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 ]

by Eian Lim

23. [ ]


난 걷는다. 계속 걷는다.

어디로 나아갈 지 모를, 어디까지 이어진 지 모를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하늘에서는 죄업까지도 씻어버릴 눈이 내리고 있었고, 그 눈은 두려움에 휩싸인 내 발자국을 없애주었다.

한걸음, 두걸음, 세걸음.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 보지만 앞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뒤를 돌아볼 순 없다.

그자로부터 도망쳐야만 한다. 더 이상 그자는 정상이 아니다.

발이 점점 눈에 깊게 들어간다. 점점 두껍게 쌓여가는 눈은 내 발을 조금씩 무력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지만, 절대 멈출 수는 없다.

평화의 화신으로부턴 멀어져야 한다.

...

도시로 향해야 한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받아서는 안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세상을 다르게 보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몇 시간을 뛰었을까, 며칠을 걸었을까, 시간 감각이 점차 흐려진다.

그렇게 나아가던 내 발 아래엔 점점 눈이 아닌 바닥이 밟히기 시작했다. 따스하게 느껴지는 불의 온기가 느껴졌다. 열기의 근원지에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추운 날씨에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나아가다니, 누군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건가?"

"당신은, 누구십니까?"

모닥불을 피우고 있던 그는 눈길을 모닥불에서 나에게로 옮겼다.

"흐음.. 잠깐, 자네도 혹시 '보인자'인가?"

"그게.. 무엇입니까?"

그는 이상하리만큼 내 눈에 정신을 집중했다. 눈에 무언가 이상이라도 있는지 찾으려는 의사처럼, 오래도록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흠.. 확실치는 않지만 아직은 괜찮은 것 같군. 다행일세."

"네..?" 무슨소리인지 잘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럼 죄송하지만, 잠깐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는 합석을 허용해 주었고, 그로 인해 난 얼마만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약간의 술은 점화에 꽤나 도움이 되지. 바깥에서 알면 좋은 상식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긴장을 잠시 놓은 난 무심코 의문을 표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혹시 어째서 이곳에 계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곳은 '도시'와는 꽤 거리가 있을 텐데요."

"자네 그곳을 알고 있군? 꽤나 주변을 돌아다닌 모양이야."

"버림..받으신 건가요?"

"하하, 다행히도 그건 아니라네. 정확히는 애초에 들어가질 않았지."

"아,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개인적인 정보를 여쭤본 것 같군요."

"그럼 이름이라도 말해줄텐가?"

"...K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전직 군인이죠."

"군인이라, 그럼... 동행하는 것은 어떻겠나?"

그는 나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그의 말을 섣불리 따를 순 없지만, 다른 선택지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좋습니다. 앞으로는 함께 움직이면 되겠군요."

갑작스레 모인 우리는 혹한이라는 위협에 등 떠밀려 무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함께 다닐 것이라면, 서로 이름이라도 알면 좋지 않겠습니까?" 난 그에게 말했다.

"흠.. 통성명이라. 그래, 사양하지 않겠네. 내 이름은 'H',


이 세상을 멸망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라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실밖에 보지 않는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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