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전과 용기
글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살아온 시간이 있다. 가슴에 담고 눈에 담은 것들을 풀어낸다.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특유의 성격과 삶의 방식 그리고 가치관이 어쩔 수 없이 읽힌다. 나의 글 또한 피할 수 없이 누구에 의해 읽히고 탐색된다.
늦은 나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글로 남기고 싶어 모인 분들을 만났다.
글을 보며 살아온 인생을 읽는다. 그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롭고 즐겁다.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삶의 이야기는 진실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감동적이기도 하다. 인생의 시간으로 보면 살아온 시간보다 어쩜 살아갈 시간이 짧을 수 있는 나이임에도 그들은 열정을 담아 글로 풀어내고 있었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를 끝내고, 어릴 적 건강상태로 미뤄두어야만 했던 대학 공부를 시작하며 제2의 인생을 즐겁게 보내는 실버 여대생의 글. 101세 엄마를 모시고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일본 여행에서 사모곡 편지를 읽을 때 울어버릴 것만 같던 글. 어릴 적, 유치원 선생님에게 주기 위해 송편을 가지고 갔지만 결국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 담 넘어 버려야만 했던 송편 하나와 구정물인 줄 알고 버려버린 사골국 사건으로 함박웃음이 터져버린 이야기들. 고교 시절 책가방에 책 보다 사과를 더 많이 담아 온 과수원 친구의 이야기는 가방에 가득 담긴 빨간 사과를 상상하게 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글. 영화를 보면서 인생을 배우고 즐거움을 느낀다며 “인생은 짧기에 인생을 즐기자”라고 꾹꾹 눌러쓴 글은 보며, 누구나 다 아는 말일 수 있지만 살아왔던 시간이 길기에 결코 간단한 말이 아니라는 것.
눈물이 찔끔, 웃음이 활짝, 가슴이 쿵,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열정이 더 뜨겁게 움직이는 글을 읽으며 내 인생 노트에 무엇을 어떤 것을 꾹꾹 눌러 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혹여나 글을 문자 자체로 적고 있는 것을 아닐까. 문자로 전달하는 기호 밖에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누구는 그럴 것이다. 내 인생을 푼다면 책 몇 권 시리즈로 나올 것이라고. 하지만 책 몇 권 시리즈도 한 권의 책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 나이에 뭘 하겠어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전'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물론 조금의 제약은 있겠지만. "흐르는 시간 위에 꿈들이 떠 있다"는 글처럼 꿈꿔보고 움직여 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뜨거운 감자
- 이재숙(창작글 )
신작로에 키 큰 사람이 작은 강아지를 안고 바람에 움직인다. 어쩌다 거대한 개가 지나가면 흙먼지를 뒤집어쓴다. 한낮 옥수수수염이 중천에 떠오르면 키 큰 사람은 길게 하품한다.
칠팔월 뜨거운 감자는 흙에 젖은 껍질을 벗어버리고 냄비에 뛰어든다. 수영을 못해도 힘 빼고 뚜껑 보고 누워있으면 알맹이 가라앉지 않고 뜨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 위에 꿈들이 떠 있다. 어렸을 때 지나온 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