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밤에

by EJ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어느 밤이었다. 뜨거운 낮 시간을 각자 보내고 가족이 모두 모였다. 저녁식사 후, 거실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였다. 하루에 해야 할 저마다의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각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소파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의 릴스를 보고 있었다. 딸은 책상에서 종이 놀이 패키지를 만들고 있었다. 요즘 그리기와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종이 인형의 몸을 그려 색칠을 하고 옷과 장신구도 추가했다. 친구들에게 선물로 준다며 종이봉투를 만들어 담았다. 나도 설거지를 마치고 두 사람 사이의 거실 매트에 자리를 잡았다. 책을 하나 골라 엎드려서 몇 장을 넘겨보다 다른 책이 또 궁금해 살펴보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다들 딴청이었다. 그럼에도 문득 이 순간이 행복으로 느껴졌다. 우리 가족 안에서 느끼는 안전함, 이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하니 말이다. 그렇게 흐뭇해하며 딸과 남편을 바라보니 남편이 먼저 시선을 느꼈다.


"그냥"


나는 멋쩍게 웃었다. 딸도 뭔가 싶어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 순간이 훗날 제일 행복한 기억일지도 모르겠어."


아직 초3인 딸은 엉뚱할지 모를 내 고백을 알아듣는지 싱긋 웃었다.


"뭐래~"


남편이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중년에 접어들며 가끔씩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지금의 이 모습도 언젠가 빈자리기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딸이 성장해서 빌 자리, 내가 먼저일지 남편이 먼저일지는 모르지만 사라질 또 하나의 자리가 떠올랐다. 영원할 순 없겠지 하면서도 서글픔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지금을 더 감사히 생각해야겠다 싶었다. 조용히 이 순간을 눈으로 담았다. '살아있는 동안 이 기억을 떠올리며 머물다 와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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