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생각 조각들
두 달 전 나는 대학교를 졸업했다. 손에 쥐어진 졸업장에 기쁨과 아쉬움 그사이 요상한 감정이 밀려들었고, 그 위에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얹혀 있었다.
스무 살, 간절한 노력에 좋은 운이 따라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고,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했다. 공부에 매 순간 최선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식견을 넓히는 일에는 늘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세계에 속하고 싶어 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었다.
고등학생 시절의 일기를 들춰보았다. 신기한 일이다. 사람은 진짜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 같다. 그때 내가 이루고자 했던 일을 25살의 나는 거의 다 이뤘다. 내 꿈이 참 소박했구나 싶기도 하고. 더 큰 꿈을 꿨으면 더 많은 것을 이뤘을까 싶기도 하고.
그때의 나는 무식하게 긍정적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슬퍼진다. 그때의 순수함이 그립지는 않은데. 나는 성인이 되어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웠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버릴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부럽다. 나는 나를, 나를 둘러싼 세상을 긍정했기에, 좋은 사람도 좋은 일도 좋은 운도. 모든 걸 끌어당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쉽던 긍정이 좀처럼 되지 않는다. 현실의 벽이 너무 많다. 겨우 하나 깨부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졸업연주를 준비할 시기에 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수업 시간에 갑작스러운 공황 증상을 겪었다. 눈물이 줄줄 흐르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결국 나는 졸업을 한 학기 미루었다.
사람과의 대면 자체가 두려웠다. 택배기사 아저씨에게 오는 전화마저 무서워서 받지도 다시 걸지도 못했다. 자취를 하던 나는 본가에 가면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보일까 집에 가지 못했다.
기질적으로 소심하고 감정적인 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잘 받는다.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소망하고, 그 안에서 비뚤어진 안정감을 찾기도 했다. 이런 예민한 기질이 나를 예술분야로 이끌기도 했지만서도, 나를 쉽게 우울과 불안으로 끌어들이기도 해 미울 때가 더 많다.
대학 생활을 하며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사람은 시기에 맞게 머물고 떠난다. 많은 만남과 많은 이별을 했다. 선택의 다른 말은 포기다. 나는 많은 것을 취하고 동시에 많은 것을 버렸다.
올해 초여름에는 오랜 기간 함께했던 남자친구와 이별했다. 그와 같은 음악을 좋아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의 취향이 내 취향이 되어가는 과정을 사랑했다. 가장 초라한 나의 모습까지 안아주어 감사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 각자의 일을 찾아가며 자신의 세상을 넓혀가는 친구들을 본다. 나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어떤 걸음걸이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내가 앞으로 걸어가고 있긴 한 걸까.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걸지도,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지금의 나로서는 발걸음을 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