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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pr 18. 2022

아들 잘 봐~ 엄빠도 축구한다!

내 인생 첫 공식 축구경기

<2022 ****배 엄빠컵 단두대 매치>


어쩌다 엄마, 어쩌다 축구 인생에서 어쩌다 대회 경기까지 하게 되었다.


1시간 축구 수업 중 마지막 20여 분 동안의 우리끼리 하하호호 연습경기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겨우 2달 된 축구 찐.초보에게 찐.경기요? 초 저학년 아들 축구 시합할 때도 정작 뛰는 선수보다 경기장 밖에서 더 떨고 있는 초보 엄만데, 지.. 직접 겨.. 경기를 뛰라고요?!


비록 축구 학원 내 부모님들만 참석하는 친목도모성 대회지만 부담이 적지 않다. '연습하다가 누구 하나 크게 다쳐봐야 대회가 무마되려나'하는 얄팍한 생각까지 했다. 심지어는 경기하는 꿈까지 꾼다(물론 꿈에서는 내가 아주 멋진 골을 넣는다! ㅎㅎㅎ). 마치 수능 시험이라도 앞둔 것 같은 부담감, 너무 오랜만이고 너무 낯설다. 이 머시라고...


학원에서 마주칠 때마다 대회 어떡하냐며 벌벌 떨고 있는 우리에게 감독님은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뛰시면 된다'라고 한다. 가벼운 마음을 가지기엔 상대편 어머님들이 너무나 적극적으로 훈련하시고, 가볍게 뛰기엔 너무 이름부터 단. 두. 대. 매치니까요...(엉엉)


암튼 여차 저차 하여 축구 클럽 유소년 대표팀의 부모님, 엄빠 축구 대회가 열렸다.

대회 출전 경력? 없음. 대회 준비 기간? 2주. 대회 준비 훈련? 1회. 그 1회의 연습 경기에서 어머니 한 분의 발가락 골절 부상 및 다수 분의 근육통 부상이 온 건 비밀.


맙소사.






1. 너도 몸싸움 적극적으로 해야지! 몸싸움에서 지지마, 넘어지지 마!


열심히 뛰어! 다음으로 아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축구 시합에서 몸싸움이 어느 정도 필요한 걸 안 뒤로는 상대가 밀어도 넘어지지 않고 같이 버텨야 한다고 다그쳤다. 픽픽 쓰러지고 울먹거리는 아들에게 왜 자꾸 넘어지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랬던 내가...


넘어집니다. 축구장 잔디 위를 나뒹굽니다. 그냥 꺅꺅거리고 웃으면서 대충 시간만 때우고 싶은데 너무 진심으로 몰아붙이는 상대편 어머님이 무섭습니다. 툭툭 부딪히고 밀리고 잡히는데 어디 항의할 데도 없고 너무 억울합니다. 왜 반칙을 불어주지 않는 건지 감독님이 원망스럽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왜 그토록 언성을 높이고 항의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네, 오버 중입니다.


하지만 반전으로 집에 돌아와 찍어둔 영상을 보니 반칙은커녕 서로 부딪혔다는 느낌이 1도 없다? 당시 내 체감상 달리기 속도는 시속 30킬로, 몸싸움의 강도는 마치 17대 1 패싸움이었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보는 영상 속 경기는 너무나 평화로운 것. 하하하하하하.


농담 반 진담 반 첫 경기를 뛰고 나니 '쒸익쒸익, 나도 몸싸움에서 밀어붙일 거야!!!'라는 생각보다 '나만 부딪혔다' 혹은 '나만 피해자다'라는 나약한 생각을 버리고 몸싸움에서도 지지 않는 멘탈과 체력을 갖춰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이 정도는 괜찮아. 체력을 더 길러보자!



2. 제발 몰려다니지 마!


아이들의 경기를 쫓아다니며 알게 된 초보 중의 초보들이 하는 축구의 공통점. 공만 보고 쫓아다님. 우르르 몰려다님. 아이들이 몰려있는 곳엔? 공이 있다. 제발 몰려다니지 좀 마!!!


경기장 밖에서 그~렇게 소리쳤던 엄마들이...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공을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네에... 멀리 떨어져 패스하는 연습은 괜히 했나 싶을 정도로 공 하나에 달라붙은 인원 최소 3명. 저기요... 우리 지금 5대 5 경기입니다만? 그렇게 우리의 공은 이 발에 채이고 저 발에 채여 엉뚱한 곳으로 표류하거나 공중에서 날아다니기만 하네요. 그래도 2달이나 지났는데, 축구 수업 중에 배운 기본기는 도대체 언제 써먹나요. 공이 눈앞에 오면 달려드는 발들 사이로 일단 콕콕 찍어 쳐내기 바쁜데. 하하하하하하.


경기 전 주말에 남편이랑 나름 드리블 연습도 해보고 수비수를 등지고 섰다가 드래그 백으로 달리기(?) 뭐 그런 기술도 연습해봤으나 경기 중 써먹은 횟수 0회 기록. 후하, 연습과 실전은 다르네. 너무 달라.



3. 드리블! 돌파! 접고! 마무리이이이이~~~


아이 축구 경기 때마다 우렁차게 들리는 감독 목소리. 드리블! 툭! 돌파! 접고! 패스! 바짝! 압박! 마무리! 슛!!! 등등. 웬만하면 경기 때 부모들은 소리 응원을 삼가는 게 좋다고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게 내 새끼 응원이려니. 감독 목소리에 지지 않고 소리 지른다. **야, 가! 슛! 때려!!!!


아들 잘 봐? 공이 우리 아들 발 근처에만 와도 드리블! 슛! 외치던 엄빠가 직접 보여줄게?


아... 소리치지 마세요... 응원하지 마요... 하등 쓸모없는 아우성일 뿐이니. 드리블? 안돼요. 돌파? 꿈이에요. 접고? 접긴 뭘 접어요, 종이 접기나 할게요. 마무리 슛? 미안해요, 헛발 찼어요. 어쩔 땐 응원하는 소리가 더 부담입디다. 기대에 못 미치는 포포몬쓰(?)가 나왔을 때 '하아~~'하는 한숨소리는 왜 더 크게 들리나요. 내가 그렇게 부족했나요.


경기를 준비하면서부터 경기가 진행되고 끝날 때까지, 그동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 남았다. 그까짓 공 하나 쫓아다니며 굴리고 차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거냐 생각했던 나. 몸소 체험해 보니 어렵다. 돈을 주고 배워도 쉽지가 않다. 여태 '왜 축구는 새벽에 해요?' 상태였으면서 우리 아들 선수에게 다그치기만 했단 말인가. 이제 아니까 안 할(려고 노력해볼)게. 엄마가 미안해.






내 인생 첫 번째 공식 축구경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글에선 엄살을 부렸지만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몰입해서 뛰었고, 오랜만에 목에서 피맛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정 말 정 말 재미있었다. 10분씩 4 쿼터 진행하는 동안 2골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도 기록했고,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열정적인 환호소리에 뿌듯해했다. 그때의 골 맛이란!


남은 건 오른쪽 허벅지 근육 통증과 사지에 피어있는 멍 꽃. 참 열심히도 뛰었다. 다들 못 한다고 미루면서도 휘슬이 울리고 나면 일단은 다 잊고 뛰었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경기 후의 치맥이 더 좋았고, 숙취의 여운이 더 오래간 건 비밀이지만.


아, 근데 잠시만요.

대회를 또 여신다고요, 대표님? 그럼 저 오늘부터 매일 밤 부담감에 뒤척이다 골 넣는 꿈 꾸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요... 이 설레는 것 같으면서도 부담되고, 부담되는 것 같으면서도 기다려지는 알 수 없는 감정, 너무 싫다.




#애들아빠도경기첫골및현란한드리블과기술을선보이고훌륭하게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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