어 온 경험을 직접적으로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한계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알아가고자 하는 개개인의 노력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조금이나마 바꾸어 놓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장애인과 기술, 그리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고려해 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분명 다르다.
김원영 작가의 글에서 ‘잇다’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장애인의 삶에 있어 기술은 단지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을 얻기 위해, 매끄러워 보이기 위한 이음새의 역할에 그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살아가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기술과 인간이 온전히 관계 맺기 위하여, 기술 개발자뿐만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사람, 더불어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 또한 이 이음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 않는가.
14.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니콜라이 고골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소설인 ‘코’가 신분 상승에 대한 허영심과 끝없는 탐욕에 초점을 두었다면, ‘광인 일기’는 그 탐욕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을 어떻게 붕괴시키는지 보여준다. 불합리한 구조와 계급주의 사회는 포프리신의 자의식과 현실을 분리시키고, 그 간극을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에 잡아먹혀 그는 결국 광인이 되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포프리신이 미칠 수 밖에 없는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사회구조, 그의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그가 광기에 사로잡힌 것은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으며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서술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여담으로, 고전 문학을 읽으며 거의 웃어본 적이 없는데 고골의 해학적 묘사는 언제나 날 웃긴다. 조금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고골의 소설을 설명하기 위해 ‘해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15.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 바쁘다는 이유로 읽기에 소홀해져서 책을 더 사랑하기 위한 일환으로 책에 관한 책을 찾아 읽고 있다.
내가 읽는 책의 세계는 곧 나의 세계로 치환될 수 있고, 그 세계는 켜켜이 쌓여 견고해진다.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나에게 독서는 나를 찾는 여정의 일환이다.
- ‘자연의 글’을 재구성할 수 있는 인간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에 감사함과 긍지를 느낀다.
16. 『모르는 사람들』, 이승우
타인에게 향하는 마음의 형태는 지극히도 유동적이어서, 그 주체조차도 마음을 정확히 형언할 수 없다고 했다. 타인을 이해해보고자 한 나의 시도는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많은 측면 중 일면만을 보고, 재해석의 과정을 거쳐 나름의 판단을 내릴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잘 안다고 말한 건 나의 오만이었고, 나의 해석은 어쩌면 모두 오역이었다.
그럼에도 이해의 가능성을 믿어보고자 하는 나는 그 과정에서 끝없는 갈등과 오해에 부딪힌다. 나의 불완전한 마음은 또 다른 감정을 낳고, 새로운 감정은 관계의 형태를 또다시 변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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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해하고자 했던 마음의 궤적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로 회귀했고, 모든 시도는 궁극적으로 나를 향해 있었음을 깨닫는다.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나의 본심을 알아채고 받아들이고자 하는 욕구가 들어앉아 있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의 중요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그 너머의 나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17. 『사랑의 생애』, 이승우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나의 존재를 견디는 일을 수반한다.
18. 『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자유에도 층위가 있다. 겉으로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사회적 기대와 장래에 대한 부담감, 타인의 시선이라는 무형의 족쇄에 묶인 아돌프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한 아돌프의 모순적인 심리는 엘레노르에 관한 사랑을 파멸로 이끈다.
애초에 이들의 사랑은 복잡한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균형은 맞지 않았다. 아돌프의 우유부단함과 미성숙함은 그녀를 떠나기 위한 명분을 찾아내고야 만다. 사람은 왜 사랑을 시작하고, 왜 그것을 쉽게 버리는가? 사람은 왜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자기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상대를 파멸로 이끄는가? 『아돌프의 사랑』을 읽으며 떠올랐던 수많은 질문들의 명쾌한 해답은 찾지 못했지만, 뱅자맹 콩스탕의 치밀한 심리적 해부를 따라가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인간 자체의 불완전함과 모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19. 『여수의 사랑』, 한강
탈출을 상상하며 현실을 버티고, 잠시 살아남기 위해 야간열차가 향하는 곳을 쏘아 본다. '떠남'은 미지와 환상성을 품은 행위다. 떠남의 환상은 나를 살아남게 하지만, 동시에 파괴한다. 떠남을 전제한 삶은 어느정도 현실에 빈 공간을 남긴다. 도피 욕망의 뿌리는 도피 후의 삶에 대한 희망보다는 현재 삶에 대한 절망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명확한 구원도 해답도 없다. 나를 살게 하는 상상이 나를 현실 밖으로 밀어내기도 하고, 점점 비어가는 삶을 틈을 비집고 숨쉴 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디론가 향하는 열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을 살아남을 수 있다. 반대로 그 상상의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나는 머무는 삶에서도 적응하여 버틸 수 있을까. 야간열차를 그저 상상으로 남기는 편이 좋을까 새로운 현실로 끌어들이는 편이 좋을까.
20.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21. 『추운 봄』, 다니엘 살나브
식어버린 시절에도 '추운' 봄은 존재했다. 이 책을 읽고 곱씹는 작업을 통해 다니엘 살나브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22. 『모렐의 발명』,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
모렐의 기계는 철저히 일방적이다. 기계를 통해 보여지는 인간은 단지 영상일 뿐이기에, 어떤 감각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객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가 이 기계를 통해 불멸을 얻었다고 치자. 영사기에 투영된 인간은 모렐의 설명에 의하면 감각적으로 실존하는 실체가 맞다. 그러나 모렐 또한 인정했듯, 투영된 인간은 ‘재구성’된 인물일 뿐이다. 영사된 인간을 보는 제3자, 즉 관람자는 보존된 인간에 자연스레 자신의 의식을 부여한다. ‘살아있다’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의해 해석된 것이 아닌, 주체의 실존적 자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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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모렐의 기계가 보장하는 불멸은 ‘타인에 의해 재구성된 존재’이다. 관찰자에 의해 재구성된, 해석된 주체. 우리는 모두 타인의 기억 속에서 해석되고 보존되기에, 인생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모렐의 기계는 인간의 삶과 존재 자체를 영속화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이다. 그러나 과연 감각의 보존만으로 진정한 ‘영속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영원히 같은 동작, 같은 말, 같은 순간을 반복하는 것을 불멸이라 부를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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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렐의 기계가 포착할 수 없는 그 사이의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인 불멸, 즉 단순 감각의 총합과 반복을 넘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들, 기계로는 재현할 수 없는 존재의 증거에 대해.
23.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생각하는 작은 것들이 큰 파동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 양치기가 되지 말아야 한다.
24. 『안과 겉,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나는 카뮈의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다! 정말 오랜만에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감정, 글에 멱살잡혀가는 느낌 …. 모든 문장이 주옥같아 필사를 꽤 많이 했다.
25. 『뾰족한 전나무의 땅』, 세라 온 주잇
- 모든 ‘관계 맺음’의 과정은 일맥상통한다.
-- 용기 있는 사람이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마음의 외딴 풍경을, “자기만의 샘”을 고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 고립됨을 직면할 수 있는 자가 충분히 외로울 수 있다.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자애는, 삶의 가장 고요하고 고립된 공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26. 『여름』, 이디스 워튼
‘자기 내부로의 확장’은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경험이라고 여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려는 이유에는 늘 내 세상을 넓히려는 목적이 있었다.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의 만남에는 늘 겹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27.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의 최후는 자아의 회복이자 파괴. 부정적인 인식에 의한 자아 또한 완전한 자아다. 환상을 파괴함과 동시에, 현실을 마주한다. 도리안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자멸한 것.
28. 『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질문들 - 선과 악이라는 것을 구분 짓는 일이 우리의 인식적인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선하도록, 혹은 악하도록 내몰려지는 인간의 존재 - 우리가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회적 압박에 의한 것일 수 있다. 결국 착한 반쪽과 악한 반쪽 모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한다. 인간적인 존재란 무엇인가?
29. 『죽음이란 무엇인가』, 셀리 케이건
책의 명성에 비해 깊은 울림을 받진 못했으나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꽤 두꺼운 책임에도 후루룩 읽었다. 철학 맛보기용으로 좋은 책인것 같다.
30.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책 편식이 심하다는 생각에 수학과학 분야를 도전해보던 시기였는데 완독한 거의 유일한 책. 요즘 관심 가지고 있는 연구 윤리 — 예술 윤리에 관한 부분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서술 방식 자체가 이야기 풀어내고 대화하는 형식이라 어려운 내용이라도 술술 읽히게 된다.
31.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사람들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야만 비로소 안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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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른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타인에게 이를 이해해달라고 갈구할 필요도 없다.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은 로라의 '존재' 감각과도 직결되지 않았을까. 로라는 그 감각을 배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로라가 살아있고 세상을 감각하는 한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
진은 끝끝내 로라를 이해할 수 없다.
로라의 선택은 세 번째 팔을 달기로 한 것. 진을 껴안을 때 이 세번 째 팔을 소외시키지 않은 것.
진의 선택은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로라를 사랑하는 것.
진은 로라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을 남겨둔다.
32. 『프리즘』, 손원평
- 단지 누군가를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많이 생각한 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걸까. 편의상 사랑이라고 이름붙여 단순화해버린 건 아닐까.
- 감정을 언어로 명명하면 그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마음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통해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악인 사람이 없고 절대선인 사람도 없듯이 마음의 방향 또한 선명하게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진 나인데, 그럼에도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꺼려지는 마음들이 있다. 어떤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 어떤 마음은 부정적인 마음. 나도 모르게 감정들 사이에 선을 긋고, 자꾸 편가르기를 하고. 결국엔 나 자신마저 속여버리는 것이다.
- 학부시절 레슨 시간에 교수님께서 ‘프리즘’이라는 단어를 곡의 텍스처에 은유하여 설명하셨던 기억이 있다. 모든 수직적 울림과 수평적인 움직임들,, 소리는, 음악은 다각적인 텍스처로 이루어진다. 프리즘이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레슨을 복기하다가 프리즘이 사람같기도, 사람의 감정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3.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죽음 이후에는 남겨진 자들의 삶이 있다.
죽은 이를 애도하는 과정에는 산 자가 행하는 죽은 이의 삶의 재창조가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인간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을 자주 읽게 되었던 것 같다.
모아놓고 보니 이런저런 질문은 참 많은데, 명쾌한 해답을 내린 건 찾기 힘들다. 사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 올해 내가 읽은 책들로 뭉뚱그려본 해답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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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내 나름의 TOP5를 꼽아보자면
생의 이면 - 이승우
여름 - 이디스 워튼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 마일리스 드 케랑갈
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뾰족한 전나무의 땅 - 세라 온 주잇
이정도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