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그래, 이제 너도 영상 보렴
지금까지 잘 버텼다.
아이에게 영상 노출하는 것, 모두가 알듯이 최대한 적게, 그리고 최대한 늦는 게 좋기에 나도 최대한 흥이에게 영상노출을 늦게 하려고 버텨왔다.
아이 돌 즈음에는 티비를 없앴다. 티비 리모컨 켜는 법을 터득해 버렸기 때문이다. 아이가 간간이 전자기기를 보게 될 때는 어른들이 핸드폰을 볼 때 옆에서 보게 될 때였고 그 마저도 최소화 하려고 노력했다.
두 돌 전 후로 본인 사진이나 영상은 차로 오래 이동하거나 할 때 타이머를 맞춰놓고 보여주기 시작했다. 유튜브나 다른 만화영화도 못 본 덕분에 뽀로로도 몰랐던 우리 흥이.
남편이 취미로 클라이밍을 해서 몇 번 따라갔는데, 자기가 클라이밍을 하는 사진, 영상, 아빠가 클라이밍 하는 영상으로 점점 발전하더니,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 영상을 보는 것으로 점차 발전해 갔다. 클라이밍 영상 본다고 떼쓰고 울고불고하는 일도 생기고, 하루에 한 번, 타이머를 3분, 5분 정도로 맞춰놓고 보는 것으로 규칙까지 정했다. 그래도 나름 아직 유튜브나 만화영화는 안 보여준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는 본 적도 없는 아기상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뽀로로 캐릭터 이름도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어린이집에서 영상에 노출이 되는구나,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둘째가 태어난 게 첫째 27개월이었다.
원래 한자리에 앉아서 밥을 잘 먹지는 않았던 첫째였는데 내가 혼자 둘째를 케어하면서 첫째의 밥까지 잘 먹이는 게 너무 힘들었다. 밥을 제대로 안 먹으니 자다가 배고프다고 깨서 나도 너무 피곤했다. 몸무게가 안늘고 점점 말라가는 모습에 속상하고 성장이 더뎌지니 또 속상하고...
흥이가 30개월이 되었던 어느 날 남편이 영상을 보여줘서라도 밥을 먹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너무 못마땅했는데, 현실을 받아들이고 영어로 된 영상을 골라 노출을 시작했다. 30분 정도로 타이머를 맞춰놓고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이게 되었다.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먹다가도 혼이 나가버려서 입에 떠 넣어주면 뭘 먹는지도 모르게 밥을 먹게 되었다. 밥을 먹이는 게 우선순위이니... 그래... 이렇게라도 먹으렴.
하루이틀 지나니 유튜브는 본인이 이것저것 눌러서 다른 것으로 넘어가고, 어린이 채널이어도 계속 보고 있으니 옆에서 보고 있는 나도 빠른 화면전환에 눈이 아팠다. 그래서 Youtube Kids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어서 영어로 된 영상을 내가 선택적으로 골라놓고 밥 먹을 때 보게 했다.
이렇게 해피엔딩이면 좋으련만....
어린이집 친구들 사이에서 '미니특공대'가 유행을 하면서, 미니특공대~ 미니특공대~하며 매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미니특공대 노래 들었다고 노래 틀어달라고 하고, 미니특공대 보고 싶다고 하고.. 찾아보니 EBS에서 만들긴 했지만 7세 이상 관람 가고 악당과 미니특공대가 서로 공격하고 폭발하고 등등의 장면들이 나오는 게 아닌가. 넷플렉스에서 그나마 영어판이 있어서 영어판 미니특공대를 보여주었다. 악당이 등장하는 장면은 무서워해서 빨리 감기를 하기도 하고, 엄마손을 잡고 보기도 했다. 자기가 형아라서 이제 혼자 밥 먹는다고 하면서도 영상을 보다 보면 밥을 먹는 것을 잊는 게 부지기수여서 입에 밥을 떠 넣어 주면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밥을 하도 안 먹으니, 이렇게라도 밥을 먹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약 두세 달이 지난 지금, 이제는 영어판도 안 먹힌다. 한글판으로 된 미니특공대를 몇 번 보더니, 이제 영어로 된 것은 안 보겠다고 하고, 특정 에피소드만 틀어달라고 고집한다.
영상이라는 것이 한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컨트롤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요즘 우리 흥이는 나무, 버섯, 열매에 관심이 많은데, 영어로 된 나무 키우는 콘텐츠는 큰 관심이 없더니, 한글로 된 콘텐츠는 열심히 본다. 그래도 폭력적인 내용이 아니고 교육적인 내용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