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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by 김상균

"아름다움을 보는 영혼은 때때로 혼자 외롭게 걸을 수도 있다"

-볼프강 폰 괴테


“인간은 그 자신의 실존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의 말이다. 인간에게 실존적 외로움이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고 그것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


외로움에 관한 여러 정의가 있는데 독일의 신학자이자 루터 교 목사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과 고독의 정의를 이렇게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라고. 바쁜 일상생활을 하는 개인이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을 보면 폴 틸리히의 이 격언은 이해가 된다.

Caspar_David_Friedrich_-_Der_M%C3%B6nch_am_Meer_-_Google_Art_Project.jpg?type=w800 바다의 수도사(1808~10)-다비드 프리드리히

외로움은 즐기기 힘들지만 고독은 어찌 보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보통 외로움 속에서는 이를 피하기 위해 사회활동이나 취미에 집중하고, 고독감 속에서는 자아성찰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정서적 상태는 예술가들의 창작욕구를 자극하여 수많은 명작들의 탄생을 이끌어 내었는데, 바로 이 실존적인 주제가 문학과 음악, 회화를 통해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을 어루만져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주제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와 화가는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와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연상이 된다. 특히 슈베르트의 음악을 설명하거나 감상할 때 프리드리히의 회화 작품은 절묘하게 음악과 어울리는 느낌을 주고 있다.


두 명의 예술가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로 인간의 외로움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켜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한발 더 나아가 치유해주고 있다.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 이들은 인생의 여러 굴곡들을 어떻게 자신의 예술로써 풀어나갔을까?


가곡의 왕


“가곡의 왕” 슈베르트의 음악은 우리에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아련함 그리고 쓸쓸한 고독함 등 여러 감정들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베토벤 사후 그의 옆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존경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베토벤에서 느낄 수 있는 철학적이거나 한 순간도 숨 쉴 틈 없는 엄청난 몰입 감을 느끼게 해 주기보다는, 문학적 이해와 섬세한 감수성을 통한 좀 더 감성적이고 은유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는 슈베르트의 음악이 고전에서 낭만으로 가는 시기적 교차점에 있기도 하지만 그가 천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성의 에너지가 음악적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슈베르트는 18세기말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교장선생님인 아버지와 요리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넷째로 태어났다. 학교생활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그는 유독 음악을 좋아했다. 슈베르트는 유년시절 빈 소년 합창단의 전신인 왕립소년 합창단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첫 작품을 작곡하고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했다고 알려진(실제로는 사실과 다르지만)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의 문하로 들어가 작곡을 공부하였다. 스승과 함께 음악을 공부하면서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사랑하였고 베토벤을 존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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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에게는 그의 재능을 아끼고 후원하는 모임인 슈베르티아데 Schubertiade는 일명 “슈베르트의 밤”이 있었는데 재력가와 법률가 등의 친구들이 주축이 된 살롱문화 형태의 토론회였다. 그곳에서 슈베르트는 문학에 눈이 트이게 되고 음악과 시를 연결하여 수많은 가곡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뛰어난 음악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전에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였다. 그가 친구를 만나서 하는 첫인사가 보통 “배가 고프다네”였고,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테레제와의 사랑도 실패하면서 그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마저 놓쳐버리게 되었다.


빈의 슈베르트가 마지막을 보냈던 방에는 그가 사용하던 기타가 있다. 피아노를 살 돈이 없었던 그가 기타를 사용하여 작곡을 하였던 것이다. 600여 곡의 가곡포함 1000여 곡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작곡한 슈베르트는 31살의 나이로 요절하는데, 그가 베토벤만큼만 이라도 살았더라면 음악사가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적 구도자


고독하지만 신비하고 영적인 자연의 모습을 그린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는 독일 초창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현재는 독일이지만 당시 스웨덴 영토였던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에서 태어난 그는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7살이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3살 때 빙판이 깨져 자신을 구하러 온 동생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었으며 17살에는 누이가 죽게 된다. 이런 어두운 가족사는 그를 유한한 인간보다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해 몰입하게 하였으며 그 대상을 거대한 자연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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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또 다른 풍경화의 대가인 컨스터블(John Constable)이나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와 비교한다면 그의 작품은 훨씬 진지하며 엄숙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런 그를 두고 동료화가들은 “풍경화의 비극을 발견한 화가”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기도 하였다.


그의 그림에는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뒷모습과 안개 등이다. 뒷모습은 자연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하고, 안개는 어두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가족사를 표현하는 듯하다. 또 그림에서 종종 보이는 십자가와 수직의 느낌은 독실한 루터교 신자로서 그의 종교적 숭고함을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에게 그림이란 신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드리는 모습과 같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그에게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난 시점에는 밝은 작품들이 탄생하였는데, 그것은 마치 슈베르트가 연인이었던 테레제를 만난 시점에 작곡된 교향곡 3번이 밝고 에너지 넘치며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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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연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인간 실존에 관해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를 담기보다 자신의 심상에 비친 모습을 작품 속에 담아내려고 하였다. 그는 “마음의 눈과 육체의 눈은 구별되어야 하며 화가는 자기 앞에 있는 것뿐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본 것도 그려야 한다. 내면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앞에 있는 것도 그리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그의 그림이 풍경화이지만 심오하며 내면적인 느낌을 주는 것은 그의 철학적 사유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이 히틀러의 사랑을 받아 한동안은 독일 나치즘의 이상으로 치부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실존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이고 영적인 탐구를 해온 프리드리히가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실존주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이다”라고 말하였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죽음은 미래에 알 수 없는 어떤 시점에서 한 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 자체 속에 이미 포함되어 '현재를 구성하는 요소로 보고 있다.


즉 우리 인간은 죽음을 예견하며 사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의 작품들은 원숙한 후기로 갈수록 실존주의 철학이 그들 예술세계와 맞닿아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24개의 시(詩)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연가곡집이다. 세상과 연인에게 버림받은 나그네의 정처 없는 방랑을 그린 뮐러의 작품에 슈베르트는 깊이 빠져들었다. 아마도 그의 시(詩) 속 방랑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나그네에서 드러나는 허무와 비애 그리고 고독감은 슈베르트의 음악이 죽음과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수용하는 실존주의적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슈베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The Great"과 이 작품 이후 작곡에 착수해서 세상을 뜨기 두 달 전 완성한 현악 5중주(String Quintet In C Major)는 삶과 죽음 사이의 심연을 넘어선 영혼의 울림을 주고 있다.


슈베르트 현악 5중주의 아름다움에 심취한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은 자신의 장례식에 피아노음악이 아닌 이 작품의 2악장을 연주해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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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커다란 주제이다. 작품”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산정상에선 한 남성이 안개 자욱한 산등성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뒷모습을 그린작품이다.


안개는 높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다같이 보이며 마치 유한한 삶 속의 가늠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보고 있는 듯하다. 키에르케고르의 발언을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은 마치 신 앞의 선 단독자처럼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그의 말년 작품인 “인생의 단계”는 생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림 속 다섯 척의 배는 각각 인생항로를 향해 떠나는 인간을 나타내고, 다섯 명의 인간은 유아기와 유년기, 청년기와 중년기 그리고 마지막 노년기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세상에 우연히 내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죽음과 고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보다 이를 수용하며 “인생은 덧없을 수 있지만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는 스스로 줄 수 있음”을 인지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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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는 인간내면의 실존적 외로움을 자신의 예술로서 승화시켰다.


두 예술가의 작품은 고전에서 낭만으로 넘어오는 시대적 요구와 함께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내적인 성찰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작품은 여러 감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인간의 나약함과 실존적 외로움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깨닫게 하였으며, 숭고함의 가치 또한 느끼게 해 주었다. 그들 삶과 예술의 주제는 결국 그것이 인간이든 신이든 자연이든 포용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넓은 의미의)”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240830_021110.png?type=w800 창가의 여인 (1822)-다비드 프리드리히

에리히 프롬(Erich Fromm)에 따르면 “본래 인간은 하나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어진 이유는 우리 시대가 자본주의의 고도화로 인한 물질가치 중심사회가 돼버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현대는 대부분 모든 것에 가치가 매겨지고 있고 비슷한 가치끼리만 교환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문제는 비단 이것이 상품에만 적용되는 것 이 아니고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에 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좋은 상품이 되어야만 하는 시대, 우리는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를 통해 그들이 추구해 온 가치를 다시 한번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추천 음반

슈베르트의 가곡 이외에 기악곡과 교향곡을 프리드리히 그림과 함께 추천해드리고 싶다.


교향곡 3번은 프리드리히가 아내 봄머와 신혼여행을 떠났던 곳에서 그린 “뤼겐의 백악절벽”(1818년작)을, 아르페지오네 소나타(Arpeggione Sonata)는 아내를 그린 “창가의 여인”(1822년작)을 추천한다.


현악 5중주(String Quintet)는 개인적으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Rostropovich)와 함께한 Melos 사중주단의 연주앨범과 프리드리히 말년 그림인 “인생의 단계”(1835년작)를 함께 감상해 보시길 추천한다.


슈베르트의 마지막 심포니”THE GREAT”은 프리드리히의 대표작”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년작)가 개인적으로 잘 어울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ZEfmpGTc6uo

https://www.youtube.com/watch?v=Wi-MuJ4BTWE

https://www.youtube.com/watch?v=o_i7R-wahdQ

https://www.youtube.com/watch?v=tmc4BYLhH0c

https://www.youtube.com/watch?v=j440JM0bhtk&list=RDj440JM0bhtk&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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