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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르 May 19. 2020

코로나 시대에 슬기롭게 여행하는 법

_ 밥상머리 세계 여행기





 세 식구의 밥 먹는 시간, 식탁에 둘러앉아 가장 늦게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바로 나다. 20개월인 딸아이가 엄지를 척 내밀며 “때고(최고)”  라고 외치거나,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맥주를 꺼내오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엔 맥주가 필요해!라는 뜻의) 남편의 리액션이 보고 싶어 그들이 먹기 시작하기 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내 손으로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아끼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그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를 보는 것은 언제나 나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밥을 차려내는 것이 큰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남들보다 아주 조금은 수월한 주부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코로나로 인해 오랜 기간 반 강제 자가격리를 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남편과 아이는 내가 내어주는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줄 테지만 나는 스스로 짐짓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집에만 있는데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어서 더 지겨워하면 어쩌지? 


 더군다나 독일에서는 음식점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식사는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했다.  사실 우리는 1년에 한두 번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외식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집에서만 밥을 먹는 게 전혀 새로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집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나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고민했고, 결정했다. 식사 시간을 하루 중 가장 기대되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혹은 먹어보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올바른 인성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을 밥상머리 교육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오늘부터 밥상머리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소에도 한식만을 고수하며 밥을 먹지는 않는다. 이태리의 파스타, 미국의 햄버거, 중국의 유린기 등 다양한 메뉴가 식탁에 오른다. 하지만 저녁 밥상에 오른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으며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떠올리지 않듯 이미 우리는 다양한 세계 음식을 아무 특별한 느낌 없이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요리는 독일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내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어쩐지 한국스러운 맛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밥상머리 세계여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나니 한번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피어났다. 



 나는 본격적으로 세계여행을 준비하기 전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즐거울 것.             

 애초에 힘든 코로나 시기를 조금 더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게 계획한 밥상머리 세계여행이다.  음식을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둘째, 조리법은 너무 복잡하지 않아야 하며 최대한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할 것.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는 첫 번째 원칙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또한 한 번의 요리를 위해 많은 재료를 새로 사는 불필요한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몇 가지 원칙을 세우고 핀터레스트와 구글을 통해서 다양한 요리와 레시피를 검색했다. 핸드폰을 들고 낯선 동네의 다양한 음식 사진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여행 계획을 짜는 사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저녁 어떤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러 멀리 떠나는 원정대가 된 기분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평소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딸아이 챙기랴 식사 준비하랴 주방에서 나 홀로 정신없는 전투를 치러왔지만 이번엔 코로나 덕분에 집에 머물게 된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좋아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으며 우아하게 당근을 썰었다. 


그중에서 만드는 법이 어렵지 않았거나 혹은 반응이 좋았던 몇 가지 요리를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01 베트남 : 짜조(좌), 분보(우)


 마인츠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 자주 가던 조그만 아시아 음식점이 있었다. 그 가게에는 서로 통성명은 하지 않았지만 갈 때마다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아저씨가 있다. 석사과정이 마무리되던 즈음 그 아저씨는 내가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오늘도 분보?라고 묻곤 했다. 

 분보는 얇은 쌀국수면을 새콤달콤한 소스에 적시고 야채와 고기를 얹어낸 요리이다. 피시소스에 식초와 설탕, 다진 마늘을 섞어 소스를 만들어 보았는데 식당에서 먹던 것과 꽤 비슷한 맛이 났다.


 함께 곁들여낸 것은 다진 돼지고기나 새우 등을 채소와 라이스페이퍼에 말아 튀긴 만두, ‘짜조’이다.  마침 집에 다진 고기와, 월남쌈을 해 먹고 남은 라이스페이퍼가 있었기에 나는 추가 재료를 구입하지 않고 짜조를 만들어 볼 수 있었다. 

 다진 고기에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그 날 냉장고에 있던 채소 (애호박, 당근, 버섯)를 잘게 다져 속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국적인 맛을 내기 위해 고수를 다져 넣었다.  

 사실 짜조는 기름에 튀겨 내는 건데  조금 더 건강하게 먹고 싶어 에어 프라이어에 구웠더니 라이스페이퍼가 살짝 딱딱한 감이 있었다. 


 분보와 짜조에 들어가는 재료는 모두 집에 있던 것들이지만 조리 순서와 방법을 조금 달리 하였더니 정말이지 이국적인 맛이 나는 요리가 탄생했다. 






#02 미국 : 잠발라야


 잠발라야(jambalaya)는 고기, 해산물, 채소 등 다양한 재료에 쌀을 넣고 볶다 해산물과 육수를 붓고 끓여 만드는 미국 남부의 쌀 요리이다. 비슷한 음식으로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스페인의 빠에야가 있다. 소시지와 새우, 양파와 버섯, 파프리카를 볶다가 같은 냄비에 쌀을 넣어 치킨스톡을 넣고 끓인다. 매콤한 맛을 위해 타바스코 소스를 넣고 파프리카 가루를 추가했다. 


 빠에야고 잠발라야고 이름은 상당히 이국적이지만 여기에 김치만 넣으면 딱 김치볶음밥이 될 것만 같았다. 소스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조금 넣어 약간 심심하게 만들었더니 딸아이도 함께 나눠먹을 수 있는 완벽한 한 끼가 되었다. 






#03 일본 : 후르츠 산도


 딸기를 넣어 만든 이 후르츠 산도는 이번 밥상머리 세계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메뉴이다. 한입 베어 물면 딸기의 상큼함과 생크림의 달콤함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먹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생크림을 휘핑하고, 빵과 딸기를 보기 좋은 모양으로 잡고, 크림이 굳기까지 냉장고에서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의 몫으로 생크림에 설탕을 가득 넣어 달콤한 크림을 준비했고, 딸아이에게는 설탕을 뺀 담백한 크림으로 조그만 사이즈의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04 미국 : 시카고 스타일 딥 디쉬 피자



 시카고 피자는 도우가 두껍고 그 안에 많은 양의 치즈와 소스를 채운 것이 특징이다. 시카고 피자를 한 조각 들면 끝도 없이 늘어나는 치즈를 끊어내느라 행복한 비명을 내지르게 된다.  시카고 피자는 이번 시리즈에서 준비하는데 가장 간단했던 음식이다. 재료는  피자 타익 (반죽), 토마토소스, 모차렐라 치즈가 기본이며 취향에 맞게 버섯이나 햄 등을 올릴 수 있다. 독일의 마트에선 이미 준비가 된 피자 반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포장된 반죽을 동그란 케이크 틀에 깔고, 그 안에 모짜렐라 치즈를 가득 채운 후 그 위를 토마토소스로 발라 마무리했다.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 5분, 에어프라이어에 돌린 시간 25분. 






#05 러시아 : 피로슈키


 피로슈키는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러시아식 튀김 만두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먹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음식점에서도 흔하게 파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만두는 얇은 피로 만드는 반면 피로슈키는 발효한 반죽을 두툼하게 만들어 내기 때문에 하나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레시피를 살펴보니 그 반죽이 피자 반죽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레카! 시카고 피자를 만들 때 쓴 피자 타익으로 피로슈키 빵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만두 속 재료가 지역마다 사람마다 각양각색이듯 피로슈키의 내용물도 천차만별이었다. 그중에서도 고기와 야채 이외에 치즈와 밥을 추가하여 속을 채우는 레시피가 눈에 띄었다. 지방과 탄수화물을 또 탄수화물로 감싸고 그것을 튀겨낸 음식이라니! 시베리아의 한파를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어떤 기개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미 그 모양과 이름이 새롭지만 이번엔 피로슈키를 먹으며 러시아 민속음악을 틀어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말 러시아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즐겁게 웃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로슈키를 먹었다. 











#06 이스라엘 : 구운 가지 요리와 후무스, 쿠스쿠스 샐러드

 

 여기까지 해보고 나니 점점 새로운 요리에 자신이 생겼다. 여행지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그 음식마저 낯선 곳이 어디 있을까. 남편과 함께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고민했다. 


  이스라엘! 하고 남편이 외쳤다. 


 이스라엘 음식…? 어떤 음식이 이스라엘의 음식인지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도전해보기로 했다. 핀터레스트를 켜고 이스라엘 음식과 레시피를 검색했다. 다행히도 이스라엘의 다양한 음식 중에서도 이미 우리 집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 많이 있었다.  


 구운 가지를 올리브유에 절인 가지 요리와 병아리콩을 갈아 만든 후무스, 쿠스쿠스 샐러드와 곁들여 먹을 납작한 피타빵을 함께 내었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세계여행 이스라엘 편은 비건 밥상이 되었다. 내색은 안 해도 고기반찬이 없어 아쉬웠을 남편의 마음은 살짝 모른 체했다. 배불리 먹고 나서도 속이 거북하지 않고 깔끔했다. 














#07 프랑스 : 화이트 크림치킨



 지난번 이스라엘 편에서 너무 건강하게 밥을 먹은 것 같아 이번엔 닭요리를 해보기로 했다. 레드와인에 며칠간 절여 만드는 꼬꼬뱅이라는 프랑스식 닭 요리를 알고 있다. 집에 레드와인이 한 병 있는 김에 만들어볼까 고민해보았지만 왠지 요리에 쓰기보다 내가 홀짝홀짝 마시고 싶어 관두었다.  

 꼬꼬뱅이 아니더라도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닭을 소비하는지 궁금해진 나는 계속해서 프랑스의 닭 요리를 검색해보았다. 딱히 이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생긴 요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느끼하게 생긴 하얗거나 누르스름한 닭요리였다. 밑간을 한 닭고기와 각종 야채들을 먼저 볶아낸다. 집에 있던 감자와 당근, 버섯을 사용했다. 프랑스 요리에는 샬롯이라고 하는 작고 단맛이 강한 양파가 많이 쓰이는데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주먹만 한 양파를 하나 썰어 넣었다.  밀가루를 버터에 볶아 루를 만들고 거기에 생크림을 부어 소스를 만든다. 먼저 살짝 볶아둔 야채와 고기를 넣고 보글보글 끓여내면 완성. 


 여느 다른 요리와 마찬가지로 살짝 내 맘대로 간단하게 만들었지만 매우 맛있는 닭 요리가 완성되었다. 나중에 프랑스에 가게 된다면 그곳에서 이 요리를 먹어볼 수 있는지 자세한 검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약 한 달간 작고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아 세계 음식 여행을 했다. 낯선 음식을 꾸준히 만들고 먹는 게 피곤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 음식기행은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남편은 낯선 식당의 새로운 음식보다 익숙한 곳의 확실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편에게 받은 최고의 찬사는 “낯설고 이국적이지만 너무 맛있다”였다. 익숙한 와이프가 해주는 새로운 요리를 꾸준히 먹으며 낯선 것에 대한 남편의 마음이 조금 열린 것 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뭐 먹지”라는 지겨운 고민에서 출발한 이 여행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 넉넉히 보듬을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 날엔 남편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큰소리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을 걷으며 지금이 몇 신데..로 시작될 뻔한 잔소리를 막 퍼부으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다음 멘트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매일 세계여행을 다니느라 시차 적응을 못하고 그만 늦잠을 자버렸지 뭐야”  



 반 강제적인 자가격리 기간 동안 자발적으로 세계 요리 탐험을 기획했다. 사랑을 담아 음식을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몸과 마음을 찌우며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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