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고이유서를 작성 중이다.
상고이유서란 쉽게 말하면, 항소심(2심)에서 패소한 사람이 대법원(3심)에 다시 판단을 요청하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사는 12명이고 상고심 사건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많다. 대법원 사건은 전국의 모든 지방법원 사건의 최종 집합소이다. 그러다 보니 대법원은 아무 사건이나 판단하지 않는다.
몇 가지의 요건이 민사소송법을 통해 정해져 있고 그에 해당하는 것만 일단 판단 대상의 요건을 통과하고(1단계) 위법한 판단이었는지 여부를 심사(2단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 1단계 요건을 통과하기 어렵다.
인간이 하는 판결이기 때문에 법원이 모두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점은 내가 지금까지 수 백건 이상의 소송을 목격해오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러다 보니 항소심에서 한 번 잘못된 판결이 나오게 되면 이를 대법원에서 뒤집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래서 나는 사선 상고심 사건을 맡지 않는다. 사선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확률이 높지 않은 사건에 전력을 다했을 때 내 마음만 다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재산에 추가적인 손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매년 공익 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그 선택지 중에 국선 변호사(형사)의 활동이 있고, 나는 국선변호를 통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어 부러 상고심 국선을 선택했다. 적어도 국선에는 의뢰인의 추가적인 재산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고심까지 올라온 피고인들 대부분은 대법원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고, 실낱같은 희망만 갖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변호사님, 저도 잘 알고 있는데요. 뒤집히기 어렵죠 많이?"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간혹 뒤집히기도 합니다."
"... 네.."
미리 자포자기한 피고인들이 안타까워 수임 후 짧은 시간(딱 20일의 기간이 주어진다.)이지만,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들과 무조건 한 번은 면회를 해서 의견을 듣고 의견서를 작성한다(코로나 기간 중에 두 번 이상의 면회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변호사님, 방금 전화가 왔는데 국선 변호사건 피고인이 면회를 요청하는데요."
".. 면회? 어차피 갈 생각인데, 성격 급하시네요."
"아니요. 밖에 계시는 거 같아요."
"? "
'그래 구치소 밖의 피고인을 왜 생각 못했지?'
나는 지금까지 항상 미결구금된 피고인들을 국선 대리해왔다. 미결구금은 일단 1, 2심에서 징역 선고를 받아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법원에 상고하였기 때문에 아직 확정이 되지 않았다고 보아 '미결구금' 수용자라는 용어를 쓴다.
그런데 구치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단순 징역 판결이 아닌 1,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 행동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람들은 굳이 대법원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정말 억울하고 반드시 무죄가 나와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은 사선 변호사들을 선택하기 때문에 국선으로 집행유예 판결이 난 피고인을 만날 확률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다.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보니 남자, 1942년생이셨고, 죄명은 사기미수, 사문서 위조 및 행사였다.
'진짜 억울하신가 보네'
선입견일 수 있으나, 1942년생이면 이미 한국 나이로 여든이 넘었고, 반드시 무죄가 필요한 경제적인 이유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적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취직, 직장에서의 처우등 다양한 이유로 무죄가 나와야 할 이유가 많다.
그런데 이 분은 도대체 얼마나 억울하면 집행유예 판결이 나왔는 데에도 대법원 국선변호를 신청한 것일까.
* 표지 사진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 없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