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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제생맥주 Dec 16. 2020

전 상인인데요?

강남 국기원 사거리의 외롭던 상인

당신이 변호사라고 가정해보자.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 중 어디를 선택하고 싶은가? 보통은 '법무법인'이 더 낫지 않아요? 라고 말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김앤장은 '법률사무소'다.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는 이런 변호사 동업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강남이나 종로의 비싼 임대료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변호사들은 (혹은 아주 드문 이유로 협업을 위해) 이해득실을 고려하여 위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시 하나의 건물을 빌려 그곳을 닭장처럼 구획을 나누고 가벽을 세운 후, 쥐죽은 듯이 방에 들어가서 서면을 쓴다. 


 하나의 홈페이지에 같은 사진관에서 찍은 변호사들의 자신감 넘치는 사진.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사건을 맡기면 우리 '모두'는 함께 당신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주지만, 실상 대부분의 사무실은 옆 방 변호사가 갑자기 쓰러져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정말 끈끈한 사무실도 있다.)


 나도 처음에는, 변호사라면 응당 큰 미팅룸에서 콧평수 크게 여유있는 미소를 날리며 승소의 기쁨에 하이파이브하는 것 아닌가 하며 활기차고 따뜻한 그림을 상상했었다. 


 내가 전에 어떤 법률사무소에 가입을 했을 때, 그 법률사무소는 이미 같은 기수, 같은 반의 사법연수원 사람들이 구성원이 되어 있었다. 강남 한 가운데 사무소를 낸 그들의 의기 투합이 부럽기도 했고, 사무실을 소개받는 자리에서 친근해 보이던 그들의 모습에 나도 우리 반 사람들과 함께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무소와 사람들의 좋은 첫인상에 선배들로부터 멀리서라도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주저없이 가입을 했다.  



국기원 사거리, 개업 후 얼마안 된 테헤란로의 풍경. 시원한 길처럼 모든게 잘 풀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 사무소는 강남 한복판의 그 유명한 국기원 사거리에 자리하고 있었고, 사방은 빽빽한 고층 건물로 가득했다. 


 삭막한 건물들 속에 있어서인지 첫인상과는 달리 우리 사무소 구성원도 서로 돕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구성원들 내부에 이미 1년 가까이 지속된 상당한 갈등 관계가 있다는 것은 사무소 가입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고, 나는 끼인 사람처럼 존재했다. 어색한 분위기에 사무실 운영 회의 때가 되면 구성원들이 내 뱉는 발언은 경직되어있었다. 법원보다 사무실이 더 딱딱했고, 소송 수행보다 사무실 내부에 적응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선배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경험담을 듣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밥은 95% 혼자 먹었다. 고시생 시절 혼자 먹는 것에 단련이 되어있어 신림동의 고시식당이 대한변호사협회 빌딩 지하로 변한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처음에 사무소 소개를 받을 때와는 매우 다른 분위기에 꽤나 당황했었다.



건너편 건물이 대한변호사협회 빌딩인데, 밥을 먹기 위해 건넜던 횡단보도. 5월 풍경이다.



 이런 외로운 분위기에 스스로를 돌보고 위로할 틈은 많진 않았다. 매달 나가는 임대료와 직원 월급이 버거워 숨 쉴틈 없이 일하고 영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법에 기반한 칼 같은 논리를 참 좋아하고 그래서 나는 법조인이 일하는 방식이 좋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수임, 즉, 마케팅을 해야 했다.


 지금은 물론 기존 고객들이 다른 고객을 소개하여 수임이 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개업 초반 3년은 신규 고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마케팅 책과 법률서적을 1:1 비율로 구매해서 공부를 했다.


 변호사가 무슨 마케팅이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업자등록증 업종란에 변호사업은 엄연히 '서비스'로 명명되어있다. 과거에는 변호사 수도 많지 않았고, 다소 고압적인 태도로 군림해도 수임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과거보다 질 좋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변호사가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내 서비스를 소개하기 위해서 마케팅은 반드시 필요했다. 경영학과 나와서 그래도 마케팅 좀 알지 않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만, 구닥다리 기술인 SWOT, STP전략 이런 것 외에는 기억나는 마케팅 기술은 없었다.


당시 구매했던 책 중에 하나




 내가 이렇게 마케팅과 법률을 접목시킨 다소 정신없는 삶을 살아갈 무렵, 법률사무소 구성원 중 한 명은 나의 적극적인 '마케팅'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내가 글을 올리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의 내용에 대해 지적을 했고, 법률사무소 로고의 남색 RGB 값이 약간 다른 것 같다고 변경을 요구했다. 그냥 짙은 남색이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 사람은 RGB 값을 통일시키고 싶어 했다.


 다른 것보다 유일한 내 영업 수단인 블로그를 누군가로부터 감시를 받고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원치 않는 누군가의 관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진다. 


 그 구성원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다양한 제약이 들어오자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고, 결국 퍽퍽한 닭가슴살 같은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임대료를 내는 같은 구성원이었기 때문에 평등했고, 굳이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사람이 내 방에 불쑥 들어왔다. 자신의 이런저런 제안에 내가 지나치게 의견이 많아 이상하다고 했다.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이 왜 이상한지 반문하자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 사람이 말했다. 


"아니 변호사님, 그래도 제가 연수원 기수 선배인데요. 아무래도.. 선배 의견을 일단 따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제가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황당했다. 당황한 나는 다소 격앙된 답을 했다.


"우리가 검사인가요? 전 상인인데요. 상인끼리 기수가 있나요? "


 말을 맺고 나서 약간 뜨악했다. 아 맞다...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라는 상법 관련 판례가 있는데. 그 와중에 판례 생각을 한 것이 우습긴 했지만, 한 번도 선배의 면모를 보이지 않던 사람이 의견을 관철시키는 용도로 선배라는 말을 하는 것이 괘씸하여 나이브한 말이 나온 것이다. 


 난 얼마지 않아 그 사무소에서 나왔고, 다른 변호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일 년이 되지 않아 모두 사무소를 나왔다. 상당수 법무법인, 법률사무소는 변호사들 간의 분쟁으로 분리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 듯이 다른 구성원들의 다툼으로 아무 이유 없이 사무실에서 튕겨져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법조삼륜을 이야기하면서 연수원 내부의 유착관계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유착관계를 우려할 만한 애정 어린 관계를 경험한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마도 내가 속한 세대가 점점 더 팍팍해지는 것이리라.


 내가 그 사무실에서 나오던 겨울은 아직도 너무 차갑게 기억에 남아있다. 엊그제 동료 변호사에게 자기가 속한 사무실에 변호사들의 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 해주었다. 내년에 사무소가 완전히 분리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래도 겨울에 나오지는 마, 추워"


 변호사는 공익을 기반한 법률 서비스 제공 업무를 하지만, 변호사 조직 내부에 조직을 위한 배려는 없다. 어쩌면 법을 아는 만큼, 자신의 행동이 위법이 되지 않는다는 소극성만 판단하고 나면, 더 빨리 더 냉정하게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 같다.


 난 서초 강남 삼성 등을 거처 지금은 교대역에 자리를 했다. 매서웠던 경험이 얼마나 뼈에 사무쳤던 건지, 겨울의 눅진한 기억이 되었다. 


 유달리 추웠던 오늘, 주말 근무를 나왔는데 앞 방의 변호사님이 방을 빼신다고 인사를 했다. 겨울에 이사하면 되게 추울텐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제안하여 점심식사를 함께했던 기억이, 빼빼로 데이에 과자를 나눠먹었던 기억이, 갑자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불을 끄고 나오다 이유를 모르게 훅하고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겨울은 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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