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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다 Mar 29. 2022

클래젯 윌슨의 전쟁과 그 외의 꽃들

한 미국인 화가가 본 1차 세계 대전

클래젯 윌슨, <전쟁의 꽃 - 중량탄 폭발 -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느낌과 소리와 냄새 그대로>

 


그날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상단에는 우크라이나 기사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눈에 띄는 제목을 눌러보니 가장 먼저 강렬한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는다. 난민들의 지친 표정, 폭격으로 황폐해진 시가지나 젤렌스키의 연설 장면이 아닌 낯선 회화 작품이었다. 추상화에 가까운 강렬한 선과 선명한 붉은색, 왼쪽 가장자리에 창백한 색으로 그려진 무력한 피해자들. 하단에 적힌 제목은 <전쟁의 꽃 - 중량탄 폭발 -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닌 느낌과 소리와 냄새 그대로>였다. 반쯤 추상화치곤 친절한 제목인걸. 화가의 이름은 클래젯 윌슨, 미국인이었다.

1887년생 윌슨은 당대에 잠시 유명세를 탔으나 지금은 거의 잊혀진 화가다. 유하진 않지만 서 깊은 혈통을 자랑하는 가문 출신으로, 콜럼비아대 미술 강사 겸 화가로 활동하던 그는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프랑스 전선에 배치된 그는  미국 전쟁사상 가장 격렬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벨로(Belleau) 숲 전투에 참가해 다수의 무공 훈장을 받았다. <전쟁의 꽃>은 윌슨이 1차 대전을 소재로 그린 20여 점의 수채화 연작 중 하나인데, 전쟁이 끝난 후 기억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시리즈는 1차 대전을 다룬 동시대의 다른 미국인 예술가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쟁의 참상을 표현했다는 평과 함께 윌슨의 대표작이 되었다.



좌: <벨로 숲 샤토 티에리 구역에서 탄막을 가로지르는 연락병> 우: <낙오자 - 샤토 티에리 퇴각 시 프랑스 부상병>
<프랑스의 구원자 - 잔 다르크, 성왕 루이, 클로비스와 일반병의 손>


윌슨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현장을 다양한 방식과 관점에서 다뤘다. 어떤 그림들이 종군기자의 르포 사진처럼 현장감 있으면서도 강렬하게 전쟁의 순간을 담았다면, 다른 그림들은 감정과 심리적 상태의 묘사에 주력한다. <벨로 숲 샤토 티에리 구역에서 탄막을 가로지르는 연락병, 한 팔을 총탄에 잃고 정신이 나간 모습>은 병사의 공허한 눈과 유령 같은 형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일한 소재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1917>의 연락병 주인공들이 보여 준 정신적 단단함을 이 그림 유일한 등장 인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에 등장한 PTSD의 선조뻘 개념인 '포탄 쇼크(shell shock)'가 짐작되는 모습이다. 반면 깊은 푸른색 허공 위로 고딕 대성당을 장식하는 조각 같은 형상들이 떠오르는 <프랑스의 구원자 - 잔 다르크, 성왕 루이, 클로비스와 일반병의 손>는 화가가 실제로 목격했을 리 없는 초자연적인 광경을 담고 있다. 역사 속 프랑스를 구했던 세 영웅의 귀환을 간구하는 듯, 병사들의 시신에서 뻗어오른 희미한 손-벨로 숲의 연락병이 잃어버린 그것-수초처럼 연약하게 흔들린다.



프란시스코 고야, <이렇게 일이 일어났다> / 클래젯 윌슨, <죽음의 춤>



일부 작품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연작 <전쟁의 참> 떠오른다. 윌슨은 젊은 시절 스페인 여행을 떠나 여러 거장의 작품을 감상했고, 전후에도 "스페인에 관한 모든 것"을 좋아했으니 아마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불가리아-프랑스 철학자 츠베탕 토도로프의 말을 빌자면 고야는 "영웅적 무훈이 아닌 '전쟁의 치명적 결과'를 보여주려 애썼", "너무나 강력하여 전쟁 아닌 모든 것을 망각하게" 만드는 전쟁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윌슨의 연작에서도 영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야가 시종일관 창작자이자 관찰자로서의 거리를 유지했, 참전 군인인 윌슨의 관점은 국이 속한 합국 진영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상대에 대한 냉소와 조롱은 그가 전선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 중 일부였던 듯하다. <죽음의 춤>은 철조망을 넘던 독일군이 연달아 피격당하는 모습을 '춤'이라 명명한다. 평화로운 시대라면 연쇄살인범에게 어울릴 법한 농담이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군인에게 잔인한 웃음은 자신이 저지르는 끔찍한 폭력을 정신적으로 소화해 내기 위한 심리적 방어 기제였다. 자신이나 자신의 편이 저지른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죽음 자체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축소한다. 이처럼 전쟁 전에 존재했던 평화로운 세계의 질서는 군인의 내면에서 두 번 파괴된다. 사람을 죽이는 순간, 그리고 시신을 향해 웃는 순간.

웃음의 가장 흔한 소재 중 하나는 성이다. 윌슨의 어둡고 냉소적인 유머에서도 성적인 뉘앙스가 종종 느껴지는데, 주로 폭력과 성이 겹치는 형태다. <H 백작부인의 침실 - 이 미려한 꽃의 심장부에 검은 죽음이 무겁게 내려앉다>에서는 어느 프랑스 귀부인의 섬세하고 장식적인 침실에서 한 독일군이 죽어가고 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바지춤은 성기가 드러나기 직전까지 내려가 있다. 강간을 연상시킬 수 있는 지점이다. 제목의 이중성도 이런 독해에 일조한다. '미려한 꽃'은 아름다운 침실을 일컫는 걸까, 독일군을 조롱하는 여성 혐오적 욕설일까. 시리즈의 또 다른 작품인 <어둠 속의 만남>에서는 동성애적 뉘앙스가 더욱 전면에 드러났다. 상대의 배에 칼을 깊숙 밀어 넣는 미군과 그에게 살해당하는 독일군(모자로 구분된다)의 실루엣에서 다른 종류의 '만남'을 연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H 백작부인의 침실 - 이 미려한 꽃의 심장부에 검은 죽음이 무겁게 내려앉다>
<어둠 속의 만남>


윌슨의 '게이 조크'는 사실 당사자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관능미를 말하는 시를 쓴 적 있으며, 여러 작품에서 남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전후에 그가 즐겨 그린 주제 중 하나는 스페인 북부의 젊은 남성을 담'바스크 선원'이었다). 두 작품에서 드러난 말장난과 암시는 그가 동성애에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전쟁 연작의 또 다른 그림인 <생존자 바쿠스>에서 포화를 피한 바쿠스 (바쿠스/디오니소스는 전통적으로 동성애 연관지어졌다)이 웃고 있는 모습처럼, 정체성 외부의 압력이 있다 해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이 다. 그렇기에 이중적인 암호 형태로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나아가 부상병을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에 비유한 <지하 응급 진료소>에서도 남성 신체에 대한 매혹이 슬쩍 어른거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 시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종교신화 주제를 덧씌웠 때 비로소 여성 누드를 그릴 수 있었던 것처럼.



17세기 이탈리아 화가로 동성애자였던 카라바조의 <바쿠스>와 <바쿠스로 분한 자화상>.



전후 윌슨은 그림을 계속 그렸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무대장식•인테리어 등 여러 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피비린내나 폭력과는 거리가 먼, 상류사회와 활발히 교류하는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년까지 자신을 해병대 출신이라 소개했다고 한다.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해병대'라는 자부심에? 군인의 강건한 이미지로 동성애자의 불리함에 대응하려고? 여러 이유를 추측해 볼 수 있겠으나, 사실은 그저 잊을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윌슨은 1차 대전 당시 악명을 떨친 가스전의 후유증으로 인해 평생 폐질환을 겪었다 하니까. 누구나 그렇듯, 클래젯 윌슨 또한 한 가지의 명사로 다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동성애자, 예술가, 스페인 애호가, 명문가 출신, 참전 군인. 그러니 슨의 전쟁 연작에 다양한 소재, 스타일, 심리, 감상이 섞인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전쟁의 꽃'과 '미려 꽃' 모두 그를 이루는 일부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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