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서울 자가 아파트를 가진 대기업 김부장’을 보고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서울 자가 아파트를 가진 대기업 김부장> 을 보았다.
오랜만에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드라마였다.
25년 동안 대기업 ACT에서
청춘을 갈아 넣은 영업팀 김부장.
평일엔 끝도 없는 외근과 회식, 주말엔 골프 접대.
가족은 점점 멀어지고, 시간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데,
그럼에도 버텨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제는 임원 승진이 보이니까.”
하지만 자신을 끌어준다고 믿었던
‘형님’ 같은 백상무는 어느 순간 등을 돌리고,
그는 지방 공장으로 유배되다시피 내려가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반면 경쟁자인 19년 차 도부장은 영리했고,
프로페셔널했다.
때론 빠르고, 때론 조용하며,
필요할 땐 은근하게 치고 들어가는 사람.
그러니 ’전문대를 나왔어도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살아남는구나 ‘싶은 존재였다.
그렇게 도부장은 김부장을 밀어내고,
위로는 백상무 대신
황전무 라인으로 갈아타며 본인의 승세를 굳힌다.
실적도 좋고, 주변 어느 누구도
도부장의 승진을 의심하지 않았다.
올해 상무는 도부장 차례라는 분위기.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선택은 냉정했다.
도부장은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심지어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백상무도
계약이 연장되어, 다시 한 공간에서 마주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 되었다.
허탈한 도부장은
이미 회사를 떠난 김부장을 찾아가
쌓였던 마음과 분노를 절규하듯 쏟아낸다.
“어떻게 회사가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왜 나는 임원이 안 되는 거냐고!”
글쎄...도부장은 왜 임원이 되지 못했을까.
그 정답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백상무를 등에 업고 살아오다 황전무로 갈아탄 순간,
도부장은 회사 생태계에 이렇게 선언한 셈이다.
“나는 필요하면 누구든 버립니다.”
줄을 바꾸는 건 생존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신뢰는 그렇게 무너진다.
전쟁에서 옆에 두어야 하는 사람은
잘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절대 나를 찌르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도부장은 스스로 본인이
언제든 배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버렸다.
설령, 이번엔 살아남았더라도,
그런 방식으로는 오래, 멀리 가기 어렵다.
경쟁자였던 김부장뿐 아니라
기존 김부장 팀원들까지 회의에서 배제하며
자신의 팀원만 챙겼던 도부장.
하지만 회사가 원하는 임원은
조직 전체의 균형을 다루는 사람이다.
특히 능력 있는 실무자들을 밀어내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보면 ‘낭비’이고 ‘손실’이다.
그리고 배제된 팀원들 입장에서도
지금은 본인이 당하는 것 같지만,
결국 마음 깊은 곳에서
도부장의 실패를 바라는 감정이 차곡히 쌓였을 것이다.
도부장은 만들지 않아도 될 적을
스스로 너무 많이 만들어버렸다.
인사팀, 유관부서, 동료, 부하직원.
심지어 사내 식당 직원, 청소, 경비 담당자까지.
조직은 늘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공간이다.
힘이 있을 때는 모두 침묵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
결정적 순간에는
그 침묵이 정확한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관계란 원래 그렇다.
조용히 쌓이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다.
간절함이 욕망과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쉽게 무너지고 실수한다.
승진 발표 날 직원들이 케이크까지 준비했다면,
도부장의 절박함은 이미 모두에게 노출된 셈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개인의 영광보다
조직의 필요를 우선한다.
특히 승진 인사는 99% 확정이라도
발표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간절했던 일일수록,
끝까지 말 아끼고 때를 기다리는
절제와 지혜가 필요하다.
어쩌면 도부장이 아무리 잘해도,
올해 회사가 필요로 한 퍼즐 조각은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도부장은 스스로 전문대 출신이라
밀렸다고 생각하지만,
설령 서울대를 나오고
더 좋은 타이틀이 있다고 하더라도,
향후 회사가 나아갈 방향과 맞지 않으면
기회가 오지 않는다.
반대로 고졸이라도
그 시점에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기회는 찾아온다.
이미 어색해질 대로 어색해진
백상무와 도부장을
올해 모두 연임한 것 또한
회사 입장에서는 필요해서 유지한 구도일 뿐이다.
둘의 관계, 감정 따위는 큰 의미가 없다.
그게 회사라는 냉정한 생태계다.
도부장의 절규는 사실 우리 모두의 속마음이다.
“나도 인정받고 싶다.”
“그만큼 노력했는데 왜 아니지?”
“옆의 경쟁자보다 내가 뭐가 부족하지?”
그 불안과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살짝 얄미운 캐릭터였기는 하지만
도부장이 쏟아온 19년의 시간과 열정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모양은 다를 뿐 또 다른 형태의
김부장이자 도부장일지도 모른다.
김부장이 남긴 말이 오래 남는다.
왜 임원이 되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왜 임원이 되고 싶은가,
그걸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것.
오랜만에 참 잘 만든 드라마를였다.
직장인이라면 특히,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