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로라」를 읽고
고유수용 감각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뇌에서의 신체 감각과 실제로 느끼는 감각의 불일치로 인해 자신의 팔이나 다리가 '내 것이 아니다'라는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은, 이 감각의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신체 일부를 절단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회가 정한 기준선인 '정상적인 몸'의 경계 밖에 선 인간이다.
세상은 이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사대로 수족 절단을 시행해줄 의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그들에게 제시된 치료법은 잘못된 감각을 심리 상담과 정신과 치료로 되돌리는 것. 그것이 다수에게 뿌리박힌 사회의 기준인 '정상적' 신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전한 환경에서 신체에 적절한 처치를 하는 것과, 헛된 희망을 걸고 끊임없이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잔인할까요?"
그들에게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것은 오히려 적합한 조치다. 정신에는 무궁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 감각에 맞게 신체를 개조하고 조정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치료법인 셈이다.
로라는 '세 번째 팔이 존재한다'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여러 치료를 시도했으나 모든 시도는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이 존재한다는 감각을 더욱 부각시킬 뿐이었고, 결국 그녀는 세 번째 팔을 달기로 결심한다. 진은 로라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리 치료를 권유하기도 한다. 그가 규정한 비정상적 신체를 갖고자 노력하는 로라의 선택에 반대하며, 그녀의 뇌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진은 그녀를 이해하고자 글을 쓰지만, 이 이해의 욕망 속에는 로라가 여전히 정상으로 회귀하기를 바라는 시선이 있었다.
로라는 '사랑과 이해는 같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가능한 존재로 만들어야만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과 다른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타인에게 이를 이해해달라고 갈구할 필요도 없다. 로라에게 세 번째 팔은 로라의 '존재' 감각과도 직결되지 않았을까. 로라는 그 감각을 배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로라가 살아있고 세상을 감각하는 한 세 번째 팔이 로라와 함께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진은 끝끝내 로라를 이해할 수 없었다.
로라의 선택은 세 번째 팔을 달기로 한 것. 진을 껴안을 때 이 세 번째 팔을 소외시키지 않은 것.
진의 선택은 그토록 이해할 수 없는 로라를 사랑하는 것.
진은 로라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미지의 영역'을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