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서평 - 1

악몽

by EJ


한강, 「나무 불꽃」, �채식주의자�(창비, 2024)



인혜의 가족은 아버지의 폭력 아래 살았다.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였다. 무력이 칭찬받고 자부심이 되는 자리였다. 아끼던 개가 어린 영혜를 물자 거리낌 없이 오토바이에 묶어 잔인하게 죽이고 그 살점으로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폭력은 일방적이었다. 인혜는 그 안에서 순응하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갔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술국을 끓이며 폭력을 피했고, 서울에 상경해서는 혼자 힘으로 가게를 차려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동생 영혜는 달랐다. 열여덟까지 종아리를 맞으며 아버지의 폭력 한가운데 있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도 못했다. 그런 동생은 자라면서 과묵하다 못해 적막해졌다. 각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려 살던 어느 날 돌연 채식을 시작했다.


꿈 때문이었다. 동생 영혜는 꿈속의 숲에서 길을 잃었다. 시뻘건 고깃덩이를 헤치고 피에 발린 자신을 마주한, 생생하고 끔찍한 악몽이었다. 이 꿈을 끝내기 위해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영혜의 남편은 그런 그녀의 꿈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도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그들에게 걸림돌 같은 채식을 끝내도록 요구했다. 인혜 또한 동생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조용히 나무랐다. 결국, 아버지의 손이 올라갔다. 폭력은 다시 정당화되었다. 영혜는 그 모든 것에 소리치며 대항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칼을 들었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영혜 안의 폭력성은 그녀가 당하기도 행하기도 한 것이었다.


어느 날, 인혜는 비디오아트를 하는 남편과 동생 영혜가 온몸에 붉고 노란 꽃으로 물감칠을 한 채 알몸으로 누운 모습을 목격한다. 카메라 테이프에는 그들이 몸을 섞는 장면들이 낱낱이 담겨있었다. 인혜는 절망했다. 그녀의 신고로 둘은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오래지 않아 남편은 유치장을 거치며 예술의 비호를 받고 풀려났지만, 동생 영혜는 병원에서 나올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영혜는 악몽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미 깊숙이 스며든 폭력성을 벗어난 존재가 되기로 했다.


�채식주의자�의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을 읽으며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확실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어려워서였다. 영혜의 내면을 읽다 보면 내 안의 모호한 피해의식도 고개를 들었다. 문득 어릴 적 들었던 ‘사랑의 매’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절대 어울릴 수 없는 이 두 단어. 당시의 어른들은 크면 다 알게 된다고 했지만, 중년에 접어든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영혜의 남편과 인혜의 남편을 통해 전개된 이야기에 이어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에 의해 서술되었다. 늘 보살펴야 할 존재로 느껴왔던 동생은 말수가 적어지며 낯선 존재가 되었다. 그것은 인혜가 남편에게 줄 수 없는 평안처럼 그녀에게 좌절감을 주었다. 품어주고 싶던 그 모습은 인혜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한강, 「나무 불꽃」,�채식주의자�(창비, 2024), 193페이지)


남편의 말처럼 인혜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렇게 선택했고 믿었으나 견뎌왔을 뿐이었다. 폭력에 순응하고 맏딸이라는 이름에 맞게 행동해 왔을 뿐이다. 그것이 폭력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딸, 언니, 누나, 아내, 엄마, 생활인, 하다못해 스치는 행인으로서도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 안에 인혜 자신을 위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자신에게 질문했다. 태어나 보니 ‘70년대-대한민국-서울’이었다. 맡은 역은 3형제 중 ‘막내’였다. 살면서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니면서 새로운 꼬리표도 생겼다. 그 이름에 어울리도록 노력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기도 했고 ‘우리’ 학교이기도 했으며 ‘우리’ 회사가 될 때도 있었다. 형제들이 결혼하면서 타인이 그 ‘우리’의 울타리에 들어오기도 했다. 나는 더욱 애를 썼다. 우리가 잘 어우러지도록, 아니 어울려 보이도록…. 이제 그 모든 수식어를 뺀 뒤의 ‘나’ 개인은 정의하기 어렵다.

어느 유월, 인혜는 폭우 속에서 숲을 지나 영혜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녀에게 그곳의 나무들은 춥고 어둡고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그녀가 침묵으로 받아들였던 삶의 무게 같았다. 어느 봄, 그녀에게 찾아온 질병이 두려움만을 주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그녀에게 어떤 평화조차 느끼게 했다. 어두운 새벽, 인혜는 삶을 끝내려 뒷산으로 향했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한강, 「나무 불꽃」,�채식주의자�(창비, 2024), 242페이지)


이른 새벽의 산길 끝에서 그녀는 죽음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지친 그녀에게 안식이 될 수 있겠다는 잠깐의 기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의 삶을 부정하는 순간 그녀는 그 경계까지 다가갔다. 견디고 극복해 온 강한 정신력의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기도 했다. 다시 생계를 전담하고 자식을 보살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돌아온 인혜는 마지막까지 영혜의 보호자로 남았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한강, 「나무 불꽃」,�채식주의자�(창비, 2024), 250페이지)


장기간 음식을 거부한 동생은 위출혈로 더 큰 병원으로 옮기게 됐다. 구급차는 비탈진 도로를 빠르게 달려갔다. 인혜는 주변 나무들이 짐승처럼 몸을 일으켜 불꽃처럼 타오른다고 생각했다. 나무와 불은 공존할 수 없다. 인간이지만 나무가 되고 있다고 하는 영혜 같다. 이제 영혜는 악몽이 아닌 나무의 꿈을 꾼다고 했다. 꿈속에서는 그녀의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손에서는 뿌리가 돋아났다. 인혜는 더 이상 동생을 붙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꿈인지 몰라.

(한강, 「나무 불꽃」,�채식주의자�(창비, 2024), 268페이지)


인혜는 동생에게 악몽 같은 현실에서 깨어나 바라던 꿈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말했다. 떠나보내는 마음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한동안 영혜를 폭력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다 인혜 역시 못지않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맏딸이 분양받은 새집만을 보고 ‘걱정을 덜었다’라고 했던 부모의 말이 공허하게 떠올랐다. 남겨질 인혜의 삶이나마 지난 시간의 무게가 덜어지기를 바랐다.


서평을 쓰며 폭력이 남긴 상처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군사독재를 거쳐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자라났다. 가부장제, 유교문화 속에서 여성 차별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었다. 어린 시절, 옆집 아저씨는 종종 부인을 때렸고 그 집이 이사한 뒤 새로 이사를 온 가족은 똑같은 폭력을 보여주었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당연했다. 줄줄이 서서 매 맞을 차례를 기다리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의 결론은 개인의 삶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집단에 의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동의하면서도 혹시라도 나에게 남은 한 조각의 폭력이라도 자녀에게 물려줄까 봐 걱정한다. 인혜가 경련하던 아들을 달랬던 것처럼 내 안의 영혜와 인혜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한강, 「나무 불꽃」,�채식주의자�(창비, 2024), 187페이지)


끝.

(원고지20.3매)


* 2025년 성북구 평생학습동아리 지원사업

- 여성주의 관점으로 서평 쓰기에 쓴 본인의 글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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