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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줄향 Apr 08. 2024

6. 혹시, 츄츄라고 들어나 봤니?

특별 우정출연 : 익산 사는 츄츄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남쪽, 익산이라는 작은 도시에 사는 고양이 츄츄입니다.

원래 서울에서 아빠 엄마 집사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 익산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아빠엄마 집사에게 귀여운 아기가 생겨서요, 저는 당분간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야 한대요.

사실 저는 아기 집사랑도 친하게 지낼 자신이 있거든요, 아기가 잠들 때 제가 옆구리에 딱 붙어 있으면 보들보들한 제 털을 만지면서 아기가 포근하게 잠들 수 있고요, 혹시 파리나 모기가 아기를 귀찮게 하거나 물려고 하면 제가 재빨리 걔네들을 잡아 삼켜버릴 수도 있어요, 또 아기가 응가를 하고 울면 제가 얼른 냄새를 맡고 엄마집사한테 알려줄 수도 있고요. 진짜 확실하게 잘 돌볼 수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집사가 저를 못 믿는가 봐요. 아빠 엄마 집사는 같이 살아도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할머니가 강력하게 안 된다고 주장하셔서 저를 여기로 데려왔어요.



처음에 갑자기 아빠 엄마랑 헤어져서 낯선 도시에 왔을 때 저는 정말 슬펐답니다. 날마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파트 거실 큰 창 앞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곤 했어요. 할머니네 아파트 앞에는 논이 펼쳐져 있거든요. 제가 올 때가 이미 작년 여름이라서 그때는 푸른 벼가 초록초록 했다가 누렇게 물들었다가 지금은 벼 베고 난 그루터기만 황량하게 남아있어서 최근에는 더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았어요. 

하지만 익산에 와서 좋은 점도 있긴 해요. 우선 할머니 할아버지 집사는 나이가 들어서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으시니까 저랑 같이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요.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는 아빠 엄마 집사가 일하다가 밤늦게 집에 오니까 하루 종일 혼자 놀아야 했는데 요즘에는 할머니랑 하루종일 아옹다옹하면서 노니까 심심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또 하나 익산이 좋은 점은요, 이건 아빠한테는 비밀인데, 할머니는 아빠보다 츄르에 훨씬 관대하세요 ㅎㅎ

할머니가 제 발톱을 깎으려고 가위를 들고 오시거나 털을 빗기려고 빗을 챙기는 기색만 보여도 저는 쏜살같이 도망가서 아파트 뒷 베란다에 있는 저의 아지트에 숨어서 안 나오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여기 발톱 있습니다. 제 털 좀 빗어주세요' 하는 고양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할머니가 처음에는 달래다가, 나중에는 언성을 높이시죠, 그래도  당연히 저는 절대 나오지 않아요, 제가 왜 나오겠어요ㅋㅋ 

그러면 할머니가 슬슬 밀당을 시작하시죠. "애, 츄츄야, 너 발톱 좀 깎아야지. 너무 길어서 걸리면 부러지고, 그러면 아파, 자, 이리온, 착하지, 발톱 깎으면 너 좋아하는 츄르 출게, 어서 온"

츄르 얘기를 들으면 저는 벌써 입안에 침이 추릅~ 하고 고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좀 더 버틴답니다.

'에이, 할머니 선 발톱, 후 츄르는 말이 안 되죠. 선 츄르, 후 발톱이면 몰라도요"


이렇게 제가 버티고 있으면 성격이 급한 할머니는 벌써 츄르를 꺼내서 들고 오세요, 

한 손에 추르를 들고 한 손에 발톱 가위를 들고 다가오시는 거죠.

'츄츄야, 이거 뭐지? 이거? 니 좋아하는 츄르 여깄다, 어서 나오너라...'

이 얘기가 나오면 그제야 저는 고개를 빼꼼 내다봐요, 할머니 츄르 먼저 주면 발톱 깎을 게요. 츄르 츄르 츄르... 먼저 두떼요 '

저의 애절한 눈빛과 애교 부리는 몸짓에 할머니는 금방 녹아들어요.

'에이고 츄츄, 이것이... 

좋아, 그럼 츄르 절반 먹고 발톱 한쪽 깎고, 다시 절반 먹고 나머지 한쪽 깎자, 

그럼 됐지?' 하시면서 타협안을 제안해 오시죠.

그 정도면 저도 한 발 한 발 할머니 쪽으로 다가가서 츄르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답니다.

'할머니, 빨리요, 츄르 빨리 먹고 싶다고요 '



그렇지만 저는 양치질은 너무 싫어요.

아무리 츄르를 먼저 준다 해도 그 이상하게 달큼하고 짭짤하고 시큼하기도 한 치약을 입에 넣는다는 게 상상이 안되고요, 게다가 그 작은 빗자루 같은 게 입안에 들어와서 막 쓱싹쓱싹 소리를 내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미 서울에서 아빠 엄마랑 살 때도 저는 양치질은 거부했어요.

게다가 아빠가 치과 의사 선생님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저 양치를 시키려고 엄청나게 저랑 신경전을 벌였는데요

제가 어떻게 해도 무엇을 준대도 입을 앙다물고 벌리지 않으니까 결국은 포기했답니다.

제가 이긴 거죠.

저는 집사들의 억압과 회유에 끝까지 저항해서 이를 닦지 않게 된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고양이랍니다. 암요, 고양이가 어떻게 양치를 한다고 입을 헤벌리고 쓱싹쓱싹 이라니... 저는 안 해요. 절대로요!



근데요, 요즘 좀 이상한 일이 있어요.

이상하게도 야심한 밤에 자꾸 제 귀가 간지러워요.

누군가가 자꾸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요. 

어디선가 '츄츄라고, 익산 사는, 걔는 글쎄, 원 세상에, 이를 안 닦아, 쯧쯧... ' 막 이런 얘기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요 며칠 동안 맘먹고 목을 있는 대로 길게 뽑고 귀를 쫑긋하게 세워서 그 소리를 따라가 봤어요. 그랬더니 그 소리는 서울 연희동에 사는 콩이랑 순이라는 고양이네 집에서 나는 소리였더라고요.



매일 밤 11시가 되면

그 집에서는 술래잡기가 시작된답니다.

우선 엄마 아빠 집사가 서로 눈빛을 교환해요.

(아빠 집사) "당신이 콩이 맡을래? 내가 순이 맡을게.

일단 2층 거실로 들어가는 중문을 닫아.

여보, 거기 콩이를 발로 막아, 안 그러면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니까.

잡았다, 요놈, 아무리 그래도 이를 안 닦고는 못 잔다, 이눔아." 

(엄마 집사)"순아, 순아, 너 거기 숨숨집에 숨은 거 다 알아, 니 꼬리가 밖으로 삐죽  나와있잖아.

그만 숨고 얼렁 나와라, 셋 셀 때까지 안 나오면 숨숨집 거꾸로 들어서 너 꺼낼 거야. 자, 하나, 둘 , 셋...."


이렇게 콩이와 순이, 엄마 아빠가 가세한 술래잡기가 시작되고요, 그로부터 30분쯤 지나면 마침내 순이는 안방에 잠깐 가둬놓고 콩이부터 치카치카를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거죠.

보통은 엄마 집사가 콩이를 품에 안고 안락의자에 앉고요, 아빠는 그 앞 마룻바닥에 거의 무릎을 꿇고 앉아서 콩이랑 눈을 맞춰요.

그리고선 치약을 듬뿍 묻힌 칫솔을 콩이 앞에 들이대면 콩이는 그 순간을 모면해 보려고 고개를 도리질하고 좌로 우로 몸을 비틀면서 탈출을 시도하죠.

바로 거기서 제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콩아, 콩아, 너 익산 사는 츄츄라고 들어나 봤니?

걔도 너처럼 노르웨이 숲 고양이인데 말야, 

아빠가 그 할머니한테서 들어보니까 말야,

세상에, 츄츄는 생전 이빨을 안 닦는다네, 

아이고, 지지해라, 어떻게 고양이가 이빨을 안 닦을 수가 있지? 나중에 이빨에서 엄청나게 냄새나고 막 충치가 생길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너 상상이 되니? 콩아?

콩이,  너는 연희동에서 밤마다 이를 닦는 거의 유이한 고양이야, (또 한 마리는 니 동생 순이니까 ㅋ)

골목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다 물어봐. 이 동네에서 이렇게 밤마다 이빨 닦는 고양이가 있는지.

없다니까, 진짜 없어.

자 콩아, 아, 해봐"

이렇게 현란한 말솜씨로 콩이를 혼미하게 만든 다음 멍해진 콩이가 입을 벌리는 순간, 바로 칫솔질이 시작되는 거였어요.



그러고 나서 콩이를 2층 거실로 올려다 놓고 나면 다시 순이를 붙잡아다가 이를 닦는데요

제가  여기서 또 한 번 소환된답니다.

"순아, 순아,

너 익산 사는 츄츄라고 들어나봤니?

글쎄 걔는 말야, 츄르는 맨날 먹으면서 이는 절대  안 닦는 단다.

헐, 그런 고양이가 다 있대,

우리 순이는 이렇게 밤마다 이를 잘 닦는데 말야.... "

이렇게 저를 흉보고 순이를 칭찬하면서 어르면 우쭐한 순이가 입을 벌리더라고요, 

그러면 또 쓱싹쓱싹쓱싹... 

이러고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밤마다 귀가 가렵고 뭔가 기분이 꿀꿀했던 거예요,

아니 아무 죄 없는 제가 왜 밤마다 연희동에 호출당해서 의문의 1패를 당해야 하냐고요. 

할머니 미워요, 저 이 안닦는다고 서울까지 가서 친척들 앞에서 흉보고 말이죠.

익산 사는 츄츄, 

너무 억울하다고요. 



제가 바로 익산 사는 고양이, 츄츄


제 이빨이 어디가 어때서요?  아직 멀쩡하다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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