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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Aug 27. 2024

안되나요?

-40대는...


일과 육아에 얽매여있지 않은 40대 여성은 무엇보다 자기관리에 힘써야 한다.

잉여시간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면밀한 자각의 순간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등원 준비로 눈곱 뗄 겨를도 없는 엄마가 아닌 나는 긴 아침 느긋하게 거울을 바라보며 양치를 하다가 결코 생길 것 같지 않던 이마와 눈가의 주름들을 세세히 관찰하게 된다.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혹은 알람이 울리기 대략 5분 전에 잠이 깨 벌떡 일어나던 직장 생활을 떠나보내니 아침마다 코어가 힘을 잃어가는 느낌이라 최대한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엉거주춤 조심스레 일어난다. 단지 일어나는 것 뿐인데 관절과 연골, 근육의 무리를 느낀다. 


사채이자처럼 부당하게 불어 가는 무기력과 순식간에 비어버리는 소시민의 월급통장처럼 쇠해가는 기력.

아직 젊다고 생각하던 30대와 달리 40대가 되면 나의 정체성을 어디에 규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스스로는 그저 어제와 같은 나일뿐인데 세상은 나더러 이젠 젊잖아지라고 암묵적으로 압박해온다.

여전히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싶은데 나이에 걸맞은 실크 블라우스를 입으라고 한다.




혼란. 딱히 좋아지지는 않는 단어이지만, 그것은 나의 삶을 표현하기에 꽤 괜찮은 단어이다. 

순응하기엔 너무 날 것인데 대항하기에도 조금 나약한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멀뚱거리며 살고 있다. 한마디로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열심히 공부해서 안정적으로 커리어를 쌓고 생애 주기에 따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뭐 이런 과업들을 잘 수행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꿈을 마음껏 펼치며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아온 것도 아니란 말이다. 그냥 이도 저도 아닌 채 어영부영 지내온 삶. 

그것이 가끔은 화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런 나에게 자괴감과 연민을 느끼곤 한다.

세상에 뛰어들어 세상과 싸우고 섞이고 화해하고 적응하며 존재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채 내 안에서 투쟁하며 지낸 시간들.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뭐 하며 사냐고 한다. 

조금 먼 사람들은 한량 같다고 팔자 좋다며 부러워한다. 세상 고민 없어 보인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것 같다. 참 편하게 산다...

더 가까운 사람들은 철 좀 들어라고 한다. 현명하지 못하게. 나잇값을 못하며. 그렇게 순진해서 어떻게 할래. 그렇게 유약해서 어떡하니... 

타인의 시선을 거울삼아 나를 바라보던 시간들은 내가 나를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 시간들이었다.


보통 혹은 평범이라 불리는 사회의 최빈값에 속해 있지 않았기에 나는 나.라는 주장을 어렴풋이 하고 싶었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멀뚱거리는 나였기에 그러지 못했다. 갈대처럼 흔들리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의 애정 어렸으나 오롯이 자기들 것이었던 훈계들. 

그러나 여전히 세뇌당하기엔 너무 날 것인 나의 자아. 결국 그렇게 해서 나는 멀뚱거리며 지내왔다.




뒤늦게 흑인 여성 래퍼들의 음악에 꽂혔다.


먼저 사이트에 접속해 보통은 top100 리스트를 빠르게 훑어 내려간다. 거의 이삼 초만에 느낌이 오는 노래들만이 살아남아 나에게 무한 반복당한다. 대게는 가요보다는 팝. 가끔은 재즈나 보사노바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샤넬을 모르고 샤넬 백을 고르듯, 보테가 베네타가 대세인 줄 모른 채 보테가 베네타를 고르듯. 누가 부르는 지도 모른 채 음악을 고른다. 무례하고 무식한 선곡 방식이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없는 나의 독특한 습관일 뿐이다.


도자 캣(Doja Cat) 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틱톡 짤들로 밈(Meme) 현상을 일으키며 유명해진 뮤지션이라고 하는데 나는 며칠 전에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금 열광 중이다. 나 모르게 남들은 다 즐기고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현재진행형. kiss me more로 시작해서 say so와 boss bitch로 거슬러 듣고 있는 중이다. 

영어를 못하기도 하거니와 노래를 들을 때 가사를 잘 듣지도 않는 내게 이 노래들은 그저 달달하고 신날 뿐이었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도자 캣을 듣다가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어쩌다 니키 미나즈와 카디 비까지 연결되며 내 입은 떡 벌어지고 말았다. 컬. 쳐. 쇼. 크. 

유교걸도 아니지만 한동안 문화충격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하지만 나는 유교걸이 아니기에 다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춤을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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