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0일
주님, 저희가 당신의 마음을 닮아 드넓은 대지처럼 모든 것을 말없이 받아들일 때, 언젠가는 생명의 싹이 저희 안에서 움트리라는 것을 믿고 희망하게 하소서.
수능 시험 50일 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능 50일의 기적'이라고 써 봤다. 생각보다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질문, 그리고 어떤 수험생의 수기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글들이었다. 50일의 기적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의 심정이 어떤지를 고려했을까 질문에 대한 의견을 적은 작성자들은 공부방법에 대한 몇 가지와 '적지 않은 수험생들'이라는 단서 조항을 가지고 그래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긍정적인 말을 해 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알 것이다. 질문자들은 정답이 있다고 믿어서 묻는 것도 아니고 정답을 알고 싶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지금을 불안한 마음을 위로받고 싶고 남은 기간 버틸 기대감을 붙잡고 싶다는 것을.
무기력함을 이겨보려고 하루하루 애쓰고 있을 때 아이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험생들이 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어서 아이의 이 말에 나는 마음이 참 아팠다.
무기력한 하루하루의 상황을 버티며 우리 아이도 수능 전 50일을 맞이하였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급하게 시험을 보기로 결정하면서 그동안 수능시험 원서접수도, 수시원서 접수도 같이 했었다. 그러면서 이런 걸 요즘은 학교 선생님들이 해 주지 않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3년 전 수험생이었던 큰 아이가 있었지만 큰 아들은 어떻게 했는지 잘 몰랐었다. 그냥 "수능 원서는 접수했니?, 수시 학교는 접수했니?" 하고 확인만 했었다. 예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과 함께 고민하며 선생님이 권유해 주는 대로, 또 때로는 선생님과 실랑이를 하며 선생님의 허락을 구하며 원서를 썼었던 상황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공부해 온 시간이 짧지만 그래도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의 좋은 선택을 하고 싶었던 탓에 원서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전문가의 조언이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좀 답답했었다.
요즘 아이는 학교에 등교했다 조퇴를 반복하며 집에서 나름의 수험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가 시험을 보기로 결정하고 나서 그래도 조금은 편안하게 입시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만 그러면서 나는 또 다른 조바심과 불안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가 노력을 하고 있고 다른 수험생들과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머리로 생각하면서도 온전히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겠는데', '아침에 좀 일찍 좀 일어나지' 하는 생각과 아이를 향한 불만이 자꾸 불쑥불쑥 올라왔다.
요즘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다시 아이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꿈만 같고 말할 수 없이 기쁘면서도 좀 더 아이가 빨리 마음의 문을 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가 없다. 지금의 상황이 조금만 더 일찍 왔었더라면 아이의 마음이 그렇게 병들지도 않았을 것이고, 남들처럼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든든하게 고3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그 안에서 내가 겪었던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 속에서 주님께서 분명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편으로 인해 힘들었던 시간들 그리고 그러는 상황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아이의 상처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잘못했던 일들이 이렇게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교만하고 오만하였던 나의 모습과 그런 나의 태도로 상처받았을 사람들과 그러한 기억이 종종 떠오를 때면 많이 후회했고 마음속으로 반성하고 뉘우치며 용서를 빌었다. 주님께서 내 잘못을 알게 해 주시려고,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일이 기적과 같이 내게 일어났듯이 분명 우리 아이에 대해 주님께서 계획하시는 바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힘든 시간도 견디어 낼 힘을 우리 아이에게 주실 것이고 또 성실하게 그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분명 은총을 내려 주실 것이라는 걸 믿는다.
나의 조바심과 불안을 그렇게 오늘도 주님께 내어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