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에필로그 - 변함없이
걸린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걸음들 끝에, 그리운 그곳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역시나, 오늘의 하루는 아름다웠다.
따뜻한 한기가 내 몸을 감싸도, 집은 모든 걸 지켜준다.
'도시'가 아니더라도, 집은 나를 지켜준다.
그저 손이 더러워졌을 뿐이다. 그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게 완벽하다.
내 의지로 결정한 일에 후회는 없다.
저 멀리, 평화의 장소가 눈에 들어온다.
힘이 풀려버린 눈은 이제 그곳만을 응시하고 있다.
중요하지 않을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아도,
'보인자'라는 단어가 뇌리를 헤집어도,
끝없이 내 발걸음은 이어진다.
이제 난 '집'에 왔다.
문고리의 앞엔 비둘기가 죽어있다. 차갑고 딱딱하게 식어버린 생물은 더 이상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비둘기를 발로 살며시 밀어놓은 뒤 문을 열었다.
"아, 오셨어요? 스파게티를 하고 있었어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곧 완성될 것 같네요."
그가 절뚝거리는 다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이제 온 거야? 게임이나 하자고 부르려 했는데, 좀 늦었네?"
그가 뜬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아마 괜찮을 것이다.
고요한 집에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이게, 내가 원하던 진정한 평화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다.
스으윽.. 스으윽..
내 바지춤을 움켜쥔 천사는 내게 속삭였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말이라는 듯 거듭 강조했다.
계속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
"난 진실을 봤어."
어차피 붕대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같잖은 설교를 들어줄 필요 따윈 없었다.
난 주머니에서 장난감 총을 꺼내보았다.
장전도, 조준도 어렵지 않았다.
"탕."
그렇게 절멸한 천사를 넘어뜨리곤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떨어진 총알들과 산재된 붕대들.
부서진 나뭇조각들과 칼날조각.
창문을 고치던 기억과 식사를 하던 기억.
게임을 하던 기억과 위로를 해주던 기억.
그리고,
고 통 에 서 해 방 시 켜 준 기 억 들.
참 소중한 추억들이다.
그때, 어딘가에서 빛이 내려온다.
어두우면서 밝은 익숙한 월광은 날 인도하려는 듯했다.
3층으로 가는 계단을 따라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운 곳, 내 방보다도 더 중요한 곳.
...
오늘도 나는 거울 앞에 선다. 언제부터인가 생긴 버릇이다.
거울 속엔 누군가의 모습이 비친다.
슬픈 미소의 존재는 나에게 무언의 손길을 내민다. 마치 선의라는 듯, 널 위한 행동이라는 듯 내민 그 손은 분명 기만일 것이다.
역시 그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었다.
내 손의 야구 배트는 허공을 타고 기만자를 파괴했다. 깨져버린 거울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죽어 마땅했다.
거울의 균열에선, 또 다른 무언가가 보인다.
그것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창백한 붉은 눈의 형체는 거울 속에서 날 응시하고 있다.
그 존재는 날 향해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행동의 결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우린 행복할 것이기에.
평화로울 것이기에.
난 진실만을 볼 것이기에.
"오늘도 변함없이 정상이군."
확신에 찬 목소리가 집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