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함에 대하여
김애란, 「도도한 생활」, �침이 고인다�, (문학과 지성사, 2024)
유명한 작가임에도 나만 몰랐던 김애란 작가에 호기심이 생겨 여러 작품을 찾아 함께 읽었다. 대부분 단편소설 모음집이라 하나의 이야기를 한 번에 온전히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주로 8, 90년대로 살아온 시기가 나와 겹쳐있었다. 김애란 작가는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유년기 대부분은 서산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지방에서 서울로 와서 살아가는 내용이 많았다. 익숙한 내 고향 서울이 낯설고 삭막하게 표현됐다. 전반적인 가족 분위기도 시대를 반영했다. 당시 내가 아이로서 느낀 감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모두 나름으로 애쓰던 시기였다. 작가의 섬세한 표현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의 성장 과정을 떠올리게 한 같은 제목의 단편「도도한 생활」을 선택했다.
체르니란 말은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아서, 돼지비계나 단무지란 말과는 다른 울림을 주었다. 나는 체르니를 배우고 싶기보단 체르니란 말이 갖고 싶었다 (p.15)
단편소설임에도 도입에 주인공의 피아노 수업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각 건반의 울림을 음미하는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주인공의 엄마는 배움이 짧았다.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엑스포를 가고, 놀이공원에 가며 남들 하는 만큼 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피아노가 되어 엄마의 만둣가게 한쪽에 자리 잡았다. 어린 주인공 역시 피아노에 대한 환상을 가졌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페달을 밟고 음을 과장하며 꿈꾸었다.
나에게도 피아노는 아니지만, 풍금이 있었다. 어릴 적 집이라고 부르던 셋방의 좁은 마루 위였다. 친척이 자녀를 다 키우고 난 뒤 물려준 것이었다. 연주되지 못하고 가구처럼 자리 잡았다.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풍금은 그제야 제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젓가락 행진곡은 나에게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놀라웠다. 나는 몇 개의 멜로디를 배우고는 한동안 그것을 반복해 쳤다. 보이지 않는 음들이 주변에 흩어져 춤을 추었다.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 나아갈 음들은 없었다. 풍금은 다시 잊혔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정말 사라졌다. 몇 번의 이사 뒤였다. 주인공과 나에게 있어 이 음들은 최초의 도전이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주인공은 별다른 근거도 없이 취업이 잘 되겠거니 기대하며 진로를 정했다. 그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고 나 역시 그러했다. 그 시대의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마치 누구나 타고났지만 낼 수 없는 어떤 소리처럼, 자신이 뭘 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엄마가 가장으로 치열하게 살아내는 동안 아버지는 사람 좋다는 소리만 감투처럼 쓰고 다녔다. 생업을 제치고 늘 동네를 돌아다녔다. 그것은 결국 보증으로 이어졌고 그 보증은 또 다른 보증과 연결되었다. 가족은 더 가난한 상황에 빠졌다. 더 가난한 상황. 그런 것이 존재했다.
“그럼 누구 잘못이야?”
나는 모른다고 했다. 다만 그것이 아주 투명한 불행처럼 느껴진다고, 실감이 안 난다고 덧붙였다
(p25)
한동안 뭉뚱그리듯 표현하는 주인공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비난하고 원망했다. 마치 그가 피해자라는 버스에 무임 승차한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시 성실했던 많은 이들에게 실례라고까지 생각했다. 어쩌면 가족의 고통과 슬픔이 너무 무거워 수면 위로 떠 오르지 못했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와중에 세탁기도, 냉장고도 아닌 피아노는 주인공과 함께 올라와 좁은 반지하 단칸방에 자리 잡았다. 엄마의 부탁이었다. 엄마에게 피아노란 무엇이었을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한때 기대했던 중산층의 삶이었으리라. 집주인의 요구로 피아노는 연주되지 못했다. 차마 놓지 못한 엄마의 바람이 눅눅하게 늙어갔다. 주인공 또한 비좁은 방에 갇혀 컴퓨터와 씨름하며 학비를 모았다.
조그마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이곳 반지하에는 타자 소리와 영어 단어 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 언니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볼펜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야, ‘미래’가 어떻게 ‘완료’되냐?” 나는 지층 단면도를 따다 붙이다 말고, 키보드에 머리를 박으며 외쳤다. “아! 과학이 제일 싫어!”(p.31)
그녀는 고립된 생활을 견디며 소통을 꿈꾸었다. 그러나 소진되어 가는 이에게 곁을 내어줄 타인은 없었다. 그렇게 젊음이 소비되고 있었다.
나는 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얼추 한 학기 등록금을 모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피로’나 ‘긴장’을 느끼고 싶었다 (p32)
어느 여름밤, 모든 것을 앗아갈 듯 폭우가 반지하를 덮쳤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주인공은 바가지 하나에 의지해 물을 퍼 날랐다. 늦은 시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물과 사투하며 아르바이트 정산으로 바쁜 언니의 귀환을 기다렸다. 그 와중에 돈 얘기를 꺼내는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감당할 수 없는 금액임에도 “어떻게 해 보겠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설상가상 언니의 예전 애인까지 술에 취해 찾아왔다. 그는 피아노 위에 뉘어져 ‘음냐, 음냐’ 소리만 냈다.
언니의 영어 교재도, 컴퓨터와 활자 디귿도, 아버지의 전화도, 우리의 여름도 모두 하늘 위로 떠 올랐다. 톡톡 터져버렸다 (P41)
그녀는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아무 힘도 주지 않았는데 어떤 음 하나가 긴소리로 우는 느낌이 들었다 (p41)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주인공. 그녀에 의해 이 이야기가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읽는 동안 내가 답답함을 느낀 이유이기도 했던 그녀의 침묵은 현실에 대한 순응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건반을 통해 내는 그녀의 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세상을 향한 외침은 아니었을까. 아직 꿈꾸는 존재가 이곳에 있다고…. 그녀가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소리, 그 작은 저항으로 내일이 달라질 것을 믿게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폭우처럼 지나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 이상을 요구받는 지금의 청년들이 떠올랐다. 어느 때보다 소통할 디지털 도구가 많은 시대가 왔다. 그런데도 고립 또한 더없이 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 안에서 자신의 존엄, 가치를 지키고 싶은 영혼들에 이 책을 전하고 싶다. 이미 그 시간을 겪은 현재의 중년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가슴속 어린 기억을 보듬기를 바라며.
끝.
(원고지18매)
* 2025년 성북구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
- 여성주의 관점으로 서평 쓰기에 쓴 본인의 글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