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사선택의 기로
또 프로젝트 오픈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정신없는 야근과 주말 출근, 밤샘 끝에 어영부영 오픈은 했다. 세상에 도대체 만족스러운 오픈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프로젝트 오픈 시점이 다가오면, 꼭 의사결정이 줄을 잇는다. 개발을 미처 끝내지 못한 요건이나 잡을 수 없는 결함, 누락사항에 대한 반영 여부나 처리 시점 같은 것들. 완벽을 추구하면 끝내 공개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다는 말도 이해는 간다. 어떻게 해도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계속 보완해나가야 한다는 것도. 아직 이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 의견 정도를 내지만 결국 결정은 대장들이 한다.
일단 오픈 전에 뭔가를 버린다는 건, 완성도 때문에 뭔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기한.
당연히 비용도 추가로 쓸 생각이 없다. 시간적으로든 자원적으로든 의지가 없든, 기한에 맞출 수 없는 상황인데 오픈을 한다는 건 반대로 기한을 제외한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얘기다.
우리 회사의 경우 가장 먼저 사용성을 버린다. 기능만 되게 한다. 퍼블리싱이 죄다 깨져서 틀어지는 UI, 라벨이 적용되지 않은 라디오 버튼과 체크박스, function 키가 먹지 않는 입력 폼, 지나치게 작은 팝업이나 폰트/이미지 사이즈... 디자인 정책에 맞지 않는 모든 요소들이 기능 수행만 된다면 일단 두고 오픈하는 쪽으로 결정이 난다.
그다음은 일단 오픈까지 꼭 되지 않아도 되는 기능을 미룬다. 통계나 정산 등, 일단 앞단 프로세스가 돌아가야 이뤄지는 이후 프로세스들을 아예 개발하지 않거나 한다 해도 정합성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고도 안 되면 핵심 기능을 제외한 모든 것을 덜어나간다.
내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MVP 모델 같이 돌려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다만 우리 회사는 애자일하거나 수평적인 구조도 아니고, 프로토타입을 일단 내고 수정해나가는 타입도 아니며, 오픈 시에 뭐가 안 되면 줄줄이 보고하며 욕을 먹고 시작하는 종류라는 거다. 그리고 B2B 회사가 아니라 고객과의 거래를 하는 회사고.
실제로 구매를 하는 End-User 뿐 아니라 쇼핑몰에 입점한 파트너사도, 그 시스템을 사용하는 내부 직원도 모두 서비스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고객인데 오픈 시점에서 버리는 건 모두 고객 편의 요소들이다. 늘 이 점을 참기가 힘들다. 어떻게 대고객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가장 먼저 사용성을 내던질 수 있는지. 기능만 되면 고객이 그 서비스를 좋다고 쓴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늘 그런 마인드로 수많은 서비스들을 사장시켜왔으면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고객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장의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유일한 공급자가 아니다. 정확하게 딱 집어 어떤 점인지는 몰라도 뭔가 불편하고, 못생겼고, 잘 안 되는 것 같고... 그러면 그냥 삭제하는 거다. 고객 경험은 그렇게 끝이다. 첫 만남에서 최악의 첫인상을 주고 뒤집기는 쉽지 않다. 어쩌다 한 번 들어온 사람도, 마케팅으로 작정해서 끌어들인 사람도 사로잡지 못해서 다 놓쳐버리면서. 이 일이 몇 년동안이나 반복됐고, 앱이나 쇼핑몰 자체에 매력을 느껴서 쓰는 사람은 전무할 거다. 독보적인 서비스도, 가격 경쟁력도 없는 주제에 서비스도 구리지. 뭔가 런칭할 때마다 반응도 없고, 그나마 조금 있는 반응도 비판뿐인데 왜 바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원하는 수치로 이탈률과 신규방문/재방문율을 아무리 내밀어도 대안으로 돌아오는 게 공격적인 마케팅뿐이라니. 근본적인 해결을 할 생각이 없는 건지.
다른 회사들도 이렇게 오픈 전 의사결정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퀄리티가 안 나오면 어느 정도 기한을 조정하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한 해에 신규 서비스를 엉망진창인 퀄리티로 다섯 개쯤 오픈하면 잘 되는 건가? 고객 유입도, 사용도 하지 않는 서비스만 앱에 덕지덕지 붙여두고서? 보고용으로 수치는 뽑기 나름이라며 현실과 다른 수치를 만들어내는 게 진짜 의미 있는 일인지 본인들은 스스로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그냥 위에서 까라고 했으니까, 그래서 그냥 그렇게.
속이 너무 답답해서 오픈하고 한숨 돌리자마자 글을 쓴다. 고생하고 욕먹을 거면 일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윗사람들의 정치에 휘둘리는 프로젝트가 속상하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은 계속 흘러가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몇 년 몇 개월씩 매달려서 오픈한 프로젝트가 여기저기서 욕먹는 건 당연히 달갑지 않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나조차도 그 비판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자가 적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얼마나 고객을 무시하고 어떤 의도로 이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분석한 그 글들에.
다른 외부 상황은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내부적으로는 어떤 걸 포기하고 어떤 건 잡고 가야 하는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그게 사용성이어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진짜 고객을 위하는 회사라면.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야 살아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