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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므 레터 Jun 19. 2024

즐거우십니까?

비꼬고 싶지 않아. 의심하고 싶지 않아.

현관에 선 채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센서등이 꺼졌다. 머릿속에는 센서등을 기가 막히게 활용해 연출한 어느 드라마의 키스신이 스쳐간다. 무표정한 얼굴로 조금 더 서 있었다. 이번에는 선물 받은 과도를 경동맥에 꽂아넣고 있는 내 모습이 스쳐간다.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그 무엇도 느끼지 않은 채로. 오래 덮어 뭉근해진 이불 속이 위로가 되지 않을 무렵. 갓 따른 시원한 생맥주가 위로가 되지 못할 무렵. 간신히 그 누구도 그립지 않을 무렵. 슬픔이 없는 채로 십오 초쯤 지나갔을 무렵. 


오히려 눈물조차 나지 않을 때가 더 힘들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채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가장 큰 형벌이다. 너무너무 슬퍼서 가슴을 빨래 쥐어짜듯 울어야 시원할 것 같다. 축축한 채로 너무 오래 있었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을 때, 나는 지독하게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삶의 어느 부분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간단하게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내 감정을 돌볼 시간이 없다. 배에 물이 차고 있는데,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 터진 구멍을 수선할 틈을 못 내고 있다. 


하루종일 배를 잡고 깔깔 웃었는데 기쁘지가 않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며? 웃기다와 기쁘다는 아주 다른 말이란 걸 최근에야 깨달았다. 웃어서 도파민이 나온다면, 웃어서 복이 온다면, 웃어서 그 잠깐이라도 지루함을 견딜 수 있다면 물론 난 기꺼이 배를 움켜쥐고 웃을 것이다. 있는 힘껏 웃어댈 것이다. 저항없이 웃음을 터트릴 것이다. 그것이 감정 조절의 문제일지라 하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이 활짝 웃는다. 카메라가 내려가면 그들의 눈매와 입꼬리도 같이 내려간다. 손님을 맞는 순간 나는 웃으며 인사한다. 손님이 매장을 나가는 순간 나는 내 표정으로 돌아온다. 친절하게 응대해줘서 고마워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손님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친절한 게 아니다. 그냥 잘하고 싶은 것이다. 물건을 팔아야 즐겁다. 당장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이 없어도 그렇다. 아마 뭔가에 중독된 것 같다. 돈을 쓰면 잠깐 기쁘듯이, 돈을 쓰는 걸 보는 사람을 보며 그 기쁨을 나눠 가지는 듯하다. 


너는 뭘 할 때 가장 즐거워? 질문이 많은 애인이 묻는다. 나는 ‘즐겁다’라는 단어를 오래도록 곱씹는다. 재미있는 것? 푹 빠질 수 있는 것? 설레게 하는 것? 마음 속으로 엑스 자를 그린다. 정면 승부의 반댓말은 뭘까요? 내 물음에 보마 씨는 답한다. 비스듬히? 비겁하게? 나는 즐거움이라는 단어를 정면승부할 수 없어서 유의어를 찾아 멤돈다. 그러다가 기어이 찾아낸 답은 이렇다. 마음 맞는 사람이랑 이상한 농담할 때?


그거라도 해야지, 그렇게라도 해야지. 내가 나에게 관대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맥주잔을 앞에 둔 채 침을 튀기며 욕을 하고, 그러다가 저질스러운 농담을 하고, 온갖 세태를 비꼬고, 아주아주 헤프게 웃고. 힘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조각조각 내어 아주 잔인하게 씹는다. 우리의 가장 즐거운 안주거리. 다 놓은 듯 우는 사람이라면, 힘껏 움켜쥐듯 웃기도 해야한다. 내 기분은 시소처럼 양 극단으로 널뛴다.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현기증이 난다. 


참 안쓰러워. 나는 또 운다. 안쓰러운 사람 하나를 생각하면 온갖 사람들이 다 떠오른다. 어느 날 갑자기 외식을 나가서 밥을 맛있게 먹고 옥상에서 뛰어내렸대. 꺄르르 꺄르르 아주 행복하고 짜릿하게 촬영을 한 다음 날 목을 멘 채 발견되었대.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괜찮지 않아. 조금 전엔 참을 만했는데 이제는 아주아주 견딜 수 없도록 무거워. 다들 턱끝까지 물에 잠긴 채 숨이 끊기지 않을 무렵에만 아주 잠시 숨을 쉬듯 웃겠지? 그 기회를 잘 잡아야 해. 즐겁다는 것, 그것은 너무 찰나여서 나를 자꾸만 비껴간다. 하지만 아주 잠깐, 우리는 빛나. 무수히 많은 순간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잠깐 찬란해. 찬란함 속에서 그 시간은 무한해. 우리는 우주의 먼지, 우리는 우주의 빛. 샤워를 하고 나면 조금은 즐거워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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