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붙이지 못한 마음과 정의 내리지 않은 관계들

손원평,『프리즘』을 읽고

by 윤융

감정을 언어로 명명하면 그 감정에서 한 걸음 떨어져 서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마음에 이름 붙이는 작업을 통해 나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악인 사람이 없고 절대선인 사람도 없듯이, 마음의 방향 또한 선명하게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없다는 생각을 늘 하는 나인데, 그럼에도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꺼려지는 마음들이 있다. 어떤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 어떤 마음은 부정적인 마음, 나도 모르게 감정들 사이에 선을 긋고, 자꾸 편가르기를 하고. 결국엔 나 자신마저 속여버리는 것이다.

프리즘의 중심이 되는 네 인물 또한 자신의 마음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이런 작업에 서툰 사람들이다. 전 연인에 대한 상처, 성장과정에서 남은 트라우마, 각각의 이유들로 그들은 마음 속 깊이 방어기제와 같은 두려움을 품고 산다. 도원은 재인에게 너는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도원 자신에게 뱉는 말같기도 하다. 호계는 예진을 향해 좋아하는 마음을 품었지만, 자신이 다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버린다.

작중 예진의 심리 묘사를 읽으며 내내 왠지 모를 친근감과 기시감을 동시에 느꼈다는 건 누군가 내 마음의 결을 알고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테다. 의미가 명확한 단어와, 단어들이 모여 더 세밀한 결을 드러내는 문장으로 정리된 그녀의 마음을 읽다본니 정작 내 감정에 이름 붙이는 일은 더 두려워진다.

마음에 이름을 붙이면 그 마음은 형태를 갖는다. 형태를 갖는 순간 관계는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가져버리기 마련이다. 내가 감정을 명명하지 않은 것은 제3자로서 그 마음을 관찰하는 일이 무서웠기 때문일지도, 형태 없는 무질서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조금 더 안전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지 누군가를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오래 생각한 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걸까. 편의상 사랑이라고 퉁쳐버린 건 아닐까. 이런 관점이라면 내가 지금까지 진짜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적은 있었던걸까.

누군가와 나 사이의 평행선이 있다. 겹치지도, 완전히 멀어지지도 않는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일정한 속도로 나아간다. 이 평행관계를 깨고 싶어지는 욕망은 분명 사랑 같기도 한데, 또 어떤 사랑은 그 평행을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모양새기도 하다. 이런 마음에서는 보통 가깝고 싶지만 완전히 닿기에는 두려움이 앞선다. 관계를 정의내리고 싶으면서도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타인과 나는 예고 없이 연결되고 언제든 쉽게 흩어진다. 이런 가벼운 관계 속에서도 나와 나의 관계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어서, 모든 게 지나가고 남는 것은 나와 내가 간직한 순간의 감정들. 누구도 타인과의 연결이 와해되고 나서 완전히 같은 자리로 돌아가진 않는다.

누군가의 두려움이 꼭 모호함이나 비겁함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내 마음 위에 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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