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사진 몇 장 첨부
2월에 시칠리아를 다녀왔는데 아무것도 쓰지 않고 벌써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다닐 만큼 다녀서인가 싶다. 이탈리아에 다녀온 게 어쨌든 여섯 번째니까. 다닐 만큼 다녔다는 것은 마술적인 순간을 굳이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회복력이 조금 높아졌고, 그래서 웬만한 일은 적당히 넘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여행의 경우 기차표를 잃어버려서 벌금을 물기도 했고, 이탈리아 국내선 비행기가 6시간 연착되면서 한국 귀국 편을 하루 늦춰야 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당시엔 머리가 아프고 돈이 아까웠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기억에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러나 둘 다 결국은 이야깃거리일 뿐이다. 지금 이렇게 무자비하게 요약해서 서술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최근에 들어선 어떤 여행지가 그렇게 절실히 그리웠던 적은 없다. 그리웠던 곳들이 이제는 꽤 퇴색되었다.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 물론 내 삶의 일부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일부라는 생각도 안 한다. 즉, 인간관계나 커리어에 있어 돌파구를 찾는다거나, 더 나은 사람이 된다거나, 그런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여행은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경우 여행지의 기억은 그 자체로 중요하진 않지만 가끔 들여다보면 좋은 것, 예를 들어 잘 만든 장신구나 벽에 거는 그림의 역할을 한다. 가끔 당신은 벽에 그린 그림을 보며 그 그림 속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지? 잘 만든 장신구를 몸에 달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지? 결국 사치품이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치가 필요하기에, 또 다녀왔다. 그래도 여전히 여행은 단절이니까. 나는 단절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