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살, 대기업 퇴사하고 인도에 갑니다

회사 밖에도 삶이 있다

by 에이치

치열한 고민 끝에 퇴사했다. 그리고 인도로 간다.






올해로 일한 지 딱 10년 차가 된다. 운 좋게도 대기업에 취업해서 대기업만 다녔다. 롯데에서 6년 차에 카카오로 이직했고, 카카오에서 올해 4년 차가 되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한국인의 일반적인 삶의 궤적을 모범적으로 밟아 온 사람이다. 초중고 나와서 스무 살에 인서울 대학교에 들어갔고, 스물다섯 살에 대기업에 취업해서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냥 누군가 정해놓은 것처럼 짜여진 그 코스를 달려왔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똑 부러져서 세 동강 나기 전까지는.





조금 입원하면 될 줄 알았는데 첫 입원에서 한 달을 찍었다. 붓기가 빠지지 않아서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일주일을 기다려서 수술했고, 다리에 17cm나 되는 금속판을 박아 넣었다. 퇴원한 후에도 꼼짝없이 휠체어 신세를 3달 졌고, 배리어 프리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게 됐다. 세 달 후에 두 번째 수술을 했다. 이렇게 오래 일을 안 해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힘들어도 회사를 다니는 게 기본값이던 내게 갑자기 주어진 휴식이 얼떨떨했지만 꽤나 괜찮았다. 어쩌면 내게는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회사에서 업무량도 꽤나 많았고 생전 처음 대상포진도 걸려보면서 건강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꽤나 많이 지쳐있었는데 미처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편안하고 안정적이어서 나에게는 오히려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 번째 수술이 끝난 후가 진짜 문제였다. 거의 네 달을 사용하지 않은 다리는 걷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서기도 힘들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너무 힘들었고, 어딘가에 경사로가 아닌 작은 턱만 있어도 그곳에 가기를 포기해야 했다. 보행기를 잡고, 목발을 짚고,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겨우 좀 걷기 시작하니 한 해가 다 갔다. 그때까지도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뛸 수가 없었다.


회사는 판교에 있었고 나는 노원구에 살았다. 출퇴근 시간은 왕복 3시간. 지금의 다리 컨디션으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 서 있을 수도 없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했다.






사람이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나는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취업하기 전에 1인 기업도 해봤고, 스타트업도 시원하게 말아먹어봐서 사업병이 완치된 상태였다. 그냥 안정적으로, 남들 다 하는 대로 회사에 다니면서 따박따박 월급 받아먹고 사는게 내 목표였다. 그런데 다리를 다쳐서 쉬는 1년 동안 나는 그 언제보다도 더 치열하게 나와 내 삶에 대해 고민했다.



이대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에 퇴근하고 회사 수면실에서 자고 다시 새벽같이 출근하던 삶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만들던 자식 같은 서비스가 이제는 내 삶과 너무 동떨어진 무언가로 느껴졌다.


내가 막연히 흥미를 가지던 것을 하나씩 몸으로 부딪혀보면서 나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다치기 전의 내가 일에서 가지는 최우선 가치는 돈이었다. 더 많은 연봉, 더 많은 월급. 그를 위해서 다른 가치를 다 뒤로 물려두었고 그 결과가 세 동강 난 다리와 여기저기 고장난 장기들이었다. 그렇다면 다친 이후의 나는 다른 가치를 찾아야지. 그게 적어도 돈은 아니어야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고, 그래서 불확실함을 최소화하고 안전장치를 만드는데 꽤 공을 들인다. 돈을 벌어도 예적금 통장에 일정액이 있어야 하고, 뭔가를 해도 돌아갈 곳이나 믿는 구석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직도 아니고 쌩퇴사를? 내가? 그게 가능할까? 여태까지 쌓은 경력과 회사 네임 밸류, 이 연봉을 다 걷어차고 나와서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보다 나 스스로를 설득하고 납득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과 공을 들였다.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으로는 진짜 아무 벌이가 없어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는 계산이 들어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나는 인도로 떠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더 깊이 배우고 체화하기 위해서. 이 한 달간의 모험이 내게 무엇이든 남겨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