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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Jan 12. 2024

덴마크 인생학교서 '확장지대'를 경험해봤습니다

익숙함을 벗어날 때 우리는 성장한다

모든 학생이 매일 점심시간 후에 모이는 어셈블리 시간에 다음 주 시간표에 대한 공지가 있는 날이었다. 


"다음 주에는 테마 주간입니다. '안전지대(Comfort zone)'라는 주제를 가지고 1주일 전체 시간표가 만들어질 예정이에요. 따라서 평소의 우리가 익숙한 시간표가 아니라 특별한 시간표에 따라 수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다음 주 시간표가 평소와는 다를 거라는 아주 짧은 안내가 있었고, 간략히 시간표에 대한 소개도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테마 주간 시작과 함께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간표에 있는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테마 주간 시간표는 크게 오전에는 어셈블리와 함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매일 하는 청소 시간이 오전 일정이었다. 오후에는 여러 가지 수업들 제목이 있고 원하는 시간을 선택해서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안전지대와 공황지대, 그리고 확장지대    

▲  안전지대를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 ⓒ 양석원

 

'안전지대(Comfort zone)' 테마 주간을 시작하는 첫 번째 시간에는 안전지대의 의미와 테마 주간을 마련하게 된 배경에 관해서 설명을 들었다. 


"이번 주 우리가 집중하게 될 내용인 안전지대는 사람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는 심리적인 상태이며 환경 등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람이 익숙하고 편안한 상황에 머무르게 되는 영역을 설명해요. 안전지대에 머무는 사람은 위험을 회피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일상적인 일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어서 안전지대에 오래 머무르면 정체되고 둔화할 수 있습니다." 


설명이 계속됐다.


"안전지대에서 조금 많이 벗어나면 '공황지대(Panic  Zone)'가 보이네요. 그야말로 불안하고, 두렵고 여러 가지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안전지대와 공포지대가 있습니다."


"안전지대와 공포 지대 사이에 파란색 영역이 보이나요? 안전지대를 넘어서 우리가 집중할 영역인 '확장지대(Stretch zone)'입니다. 내 안전지대와 공황지대를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안전지대와 공황지대 사이의 영역을 넓히는 노력도 필요해요. 지금까지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도전 하고 탐험하는 것입니다. 확장지대를 통해서 새롭게 경험하는 것들이 늘어난다면, 기존에 안전지대도 넓어지고, 공항지대도 줄어드는 셈이죠. 그래서 학습지대라고도 할 수 있어요. 새롭게 알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다른 경험을 하는 것처럼요."


"여러분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기존의 시간표와는 다르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준비했어요. 평소에는 하지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을 경험해 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전지대를 확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경험해 보도록 합시다."


선생님들이 준비한 모든 수업에 다 참여할 순 없었지만, 아웃도어 수업을 평소에 운영하는 선생님은 학교에서 제일 높은 굴뚝에 안전장치를 설치한 다음 굴뚝을 오르는 시간을 마련했고, 다른 프로그램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로프를 매달아서 이쪽 나무에서 저쪽 나무까지 로프에 의지해서 이동하는 시간도 진행했다.


그 프로그램들을 선택한 친구들은 평소에 아웃도어 액티비를 좋아하지도 않고, 무서워 보였는데 자신 있게 안전지대를 벗어나 보겠다는 생각으로 도전해 봤다고 했다. 가끔 숲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프로그램이 잘 진행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게 해 주었다.              

▲  일본 사회의 어두우면 수업 장면 ⓒ 양석원


일본어와 일본문화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Japan)이라는 수업을 열어서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인, 한국인, 덴마크, 중국인 이렇게 다양한 그룹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서로 조사를 해보고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과로사와 역사 교과서 문제, 남녀평등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 교과서 부분은 궁금한 것들이 있어서 이번만큼은 일본 친구들이 안전지대를 벗어나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랐지만, 아니었다. 조금은 소극적인 태도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언젠가 마음을 열어 놓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랐다.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의 경우 글을 작성해 보는 시간도 있었다. 수업의 시작은 야외에서 시작을 했는데, 숲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해서 자유롭게 작성을 해 보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글쓰기를 싫어했던 친구들이 이번 만큼은 한 번 시도해 보겠다며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  학교 주변의 각 포인트를 알려주는 지도 ⓒ 양석원


인상적이었던 시간은 모든 학생들을 밖으로 불러서 평소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와 짝을 맺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줄 때 였다. 학교 주변에 다양한 장소가 표시된 지도를 나눠주고 그 장소까지 함께 다녀오는것이다. 지도에 뒷면에는 서로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이 담겨있었다. 약간의 눈치 게임처럼 서로 대화가 부족했던 짝을 찾느라 어색하고 어수선한 시간이 흐른 후, 각자의 장소로 향했다. 가고 싶은 포인트를 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이런 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지에 있는 질문을 하나씩 골라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질문은 덴마크어로 적혀있어서 덴마크 친구의 도움을 받았는데 스무개가 넘는 질문을 다 듣고 고르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삶의 도전에 대한 회복력을 어떻게 만드나요?', '다른 사람에게 거절을 하고 한계를 지을 수 있나요?'


일상에서 나누기는 조금 무게감이 있는 주제였지만 숲 속을 거닐면서 서로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던 기회가 인상깊었다. 대화의 끝에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 사이를 서로의 삶에 대해서 응원하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테마 주간이 마무리 되는 주말에 사우나 이벤트가 있었다. 사우나 이벤트는 테마 주간 특별 프로그램은 아니고 사우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친구가 가끔 진행하곤 했다. 오늘은 특별히 아웃도어 선생님이 사우나 프로그램을 주관하기로 했다.  


사우나실로 들어가기 전에 샤워를 하는 동안 선생님은 테마 주간에 대해서 어땠는지 물어왔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테마 주간에 대한 경험을 물어봤을 때 친구들이 해 준 이야기를 공유했다.  


"친구들은 새로운 영역을 경험했을 때의 즐거움,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 했을 때의 긴장감과 같은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신감도 얻은 것 같고요."  


아웃도어 선생님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이 학생들에게 어색하고, 흥미를 못 느낄 수 시간도 있겠지만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안전지대를 넓혀 나가는것 이라며 테마 주간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샤워를 마치고 사우나 실로 향하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준비한 이벤트가 있다고 했다. 습식 사우나를 할 때 맥주를 사용해 본 경험을 다른 사우나 팀에게 들었는데, 테마 주간에 마지막인 만큼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아로마 대신에 맥주를 사용해서 우리의 사우나 안전지대를 벗어나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달구어진 돌 위에 물과 섞은 아로마를 부어서 사우나 안에 향이 가득하도록 하는데, 오늘은 선생님의 도전으로 맥주를 조금 섞은 물이 대신했다. 금새 사우나 안에 효모 특유의 향이 가득했는데 사우나 안에 모두에게 공황지대 근처에 까지 가 닿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독특한 향을 경험했다. 안전지대를 확장하기 위한 선생님의 과감한 시도는 단 한 번으로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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