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열정은 가득하지만 어쩐지 허술했던 나의 독일 입성기
신입생 오티에서 양갈래 머리를 하고 노래를 부르던 스물다섯 살 신입생이 있었다. 그녀는 모든 동기들에게 언니 혹은 누나라고 불렸고,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한 ‘오빠’ 들은 ‘그 누나’ 때문에 스무 살 새내기들 앞에서 어쩐지 으스대기 민망해했다. 어렸을 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 전공을 하게 된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스물세 살에 처음 비올라라는 악기를 잡게 되었다. 잘 다니던 서울의 어느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과감하게 자퇴하고 2년간의 연습 끝에 그녀는 꿈에 그리던 음대생이 되었다. 10년 전의 나의 이야기이다.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나의 바람과 크게 달랐다. 스무 살 친구들이 아침 수업시간 숙취에 절은 채 비몽사몽 연주해도 술술 되는 테크닉을 나는 몇 달을 연습해도 해도 가질 수가 없었다. 결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 노력과 반복되는 좌절 속에 남들 뒤꽁무니 쫓아가는 학부 생활도 소화하기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유학은 꿈꿀 수도 없었다. 나의 대학생활은 내가 과감히 내린 결정이 후회로 남지 않게 처절하게 애쓰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 끝나가던 겨울, 다음 학기 기숙사 신청을 위해 들어가 본 학교 홈페이지에서 나는 우연히 교환학생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미국, 중국, 그리고 기타 언어권의 학교로 교환학생을 파견해 한 학기 동안 수업을 듣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학교 연습실과 집이 생활의 전부였던 나에게 교환학생이라는 단어는 신선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만일 교환학생으로 선발된다면 나도 독일에서 레슨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날이 밝자마자 나는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 나와 친분이 있던 조교에게 궁금한 것들을 몽땅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교환학생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다른 조교도, 음악대학을 대표하는 교수님도 나의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었다. 음대에서 지금껏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교환학생 선발에 관한 조건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미국의 어느 학교에선 의대생만 뽑는다는 조건이 있긴 했지만 예체능 학과 지원 불가라는 항목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교환학생을 가본 적이 없다는 말에 나는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감히 한 번도 원해본 적 없지만 독일로 건너가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엿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피어났다.
보통 학생의 ‘자질’은 학점으로 쉽게 평가가 되었는데, 성적표의 숫자보다 실기가 더 중요했던 음대생인 내가 학점만 가지고 신청을 해도 되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대학 본부 담당 부처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그쪽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역시 “음대생”이 교환학생을 신청해 본 적이 없어서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었다. 학과 사무실에서도, 대학 본부에서도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했으니 나는 독일에 있는 학교에 직접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자매결연이 맺어져 있던 마인츠 대학교에는 다행히도 음악 대학이 개설되어있었다. 마인츠 음대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공식 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고 나는 서툰 영어로 메일을 보냈다.
안녕, 나는 한국에서 비올라를 전공하고 있는 효르야. 너희 학교에 교환학생을 신청해도 될까?
며칠 후 영어로 된 메일이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본 메일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우리 학교에 관심 가져줘서 고마워. 우리도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관련된 규정은 없어. 하지만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내부적으로 교수들과 의논을 해보았는데, 너의 연주를 1분 이상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니? 그럼 그것을 통해 우리가 심사를 해볼게.
교환학생 신청 마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나의 연주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고 그 링크를 전달했다.
나는 주고받은 메일을 토대로 교환학생 신청에 박차를 가했다. 교환학생 지원 동기와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 성적표, 독일 측과 주고받았던 메일을 첨부하여 나는 당당히 1차 서류심사에서 합격을 했다.
문제는 2차 심사였는데, 독일로 가는 교환학생 신청을 했기 때문에 독일어 전공 교수님들 앞에서 면접을 봐야 했다. 그런데 나는 독일어에 독자도 알지 못했다! 면접까지 1주일도 남지 않았는데, 1주일이란 시간은 새로운 언어를 벼락치기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나는 네이버의 도움으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효르입니다, 저는 비올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1주일 내내 외웠다.
드디어 면접날. '할로 구텐탁’을 읊조리면서 나는 떨리지 않았다. 독일어를 평가할 교수님들 앞에서 선보일 독일어 능력이 나에겐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소개를 해 달라는 독일어 교수님들 앞에서 내가 1주일 내내 준비한 멘트는 20초도 안돼서 끝이 났다. 행여 그게 전부냐고 핀잔이라도 들을까 봐 나는 서둘러 미리 준비해 간 악기를 꺼내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 일단 박수를 쳐 주는 독일어 교수님들의 표정은 나 만큼이나 당황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어 나는 역시나 부족하지만 구텐탁보다는 훨씬 유창한 영어로 말을 이어나갔다.
독일어과 교수님들을 모셔놓고 독일어를 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음대생이고 악기를 통해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교환학생에 합격한다면 독일에 건너가 그곳의 문화를 열심히 배워서 돌아오겠습니다. 독일 측에 물어보니 독일어를 못해도 영어로 레슨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영어 실력이면 악기를 배우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뽑아주신다면 성실히 독일어 공부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꼭 뽑아주세요.
마뜩지 않아하던 교수님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당당하게 음악대학 최초로 교환학생에 선발되었고 며칠 후 독일에서도 나를 뽑아주겠다는 통지 메일이 날아왔다.
기다려, 독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