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이랄 것도 없던 당시였다. 친구들은 분식집이나 햄버거 체인 등에서 일하고는 했다. 나는 할머니가 받아온 볼펜 부품을 같이 조립한 기억이 있다. 어느 방학에는 운이 좋아 친척의 작은 회사에서 타자 아르바이트도 했다.
어느 여름방학이었다. 집에서 쉬는 나에게 두 친구가 전화했다. 나가보니 와이셔츠를 팔겠다며 한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어느 공장에서 도매로 받아온 것이었다. 그 날따라 비가 내렸다. 집 앞 시장에는 일찍부터 문 닫은 가게가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 상인들은 어설프게 장사 준비를 하는 우리를 그저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나는 대담하게 장사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멋지다 생각했다. 나도 용기 내 손님을 불러 보았다. 그날 시장 상인에게 한 개, 딸 생각이 난다며 목에 맞지 않을 셔츠를 산 아저씨가 손님의 전부였다. 그래도 우리는 신이 났다. 그때부터였을까, 안전하다 정의한 내 생활에 틈이 열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졸업을 앞두었다. 어떤 친구는 취업을, 또 어떤 친구는 공부를 선택했다. 나는 한동안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사실 마음속으로 공부를 택했지만, 말할 용기가 없었다. 이해받지 못 할 말 같았다. 그래도 준비 없이 치른 수능점수가 나름의 희망이 되어 조심스럽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나는 마음에 둔 학과에 들어갔다. 친구 중 2명도 같은 길을 갔다. 우리는 종종 보며 서로의 세계를 나누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대단한 변화나 멋진 삶이 기다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삶이 값지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우당탕 방황하던 20대와 제법 아는 척했던 30대를 지나서도 우리는 만남을 이어간다.
몇 년 전 우리가 어릴 적 상상했던 40대에 대해 말한 기억이 있다. 결혼하여 단독주택에 사는 모습이었다. 아이들도 있고 전업주부의 삶이었다. 그 시대가 그랬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자연스러운 우리의 미래로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그 나이가 되었다. 지금의 삶은 그때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그때는 그것이 쉽고 당연했다면 지금은 치열하게 지켜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모험하지 않는다. 성실히 매일의 삶을 지킨다. 가족을 위하고 서로를 위하는 우리의 마음이 매일 모험이고 희망일지 모르겠다.
글을 사랑했던 친구들은 이제 일 외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내가 이제야 지난 이야기를 떠올리고 글을 쓴다. 그들은 이야기를 살아가고 나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우리의 짐이 조금 가벼워진다면 다시 그때의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