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조기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집안 사정으로 엄마는 집을 떠나 타지에서 장사를 하셨다. 그로 인해 작은 시골에서 풀과 돌이 친구가 되었고 자연을 벗 삼아 놀면서 지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도시로 올라왔다. 나를 맞이해 준 것은 언니들이었다. 낯설게 느껴졌던 얼굴들 그래서 아버지 다리 뒤로 숨었다.
엄마 곁으로 오기 전까지 난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고 배웠던 기억도 없다. 물 보듯 학교생활은 쉽지 않았다. 난 무지에 가까웠다. 하나하나 배워갔지만 머리가 좋지 않았다. 나머지 공부를 밥 먹듯이 했다. 인간이 발전하려면 호기심과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발견하는 기쁨이 곧 발전의 단계라 생각한다. 나에게 그 시기는 늦은 나이에 찾아왔다. 30대 중반에 되어서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에 반대가 있었다. 가정이 있었고 경제적 부담도 있었다. 하지만 움직였다. 나의 결정을 꺾을 수 없었다. 다시 공부하고 공부했다. 그로 인해 또 다른 모습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공부의 재미를 알고 좀 더 알아갔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괜찮은 나로 있을까? 지금의 나 나쁘지 않다. 괜찮다. 어쩜 지능보다 끈기가 부족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IQ 검사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해력이 부족했던 같다. 문해력의 부족은 바로 숫자로 계산되었다. IQ 88.
보통 사람의 지능 지수는 100으로 본다. 이 범위에서 상하로 나누어진다. 지능검사의 설명을 읽다 보면 좀 이상한 것이 있다. 90~109을 보통으로 분류하며 이 범위는 정상적으로 지적 발달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정상이란 단어가 왠지 비정상처럼 느껴진다. 왜 일까? 정상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 변동 없이 제대로 된 상태.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왠지 정상이란 소리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좋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능검사에는 창조성과 다양성은 고려되지 않고 오직 사고가 일정 방향으로 흐름을 갖는 논리의 일관성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또 시간적인 제약이 있어 빨리 문제를 처리하는 아동에게는 유리한 반면 신중하게 생각하는 타입의 아동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라고 말한다. 숫자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능을 떠나 EQ(감성지수)가 그 사람을 더 성장시키기도 한다.
여하튼 88이란 숫자가 주는 지능 상태는 보통에서 ‘하’이다. 지능발달이 다소 느린 편. 지금보다 나은 지적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로 인해 그때부터 88이란 숫자는 꼬리표처럼 찰싹 달라붙어 약간의 상처로 마음 한구석에 남게 되었다. 노력의 결과일까. 지금의 지능은 어릴 때보다 보통 이상으로 올라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아닌 어릴 적 IQ88을 생각한다. 평행이론에 의해 또 다른 시간대 또 다른 행성에 있는 나와 비슷한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