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제는 부부 중심으로의 가족체계를 갖추는 것이었다.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인데 우리 가족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 일반적이고 당연한 모습이 무너진 채 살아오고 있었다. '위기가정'이라는 타이틀로 문제가 있음을 애써 명시하지 않아도 살면서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종종 느껴왔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결혼을 하면서 두 사람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가정에 대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고민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부부는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 건지, 우리가 어떤 위치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한 가정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지 않은 채 막연한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만약 결혼을 생각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두 사람이 이루는 가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둘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두 사람이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규칙을 정하는 일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하고 결정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우리 가정에는 부모로서의 권위가 없었다.
요즘에는 대부분이 외자녀고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생각이 각별해서 애지중지 키우며 아이중심으로 살아가는 집들이 많다. 그리고 말 안 듣는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며 나처럼 부모의 권위가 없다고 생각하며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이건 요즈음 많은 가정에서 공감하는 공통적인 문제인 것도 같다.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었다. 그건 아이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며 친밀한 관계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이다. 어른으로써 아이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끔 끊임없이 가르치고 방향을 안내해 주어야 한다. 생각해 보면 그러한 영향력은 친구와 같은 동등한 관계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권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신뢰할 만한 어른의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가정은 부모의 말이나 행동이 아이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타이름도 동기부여를 위한 격려의 말도 아이에게 전달이 되지를 않는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아이의 행동에 만족하지 못한 채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 줄 다른 대상을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태도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권위 없는 부모의 모습을 더욱 고착시켰던 것 같다.
또한 우리 부부는 의견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서툴렀다. 서로가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을 뿐 이 문제가 가정에서 부부 체계를 올바로 세우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고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부모가 힘을 합치지 못하고 매번 부부의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투는 부모의 모습이 아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 중심의 가족체계가 되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원가족에서 분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남편이 생각하는 가족 개념에 대한 문제였다. 남편은 너무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은 상황이어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이 늘 고생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인식과 함께 누나와 셋이서 똘똘 뭉쳐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지만 남편의 가족 개념에는 여전히 원가족으로서 어머니와 누나가 크게 자리 잡고 있어 나와 아이들이 중심이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원가족에서 분리되지 못한 남편과 살면서 나는 내가 서야 할 자리를 찾지 못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그 허전함을 아이들에게서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가끔 나는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구를 가장 의지하게 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언제나 든든하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내가 어려울 때 자연스럽게 먼저 찾게 되는 사람, 그 대상이 내 의식에는 남편보다는 언제나 친정 부모님이었다.
부부체계 중심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 가정이 내·외부적인 힘에 의해 자주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같이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니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만 가득하고 서로를 탓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서 우리 부부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가시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시급했다. 아이가 부모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아이가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묵혀온 문제라서 해결의 과정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상담사 선생님은 남편이 원가족에서 분리가 되는 것은 스스로 충분히 인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기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면서 무엇보다 희망을 놓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묵연히 기다려야 한다. 나의 인내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다.
내가 견디어 내는 시간이 보다 어른이 되어가고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