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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르 Apr 11. 2020

코로나 주제곡

나의 엄마 아빠 그리고 누런 고추

아침 7시 반, 이미 먼저 일어나 혼자 노는 게 지겨워진 아기 박시아가 찰싹찰싹 내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시아는 비몽사몽 하며 눈도 잘 뜨지 못하는 나를 심드렁하게 바라보다 불현듯 이불 어딘가에 파묻혀있던 내 핸드폰을 꺼내와 큰 소리로 외친다. 


함미! 함미!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시켜달라는 뜻이다. 

  





내가 지내고 있는 독일의 지역사회는 이미 작동을 멈추었고 서로 2미터 이상 거리를 두어야 하는 접촉 제한령도 엄격하게 시행 중이다. 마트를 다녀오고, 유모차에서 내려 산책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들어와도 18개월 아기의 에너지를 감당하기 쉽지 않은데 별안간 집 안에서만 그것도 오롯이 나 홀로 이 활어와 같은 아이를 상대하자니 코로나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드럭스토어 DM에 있는 기저귀 갈이대. 지금은 이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이 암담하고도 막막한 상황에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샛노란색 찬란히 빛나는 카카오톡 영상통화 - 


가까운 곳에 육아의 부담을 덜어줄 친구, 가족 없이 고군분투 중인 나는 요즘 영상통화를 통해 일종의 원격 공동육아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식구들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니 배터리가 없어 끊어야 할 때까지 얼마간이고 영상통화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특히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걸곤 한다. 내가 요리에 집중하는 동안 가족들은 시아의 관심을 끌어주거나 시아가 위험한 짓을 하지 않는지 지켜보며 내 뒤통수에 달린 눈이 되어주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통화 중에 이모부에게도 전화가 왔다. 카톡 영상통화로 팬미팅을 하게 된 나의 딸.







나는 밤새 묵직해진 시아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한국에 있는 나의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익숙한 듯 시아도 내 무릎으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솔미 솔라 솔 미 파미레 미도. 솔미 솔라 솔 미 파미레 도 도 “ 



카톡 영상통화의 경쾌한 연결음이 들리기 시작하면 시아의 몸이 들썩거린다. 단순하면서도 들을 때마다 설레는 음악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이 멈추고 “시아야 ~” 하고 최선을 다해 높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핸드폰을 얼굴에 가까이 대었지만 화면의 절반은 우리 집 천장이고, 턱과 입은 화면 밖으로 사라진 아빠의 얼굴. 방금까지 무료한 오후 시간을 보냈는지 아빠의 표정에 격렬한 반가움이 묻어난다. 


“시아야 할아버지 할! 아! 버! 지! “ 


손녀가 자신을 호명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한 글자씩 힘주어 말해보지만 시아의 반응은 어째 시원찮다. 


“멍! 멍!” 


지난여름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시아에게 마당에 묶여있는 강아지를 매일 보여주었던 건 자신이라는 걸 기억하냐며 강아지 흉내도 내본다. 시아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이번엔 며칠 전 시아에게 알려주었던 오이와 고추를 들고 흔들어본다.  


드디어 시아는 할아버지를 보고 까르르 웃는다. “꺼추 꺼추”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 하며 - 

할! 아! 버! 지! 와 멍멍 그리고 고추가 몇 번 반복되고 아빠는 그제야 핸드폰을 엄마에게 건넨다. 



외할머니 앞에서 주방놀이 중인 박시아 어린이



네모난 화면에 외할머니가 등장하면 시아의 얼굴은 아까와 다르게 환해진다. 시아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엄마는 시아에게 말을 걸고 단어를 가르쳤다. 그땐 이제 겨우 눈을 뜬 아기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건네는 게 우스웠다. 그저 처음 안아보는 손녀가 그 정도로 귀여운가 보다 - 하고 생각했다. 


태어난 지 두 달쯤 지났을까, 시아는 외할머니 앞에서만 옹알이를 했다. 자기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갓난아이에게도 편견 없이 말을 건네는 엄마를 보며 나는 감탄했었다. 


엄마는 코로나 때문에 폭발적으로 길어진 영상통화를 하면서도 시아에게 말을 건네고 가르친다. 

[ 이거 뭐야? 컵 맞아. 시아 눈 어디 있어? 옳지 잘한다. ] 

이 정도가 내가 시아와 나누는 대화 수준이라면 엄마는 여전히 나의 상상 이상의 것들을 시아에게 가르친다. 

가령 당장 눈앞에 있는 유성매직을 발음하는 법이라든가 머그컵과 유리컵의 차이를 정성 들여 알려주는 것이다. (시아는 지금 19개월 아기이다) 

실제로 엄마와 며칠간의 영상통화 후 시아는 내가 알려주었던 눈, 코, 입을 넘어 귀, 턱, 목 손목, 팔꿈치, 종아리, 무릎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가리킬 수 있게 되었다!




엄마와 시아 사이에 흐르는 웃음과 박수소리가 커지면 나도 좀 보자며 또다시 화면을 한가득 채우는 아빠의 얼굴이 나타난다. 엄마가 하는 것처럼 말을 건네고 가르쳐보려 하지만 아빠에게는 그런 것들이 영 어색하다. 


아기 수준에 맞는 목소리와 방법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예순이 넘어 처음 겪어보는 낯간지러운 일인 것이다. 인형처럼 귀여운 손녀의 관심을 얻고 싶어 온 힘을 다해 애쓰는 아빠를 보며 나는 나의 아기 시절 아빠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고 자란 시골을 떠나 이리라는 도시에서 엄마를 만나 결혼했고 돈을 벌기 위해 밤낮없이 정신없이 일에만 몰두했을 가장의 모습. 그리고 아마 아내에게 육아와 살림을 모두 맡기고 자신의 조그만 딸은 눈으로만 예뻐하는 그런 무뚝뚝한 아빠였으리라. 



결국 아빠는 이번에도 시아의 관심을 충분히 끌지 못했고, 식탁에 놓여있던 고추를 집어 맵다는 시늉만 몇 번 해 보인 채 다시 핸드폰을 엄마에게 넘겼다.




영상통화를 켜놓은 채 이모와 함께 원격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하기도 한다






나는 다음날에도 영상통화를 걸었다. 아빠는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간다고 했고 우리 모녀 3대는 매번 그렇듯 깔깔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에 한국에 가게 되면 엄마가 해준 꽃게 찌개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대뜸 엄마는 내게 이거 보라며 누리끼리한 무언가를 손에 쥐고 흔들어 보였다. 그것은 한참을 마르다 막 썩기 시작한 고추였다. 왜 고추를 그 상태가 될 때까지 가지고 있냐고 묻자 엄마는 말했다. 


시아가 좋아하는 ‘시아 고추’ 라며 아빠가 먹지 못하게 했다고. 마지막 남은 고추인데 먹어버리면 시아에게 보여줄 게 없지 않냐며, 마트에서 새로운 고추를 사 오기 전엔 먹을 수 없다고. 



식탁에 놓인 고추를 보며 손녀딸을 그리워하는 아빠의 마음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처음으로 귀엽다고 느껴졌다. 아빠가 시아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법은 엄마처럼 능숙하게 말을 거는 게 아니라 말라가는 고추 하나를 소중히 지키는 것이었다.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가둬두지 않았더라면 친구를 만나느라, 꽃바람 쐬러 나가느라, 마트에서 호박을 고르느라 바빴을 일상. 

멀어진 사회적 거리를 끌어모아 나를 키워냈던 엄마 아빠의 마음에 조금 더 가까이 닿게 되었다. 

나는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나의 엄마 아빠가 보고 싶고 더 알고 싶어 영상 통화를 걸게 될 것이다. 



“솔미 솔라 솔 미 파미레 미도. 솔미 솔라 솔 미 파미레 도 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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