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이 나의 생활이 되었다.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나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쓴다. 글을 쓰면 쓸수록 거북목이 되어 간다. 똑바로 앉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새 목은 앞으로 가고 있다. 의식적으로 곧게 앉으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의자를 바꿔보면 괜찮아질까.
글 쓰는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말.
“글 써서, 시 써서 돈이 되니?”
“생계는 유지되니?”
좀 더 직접적으로 “밥벌이는 되니.”
누구는 정말 멋있다며 시인을 한껏 띄운다. 하지만 정작 속마음도 같은지 알 수 없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금은돌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녀와 함께 커피를 마실 때였다.
“ 가끔 친정어머니께서 전화 오면 꼭 한번 물어봐요. 글 써서 밥은 먹고 사냐고.”
중년의 나이임에도 수줍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꼭 어린아이처럼 해맑아 보였다. 대학과 대학원에 외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신이 좋아하는 글과 그림을 그렸던 그녀였다.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멋있게 살았던 그녀의 시를 읽다 보면 비정규직의 애환이 자주 거론된 것을 읽을 수 있다.
시 하나 갖고는 밥 먹고 살 수 없다. 그래서 누구를 가르치거나 다른 일을 겸하며 글을 쓴다. 어쩜 시 하나로는 안 되는, 그래서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글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그것이 직업이 되고 그 직업 안에 포함되는 하나의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시인은 과연 직업이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직업’이란 ‘생계를 위하여 지속적으로 종사하는 일’이라고 풀이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자기 개인 및 가족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유지시켜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그 생계유지가 된다면 직업이 되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직업이 될 수 없다(?). 후자라면 단지 정신적 육체적 노동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할까.
대략 10년 전 초중고 학교에서 진로교육 붐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지금은 진로와 관련하여 다양한 수업과 활동이 보편화되었다. 진로 활동 하나 중 직업군 카드를 활용해 직업을 알아보는 시간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 카드를 선별하여 그 카드에 질문하고 이런저런 진로에 관해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시인이란 카드가 나오면 시인은 언어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며, 시라는 장르의 역사에 대해, 유명한 시인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다 정작 학생과 관련하여 자신의 미래 직업에 대해 말하게 된다면 딱히 학생에게 “그래 시인은 훌륭한 직업이란다 멋진 꿈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말하기 힘들다. 글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는 한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꼭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더라도 부단한 창작의 시간을 거쳐가야만 하는 고독한 길이다. 창작이란 그건 것 같다. 아이들은 중학생이 되면 직업 선호도도 많이 달라진다. 부모의 입김과 일명 사회의 흐름을 파악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직업보다는 장래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또는 보통 유망한 직업을 선호한다.
서점에 가면 시집은 어느 한구석 좁은 공간에 꽂혀 있다.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본다. 도서관에 가면 시집이 이렇게 많은가 할 정도로 수많은 시집이 있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집은 자주 본 것처럼 손때가 묻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시집은 한 번도 빌러 간 적 없는 것처럼 깨끗하다. 다른 장르의 책 보다 더 깔끔하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거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거 쉽지 않다. 한 권의 시집을 낸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는 행위는 행복이다.
* 금은돌.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화가.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 『한 칸의 시선』, 『그는 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까』,유고집 『금은돌의 예술 산책』과 『그녀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