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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헤라디야 Oct 22. 2023

어설퍼도 계속 낙서합니다

선 하나 긋고, 지우고, 또 긋고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꼬꼬마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특별히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거의 하루에 하나 꼴로 끄적끄적 낙서에 가까운 작은 그림을 그리게 됐다. 약 2달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처음에는 아이폰 메모장에서 고양이 얼굴을 끄적대다가 아이패드 사용자들이 즐겨 쓰는 그림 어플인 '프로크리에이트'의 축소 버전 격인 '프로크리에이트 포켓'을 아이폰에 깔아서 손가락으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프로크리에이트 포켓으로 그린 첫 그림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싱크로율이 0%에 수렴하는 고양이 3번이의 초상화였다. 그런데 자애로운 친구들은 이 허접한 그림에 너그럽게도 '좋아요'를 눌러 주는 것이 아닌가.


손가락이 아닌 발가락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우리 고양이 3번이의 초상화


그때부터 하루나 이틀에 하나씩-낙서에 가까운-작은 그림을 끄적여서 SNS에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언어로 소통할 에너지가 없을 때도 어설픈 그림을 그려서 올리고 나면 왠지 그날은 주변 세상과 교류를 주고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여름 중반부터 조금은 나아진 듯하던 무기력증이 조금씩 다시 고개를 쳐들었고, SNS에 '요즈음 다시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라고 고백할 에너지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낙서를 끄적댈 때는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었다.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뭔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덕분에 저녁 즈음에 간단한 그림을 올리고 아침에 친구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니, 굳이 '좋아요'나 댓글이 없어도 괜찮았다. 작은 낙서라도 하나 올린 날은 하루를 비생산적으로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림 그리는 습관이 붙은 것은 오랜 휴식기를 보낸 후 최근 들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한 친구 때문이었다. 열심히 미술을 전공하던 친구는 심한 번아웃을 경험했고, 그림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가 최근 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 매력에 다시 한번 푹 빠져 버렸다. 오랫동안 그림과 작별했던 친구가 그려낸 이미지들은 하나같이 따스했고 깊은 정감이 묻어났다. 나는 때마침 다가오던 친구의 생일 선물로 수채화 세트를 놓고 고민하다가 친구에게 집에 화실을 만들 거냐고 물었다. 그런데 친구는 아이패드 그림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실물 화구를 잡을 생각이 안 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음, 그 정도란 말이지?' 나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리고 무심코 시작한 폰 낙서질은 습관으로 굳어졌다.


식빵에 구멍을 뚫어 고양이 얼굴에 끼우는 게 유행이라는 말을 듣고 재미삼아 그려 보았다.


그림에 서툰 사람답지 않게 나는-이론 쪽을 전공했지만-미대 출신이고 한때 미술 유학을 고민했으며 외국 대학교 미술 전공에 합격했지만 유학 계획을 취소한 적이 있다. 대학 입시를 치를 때는 1-2주 동안 벼락치기 석고 조각상 소묘를 배웠고, 이론 전공이라서 실기 비중이 3-5%로 몹시 낮은 덕분에 합격했다. 나는 소묘를 익히면서 실기 시험 대상인 줄리앙 조각상이 그렇게 보기 싫고 야비하게 생겼다고 생각했고 그릴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른 애들은 잘생겼다고 열심히 그리는데 너만 그러면 어쩌니?" 하고 답답해하던 데생 선생님은 결국 날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그래, 네가 보는 줄리앙의 야비함을 표현해 보렴!"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전 아직도 줄리앙이 못되게 생겼다고 생각해요.)




'해외 미대에 합격할 정도면 그림이 서툰 건 아니잖아?' 정말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나를 '그림에 서툰 사람'으로 만드는 요소는 여러 가지이다. 일단 본 대로 그리는 걸 정말 너무너무 못한다. 남들보다 다섯 배로 선을 지우고 그려야 겨우 그리는 대상과 비스무리하게 선이 나온다. 거기다가 그림 하나를 구성하는 선의 개수를 곱해 보면 답이 나온다. 그쯤 되면 종이는 울 대로 울어서 연필선도 잘 먹지 않게 된다. 나는 본의 아니게 종이 학대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또한 나는 손이 매우 느리다. 남들이 슥슥 물체의 윤곽선을 스케치할 때 나는 선 하나를 어설프게 그린 후 지우고 있기 일쑤였다. SNS의 한 친구는 유화를 즐겨 그리는 화가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작품의 진행 상태를 찍어서 올리고는 한다. '직장도 따로 있으면서 저게 어떻게 가능해?!' 싶을 정도로 그 과정이 빠르고 열정적이다. 아마 그 친구도 부단히 연습한 끝에 그렇게 됐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빠른 손'과 '느린 손'을 타고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비가 영원하진 않을 거야. 약속해!"


거기다가 덤으로 내 인내심은 무척 빈약하다. 인내심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방금 말한 조건 1+2를 극복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의 반열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건 남들 얘기다. 단순히 물체와 닮은 그림을 얻기 위해 선 하나를 열 번씩 긋고 지으고 하는 과정을 나는 견디지 못했다. 예전부터 그림보다 음악보다 끌렸던 데는 그런 이유도 있던 것 같다. 음악에서는 음 몇 개를 부르거나 연주하면 즉시 멜로디가 된다. 내 목소리나 악기 연주가 허접하더라도 상관없다. 일단 결과가 금방 귀에 들리기 때문이다. 그걸 듣고 조금씩 뭔가를 고치고 조정하다 보면 아마도 노래나 연주의 수준은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일단 내가 뭔가를 하고 그 결과가 즉시 인식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시각적인 비전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선 하나를 그으면서 이미 그림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잘 그어진 선 한두 개에서 이미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낙서를 한다. 가볍게 뭔가를 끄적인 후에 대충 색칠을 하고 텍스트 넣기로 작은 멘트를 곁들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백을 그대로 남겨두기가 뭐해서 글자를 넣는 것이다. 썰렁해 보이던 빈 공간에 짧은 문구가 들어가면 왠지 있어 보인다. 그게 아무리 감성팔이 문구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작은 술수이자 즐거움이다.


낮잠 자는 고양이는 푹신한 꽃밭에서 잠든 자신을 꿈꾼다.


만약 폰으로 단 한 번도 낙서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심심하고 시간이 여유로울 때 한 번쯤은 시도해 보라고 하고 싶다. 글을 쓸 때와는 다른 부담 없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꼭 잘 그리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것보다 내 주제에 남에게 잘 그리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ㅠㅠ;;;) 선을 긋고 끄적이고 그리면서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다. 만약 결과물이 마음에 든다면 개인 SNS에 올려 봐도 되고, 그냥 혼자서만 즐겁게 바라봐도 괜찮다. 고양이든, 강아지든, 태양이든, 달이든, 나무이든, 꽃이든, 바다이든, 산이든. 그 무엇이든 괜찮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오롯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잠시 내 안의 장난꾸러기가 마구 뛰어놀게 해 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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