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3일
언젠가 찾아올 봄을 희망하며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디어 내는 나무처럼 힘겨운 일들에도 올곧은 마음으로 확실한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게 해소서.
50 여일 전, 성당에서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선뜻 신청하지 못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이가 올해 시험을 볼 수 있을지, 시험을 준비하는 게 맞는 건지, 그게 가능한 건지 전혀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초조한 마음이었고, 어디로 갈지 방향을 모른 채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몹시 불안했었다.
고 3이 된 올해 4월 초 아이는 학교 출석을 거부했다.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았고 방 안에서 틀여 박혀 지냈으며 그렇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고등학교 2년을 무단결석과 조퇴를 반복하며 마음잡지 못하고 지내던 아이가 고3을 앞둔 12월에 다시 마음 잡고 무섭게 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어가는 즈음이었다. 겨울방학부터 3월까지 아이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아침 일찍부터 새벽까지 무섭게 공부를 했었다. 3학년을 맞이하고 본 3월 첫 모의고사에서도 자신이 목표했던 두 과목에서 원하는 점수를 받았었다. 달라진 아이를 보며 다시 희망이 보였고 잠깐동안이지만 마음이 편했었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 올 연말즈음에는 어쩌면 좋은 입시 결과와 그로 인해 너그러워진 아이의 모습을 마주할 것 같았다. 그러면 부모와의 관계회복은 자연스럽게 될 거라 믿었다.
그래서 아이의 갑작스러운 은둔 생활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왜? 도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그렇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애가 끓는 심정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번아웃일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3개월이지만 공부한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다시 제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년 동안 거칠게 반항하고 방황하던 아이를 묵묵한 기다림으로 지켜보아 왔듯이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마음을 가다듬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가 없는 상황에 점점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아이로 인해 집안의 공기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매일매일이 우울했고 불쑥불쑥 화가 났고 세상의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그리고 한 학년의 수료에 허용되는 결석기간인 1/3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는 몇 번의 내용증명으로 학부모의 출석과 면담을 요구하며 결석일 수와 재학을 위해 가능한 시간을 통보해 왔다. 그리고 그 Deadline을 일주일 남기고 자퇴와 유급 사이에서 결정을 하라고 했다. 아이와는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었고 아이의 생각을 알지 못한 채 남편과 둘이 상의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우리 아이가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고 언젠가는 남들처럼 당당하게 일어설 날이 올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에는 희망망이라는 것을 저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학교에 결정한 상황을 회신해야 하는 Deadline을 5일 남긴 월요일 아침, 아이가 학교에 등교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날은 여름 방학을 10여 일 남겨 둔 6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러나 3개월을 떠나 있었던 학교에 아이는 곧바로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학교의 권유로 방학 전까지 학업중단 숙려제를 신청하고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나가 한 시간 정도 위클래스에서 상담을 받으며 출석을 인정받았다. 그렇게라도 출석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에 감사했었다. 그리고 2년 반 만에 아이와 대화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기도의 힘이었을까,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내게 돌아온 아이는 몸과 마음이 크게 병들어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힘들게 지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이는 2학년 여름부터 한 번도 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친구도 없었고 하교할 때 혼자 걸어 나오는 게 너무 싫었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서도 마음을 둘 때가 없어서 괴로웠다고 했다.
아이가 말하기 전까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힘든 시간을 말로 꺼내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많이 울었다. 학교에 가도 혼자였고 집에서도 혼자였을 상황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안쓰럽고 그 시간을 여린 아이가 견디어 왔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니 점심을 많이 먹겠지 생각했고, 집에서 부모와 사이가 안 좋아도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풀겠지 생각했다. 내 아이가 왕따처럼 학교에서 지내고 있는지,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 점심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잠자는 척을 하고 있는지 정말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말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학교에서는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요즘 학교는,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치료가 시급했다.
이미 중증 우울증 상태였고 아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고 있었지만 의문스러운 게 많았다. 믿을 만한 병원에 찾아가 아이의 상황을 상담했고 학교에서 도움을 받아 전문상담센터에서 검사도 받으며 아이의 치료 방법을 고민했었다. 그렇게 다시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과정이 시작되었고 무언가 해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그냥 감사했다.
아이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상태에 많이 힘들어했다. 아무것을 하지 않고 누워있어도 힘들어서 아이는 자주 펑펑 울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을 무기력과 싸우며 애쓰며 보냈다.
그런 아이에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공부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무기력에서 벗어날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작은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다 보면 시간이 빨리 가고 또 성취감도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제안이 그동안 아이와의 갈등의 원인이었던 공부에 대한 집착으로 여겨질 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아이의 판단에 맡겼고 스스로 목표를 잡아 실천하는 것을 지지해 주었다.
아이는 하루 3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수학문제도 풀고 책도 읽고 정해진 3시간을 무언가에 집중해 보려고 노력했다. 일하는 낮시간에 종종 아이와 통화하며 아이의 상황을 살폈고 가능한 일찍 퇴근하며 아이와 하루 일과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도서관에서 보내는 하루 3시간이 아이의 무기력함을 이겨내는데 조금씩 도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짧은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는 많이 밝아진 모습으로 학교에 등교를 했다.
그렇지만 정해진 학교 수업시간을 온전히 채우는 건 아이에게는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으니 차라리 조퇴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매일 학교는 가되 힘들면 조퇴를 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아이의 마음을 먼저 살피려고 노력했다.
50일 전만 해도 우리 아이는 올해 졸업을 하는 게 목표였다.
일반적인 고등학교 3학년, 입시를 위해 달려가는 수험생 아이들과는 많이 달랐었다. 치료를 받고 건강해지는 게 시급해서 다른 어떤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수능 100일 기도를 시작한다는 내용을 성당 주보에서 보았을 때 큰아이 때처럼 부담 없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참여했을 때가 생각나 잠시 마음이 먹먹했다. 그렇게 나는 한발 물러난 채 100일 기도에 참여하는 다른 친구 엄마들을 한동안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어야 했다.
8월 말 어느 날 아이가 올해 남은 기간 몇 과목이라도 공부해서 시험에 응시해 보겠다고 했다. 수능원서 접수를 시작할 시기였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원서 쓰고 대학 지원을 고민하는 상황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더없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라도 목표를 가지고 보내는 시간은 그 과정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동안 혼자서 몰래 하던 기도를 용기를 내어 수험생을 위한 기도 모임에 나가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기도를 한다.
끝까지 한번 가보게 해달라고, 무사히 올해 계획대로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게 해 달라고,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음도 단단해 지고 좀 더 성숙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해 달라고...
그러한 과정이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가는 우리 아이에게 더없이 소중한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을 믿는다.
아직까지 아이는 늦게 시작한 수험생의 시간을 잘 보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