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즈 인벤토리] 라디오심시티11회 - 어제, 오늘 그리고 내 '일'1부
‘심즈 인벤토리’는 도시 디자인 팟캐스트 ‘라디오심시티(Radio S.I.M. City)’의 ‘심즈토크’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번에는 심딴지가 생각하는 라디오 심시티의 ‘일’에 대한 고민이 무엇인지 『라디오심시티 11회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부』에서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심딴지의 ‘일과 삶의 균형이 잡힌 내일을 위하여’를 소개합니다.
나는 늘 일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원하는 내 ‘일, 그리고 ‘내일’의 모습.
계약직이라는 형태로 노동을 하는 나에게 연말은 그리 달갑지 않다. 주중엔 직장에서 동료들과, 주말엔 친구들과 일에 대해 고민한다.
내가 늘 일에 대해 고민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미없어서라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의 내일을 만들고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렇게 살아서는 내 부모세대처럼 ‘내 집을 마련’한다거나 ‘내 가정을 꾸리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이 앞서서 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형태인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날이 갈수록 확신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확신이 점점 더 커지면, '나는 한국인이지만 국가의 보호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난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리곤 이내 그것이 현실이 될 것 같아 어떤 일을 해야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나아질까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 ‘내일’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서 몇 년 일을 하다가 마음이 맞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집에서 가사 일을 도맡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그것이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에게 겨우 할당되는 임무 같은 것이고 그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이 가부장제를 더욱더 공고히 하도록 힘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으며, 그 역할 또한 남성중심 가부장제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십 대 초반에 막연하게 그렸던 나의 ‘내일’은 삼십대 초반인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현재 계약직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의 결혼이나 동거 등은 꿈꿀 수 없을 만큼 나 스스로를 겨우 돌보는 데도 빠듯한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내 ‘일’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덩달아 진화해야하며, 열심히 노력을 해야 그나마 현재의 상황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장기적인 목표는 세우지 못 했다. 아니, 세우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1년 단위의 적금을 들었다. 버는 돈은 많지 않아도 조금씩이라도 아끼면 1년 뒤에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라도 느껴보자는 심산이었다. 10년이나 20년 후의 노후를 대비하라는 보험 안내 전화에는 보험의 혜택보다도 내가 매달 그 보험료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내년이 어떻게 될지 몰라 바쁘다고 둘러댔다. 결국 나에게는 당장 내년엔 뭘 할지, 다음 달엔 뭘 할지 고민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말이 온 것이다.
어느 세월에 나는 ‘내일’을 생각할 수 있을까.
‘내일’을 위해 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내 ‘일’이 ‘내일’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을 순 없는 것일까.
내 ‘일’ 그리고 내 ‘삶’의 균형. 나도 내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얼마 전 우연히 고등학생 때 보았던 미국 드라마 ‘길모어걸스’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학생 때만 해도 딸에게 ‘친구’같은 엄마인 주인공이 나의 엄마이길 바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딸에게 ‘친구’같은 엄마가 되기를 스스로 다짐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보게 되었던 그 드라마에서 나는 주인공을 통해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한부모가정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웃끼리 서로를 너무도 잘 아는 시골마을에서 주인공은 고등학생 때 아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계속 그 마을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뿐인 딸을 키운다.
한부모가정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삶이 참 유쾌하고 행복해보였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은 않다. 주인공은 자신의 일과 개인적인 삶 그리고 육아의 부분까지 여러 방면으로 좌충우돌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주인공의 하루하루는 일과 가정의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내가 한부모가정의 가장으로서 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면, 나의 일과 삶은 어떠했을까.
현재 한국의 복지제도에서 한부모가정 지원에 대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 공식 사이트에 명시된 한부모가정 지원금은 아이가 만 13세가 미만일 경우엔, 월 12만원이다. 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연 5만 원 정도의 지원금을 추가로 받는다. 생활보조금은 한부모가족 복지시설에 입소하였을 때 월 5만 원 정도 더 지급될 수 있다. 생활보조금의 경우는 다른 복지 혜택을 받고 있으면 제외된다.
다시 말해, 내가 경험했던 개인 사정이야 어찌하든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혼자 키우고자 한다면, 월 12만원에서 17만 원 정도 지원을 받는 것이다. 아이가 기저귀를 뗄 때까지 평균적으로 한 해 100만 원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국가에서 아이의 기저귀 값만 지원받는 셈이다. 당연히 아이를 키울 때 소요되는 여타 다른 아기용품들 및 생활비 등은 모두 나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을 통한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할 때, 아이를 시설에 맡겨야 한다면 추가 비용이 계산되어야 한다.
한부모가정의 삶을 잠깐 상상으로 해 보았을 뿐임에도 한 순간에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런 마음의 부담감과 힘든 생활고는 한부모와 아이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부모가 육아비용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한다고 했을 때, 아이의 삶이 행복하게 지켜질 수 있을까. 최근 한 조사에서 실제 한부모 정신건강이 위험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우울증 등 자살 충동 위험도가 배우자가 있는 경우에 비교해 2.5배가 높다고 한다. 해당 조사의 연구팀은 심각한 정신건강 위험 수준의 원인으로 좋지 않은 사회·경제적 상태를 지목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비단 한부모의 정신건강을 높이기 위한 정책 방안의 필요뿐만 아니라 한부모가정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 방안의 필요를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내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홀로 아이를 키워도 아이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내일이 오게 될까?
나의 삶이 어떠하더라도.
나는 내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안전과 건강에는 내 일과 삶의 균형이 포함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한부모가정’과 관련된 지원제도만 살펴봐도 한부모가정이 다른 결혼커플과 동등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모순적이게도 ‘한부모가정’에 대한 지원은 여타 결혼커플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따라서 절차상의 복잡함이나 장애물 때문에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한국에서의 ‘한부모가정’의 양육지원금은 ‘입양가정’이 받는 양육지원금보다도 적다. 내 아이를 내가 키우는 일이 남에게 아이를 입양시키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를 키울 때 어려운 경제적 환경보다 더 큰 문제는 ‘한부모가정’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가정이 꽤 많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한부모가정’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이혼율이 40%정도에 이를 뿐만 아니라 1인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다시 말해, 어떤 가정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논할 수 없다는 시대이기도 한 것이다. ‘한부모가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이루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고 각 형태에 따른 지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지금 한국사회가 인정하는 결혼제도의 특징 즉, 두 ‘이성’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외에 다른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프랑스의 PACS(pacte civil de solidarite)라는 ‘시민연대협약’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팍스는 성별에 상관없이 동반자의 파트너쉽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동거계약제도이다. 팍스가 보장하는 사회경제적 권리와 의무의 내용은 결혼커플과 유사한 수준이다. 최근 한국에도 PACS(이하 팍스) 제도에 대한 논의가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저조한 출산율을 극복시킬 수 있는 해결책 정도로 여겨진다. 실제 프랑스는 팍스제도 도입 이후 합계출산율이 상승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팍스와 같이 ‘한부모가정’대신 결혼커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으로 ‘한부모가정’ 지원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팍스 제도가 탄생한 배경에는 혼외 출생 아동에 대한 사회적 양육 책임이 중심에 있다. 이러한 지점은 프랑스의 한부모가정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한부모가정 자녀에게 기본가족 급여보다 더 많은 급여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한부모가정의 최소 소득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당장에 먹고 살아야 할 걱정 때문에 육아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육아를 위해 내 일, 내 삶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프랑스는 아래에서부터 표출된 사회적 욕구에 국가가 적절히 대응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동등하게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팍스를 도입했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인정하고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 팍스와 같은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팍스와 같은 제도로 다양한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보장해준다면, 나처럼 일과 삶의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작은육아]한해 100만원…허리휘는 기저귀값”, 2017.05.24., 이데일리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31&newsid=01177526615932200&DCD=A00703&OutLnkChk=Y
“한부모 정신건강 '빨간 불'…"자살충동 위험도 2.5배 높아"”, 2017.08.29.,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28/0200000000AKR20170828154800017.HTML?input=1195m
“[달콤쌉싸름한 동거 ②]출산, 동거커플의 최대 고민”, 2017.02.09., 헤럴드경제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209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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