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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balist Dec 20. 2022

재입사해보니 괜찮더라.

돌아온 탕자의 말 :  퇴사보다 재입사가 의미 있다.


 왜 다시 돌아왔어요?



떠났던 회사에 재입사하고 제일 많이 들은 말이다.

한번 퇴사한 회사는 전 남친과 같아서 재결합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다. 애증의 표본 같은 존재.


내가 다시 돌아온 회사, 아이데틱(EIDETIC)은 나와 애증의 관계다.

'너를 미워하지만 사랑해' 이런 감정 같다.

전 연인관계처럼 그 사람의 사랑스러웠던 모습과 좋았던 모습을 모두 기억하기에 애정의 끈을 놓기가 힘들다. 2016년에 퇴사했고 6년 만에 돌아왔다.


아이데틱에 첫 입사했을 때, 2년 반을 혼 빠지게 일했다. 업무 강도는 강강강이었다. 잦은 출장과 야근, 오프라인 마케팅은 정신적 노동과 육체적 노동도 함께 한다. 회사의 주 사업이 미국에서 이뤄지다 보니, 한국 지사는 한창 성장 중일 때라 많은 일을 할 때였다. 마케팅 AE 역할로 전시, 이벤트 기획에 PR까지 1인 다역을 하다 보니 몸이 견디질 못했다. 잘하려고 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았을 때도 없지 않았나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었다.


나를 포함한 자발적 퇴사자는 계속 생겨났다. 마케팅 업계의 특수성 때문인지 전 직원 비율 중,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업무의 빡셈을 경험하며 실력을 쌓고 이직을 택했다.

힘든 고용시장에서 어떤 관리자든 좋은 직원이 나가는 걸 원치는 않을 것이다.


퇴사를 안 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떠나는 직원에게 좋은 퇴사 경험을 주고 싶다며 Farewell에 신경 쓰는 대표님에게 피플팀 관리자가 근본적인 문제를 꺼내놓았다.


인재 유출이 없도록 회사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나, 현세대 이직관은 많이 달라졌다. 이전 기성세대는 회사에 충성하며 평생직장을 꿈꿨으나 '이직은 곧 능력'인 트렌드로 바뀌었다. 회사에 자기 자신을 갈아 넣었던 기성세대와 달리, 요즘 직장인은 커리어 성장 욕구가 크며 회사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고 있다. 이직을 통해 이력서는 풍성해지고 실력은 쌓고 연봉을 올려야 하기에 '퇴사'의 본질적인 문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의 떡이 항상 커 보이지는 않았을 터, 환승 이직을 했던 직원들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왔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재고용이 전체 고용의 10~20%를 차지하며 부메랑 직원*이 계속 증가한다고 말했다.

*부메랑 직원(Boomerang employee) : 퇴사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직원


우리 회사는 나를 포함하여 재입사한 직원이 60%가 넘는다. 일반적인 수치에 비해 3배나 많은 셈이다.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우르르 떠났다가 좀비처럼 몰려드는가.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생각이지만 3가지로 정리해봤다.



아이데틱 포토월 : 사진 속 얼굴들 중, 60%가 부메랑 직원이라는 사실?!



1. 기꺼이 함께 하는 마음


아이데틱을 퇴사했을 때, 난 정반대 성향의 회사로 취직했다. 수능만큼 어렵다는 NCS시험까지 쳐서 합격한 꿈의 직장 공기업이었다. 처음엔 참 좋았다. 야근이 허용되지 않도록 6시가 되면 PC가 꺼지는 시스템, 자유로운 휴가 사용, 복지혜택은 말할 것도 없다. 업무 방식도 많이 달랐다.

사기업은 ‘어떻게 돈을 잘 버느냐’가 목표이면, 공기업은 ‘어떻게 예산을 잘 쓰느냐’였다.

목표가 다르니 일하는 사람들의 성향도 다를 수밖에.


정부 예산이 투입되다 보니 돈을 잘 쓰지 않으면 감사 때 지적을 받고 언론의 비판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해내기보다는 문제가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문제가 될 만한 작은 여지도 남기지 않기에 사업을 진행하는 절차가 까다롭고 예산을 쓰기까지 보고서와의 무한 싸움이었다. 성격이 급한 나는 답답한 절차와 결재 대기의 늪에 빠져 여러 번 속이 터졌다.

스피드보다 안전을 추구하는 상사들은 나의 의견과 호들갑 따위에는 안중에 없었다. 매사에 신중한 자세로 느리게 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무인도처럼 떠있었다.


일은 저만 합니까?


혼자 묵묵히 일만 했는데 내 책상엔 서류가 쌓여갔다. 일하지 않는 직원들의 업무가 고스란히 내게로 왔다. 부패만 없으면 잘릴 일 없는 공기업에서는 월급 루팡들이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던 중, 다른 팀원의 업무를 내가 대신해야 되는 상황이 되면서 참다못해 상사에게 대들었다. “이걸 왜 제가 해야 되죠?” 부장님의 한 마디는 내 의지를 꺾어버렸다.


“그럼 내가 하리?”


아이데틱에 일할 때는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었다. 일을 회피하는 사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각개전투 속에서도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전달하며 힘들 때는 서로 도왔다. 프로젝트가 있으면 잘 해내겠다는 한마음으로 모두가 뛰어들었다. 그라운드에 황금 어시스트들이 멋진 패스를 하며 골대로 달려갔다. 백전백승의 슈팅이었다.


5년 반을 골대 근처도 못 가고 공기업에서 뛰다가 퇴사 했을 때, 엄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좋은 회사 때려치우고 간다는 게 또 거기야! 편한 직장 두고 왜 사서 고생해!


엄마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다시 돌아온 회사의 업무량은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모두가 바쁘고 여전히 열심이었다. 내가 불구덩이에 몸을 던졌다는 게 몸소 느껴졌다. 재입사하자마자 나를 활활 태웠다.

하지만 이곳은 나만 불꽃이 아니지 않은가.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일하는 회사 분위기’는 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있을까. 조직문화는 소통하는 리더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로 인해 완성된다는 게 진리였다. 재입사한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 때문에 다시 왔어요.


고인물에 개구리로 살던 나도 재입사를 해서야 깨달았다.

여기는 흐르는 물이구나!



2. 함께 축배를 들어라!



조직의 생산성에 가장 큰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은 성과급이 아닐까 싶다. 우리 회사는 프로젝트를 수행한 직원들에게 성과를 공유해주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보너스로 확실하게 보상해준다. 지금 회사에 예전에 근무했을 때도 연말에 받은 성과급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곤 했었다. 일할 때는 정말 바쁘고 힘들지만 확실한 보상으로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 현금은 현금이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공유하는 게 가장 의미 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직원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PER(Post-Event Reports)을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각 자의 역할과 진행하면서 좋았던 점, 개선해야 될 부분을 함께 공유한다. 한마디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어떤 기쁨과 애환이 있었는지 경험을 말하는 자리다. 서로 다독여주고 응원하면서 그렇게 지난 일을 안주 삼아 축배를 드는 우리 회사 문화는 나의 가장 큰 자랑이다.



3. 마르지 않는 커리어



회사의 비전이 확실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좋고 보상도 있다는 건 내가 좋은 조직에 있다는 증거지만, 직장생활의 큰 목적은 커리어의 완성이 아닐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해외마케팅 컨설턴시여서 파트너 관계로 일하는 기업들이 구글, 삼성, 포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다. 국내외 매출 1조 원 이상의 대기업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외마케팅 전략을 짜고 기획을 하며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BTL 마케팅 업계에서는 꽤 영향력 있는 회사라서 일이 마르지 않고 덕분에 커리어도 계속 올라가고 있다.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늘어나는 흰머리는 슬프지만 나의 포트폴리오는 좋아요!가 빵빵 늘어난다는 게 큰 장점이다.


굵직한 기업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회사 내에서도 직원들이 정체되지 않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는 주간 미팅 때마다 업계 동향과 트렌드, 사소한 정보도 나눔을 하며 안목을 키우고 있다.


배울게 많은 조직에서는 회사의 발전과 함께 나도 성장한다.

나무를 차곡차곡 심으며 숲을 그리는 회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들,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하며 내 능력이 우상향 되는 회사.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 막연하게 좋은 직장보다 ‘훌륭한 인재’가 되는 게 먼저가 아닐까.





화목한 날, 화목한 나 


얼마 전, 환영받으며 재입사한 Creative Team의 키미(Kimmi) 팀장은 좋은 부메랑 직원이다.

사정이 있어 퇴사를 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여기서 사정이란, 결혼을 하게 되면서 남편의 거주지인 베트남으로 가야 되는 상황이었다. 가정과 일,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어서 퇴사를 했다는 팀장은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까?


우리 회사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음에도 원격근무(Work from anywhere)를 유지하고 있다. 즉, 시간과 장소에 제약 없이 자율근무를 하며 온라인 회의(Zoom Call)를 통해 협업하고 있다.

화요일, 목요일은 ‘화목한 날’로 전 직원이 원격근무를 하는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시대가 왔다는 기사에서 워킹맘들이 ‘자녀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 좋다’는 말은 꽤 감동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화목한 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대표님은 키미 팀장에게 “외국에 베이스를 두더라도 원격으로 근무하는 건 어려움이 없으니 자유롭게 일해라고 말했다.


온라인 회의를 시작하면, 베트남에서 얼굴을 보이는 키미 팀장, 뉴욕을 배경으로 접속하는 매튜 팀장 등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마음을 이어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원격근무가 생산적일 수 있는 건, 해외에 있는 인재들과 함께 일하고 각 자의 시간에 열심히 할 것이라는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돌아온 탕자의 특명



내가 아이데틱에 다시 돌아올 때, 대표님은 나에게 특명을 내렸다.


우리씨, 우리 회사의 선한 영향력을 알려줘.


전에는 선발투수로 최전선에서 뛰었다면 이제는 후방에서 종군기자의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대표님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다. 회사가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내부 마케팅은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자랑할 만한 프로젝트도 멋진 팀원들의 이야기도 일에 묻혀 잊히고 있었다. 9월에 입사하자마자 나 또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특명을 잠깐 보류하긴 했지만, 그 사이에 여러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글로 대표님 앞담화해도 돼요?”


대표님은 웃으며 자긴 믿지 말고 조직만 믿으라 했다.

(사람은 역시 변하지 않는구나..)


특명을 받고 첫 번째로 나의 타이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Evangelist?

PR Specialist?

Communications Specialist?


나에 대한 주어가 바뀌면 나의 가치와 생각도 달라지기에 이 세 가지 타이틀을 두고 일주일을 고뇌했다.

결국 나는 'Communications Specialist'라는 새로운 커리어로 회사의 선한 영향력을 알리기로 했다. 자부심과 개혁가의 면모를 가진 손석희 같은 태도와 성과보다는 노력과 팩트를 말하는 종군기자의 역할로 뜨거운 우리의 이야기를 말할 것이다.


Communications Specialist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는 않겠지만, 나는 앞으로 우리 조직에 대해 차분히 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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