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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줄향 Mar 22. 2024

1. 오만과 겸손 사이

출근하려고 양말을 신는다.

일어선 채로 양말 한 짝을 들고 발에 꿰려 한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리도 잘 들어지지 않으니 양말과 발의 거리가 너무나 멀다. 헛수고다.


앗, 양말을 놓쳐서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발을 꼼지락거려서 엄지와 검지 발가락으로 양말을 집어 올리려 애써보지만 아픈 허리에 신경이 쓰여서 발가락 끝에 힘을 집중하기가 힘들다. 도저히 안 되겠다. 새로 양말을 꺼내 들고 벽에 기대서 다리를 조금 더 들어본다. 이것도 쉽지 않다.

이번에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시도해 본다.

어느 정도 이상으로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으니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양말과 발 사이는 여전히 서울과 부산이다.

결국에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드러눕는다고 다리가 더 들어 올려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침대가 등을 받쳐주니 한결 안정감이 있다. 마치 뒤집어진 풍뎅이처럼 다리를 위아래로 들었다 놨다, 바깥쪽으로 안쪽으로 접었다 폈다 하면서 기기묘묘한 자세로 간신히 양말 한 짝을 신는 데 성공했다. 땀이 삐질삐질 난다. 5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이번에는 바지 차례.

양말보다는 입구가 넓어서 쉬울 것 같았는데 역시 이 상황에서 쉬운 건 없다.

이런저런 자세로 애써보다가 결국은 양말과 마찬가지로 침대에 드러누워서 하늘로 두 다리를 들어 올린 채로 어렵사리 양쪽을 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다.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서 바지를 허리춤까지 추켜올리는 고난도 숙제가 남아있다.

이번에는 풍뎅이가 아니라 애벌레다. 몸을 꿈틀거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벽 쪽으로 붙어야 한다. 허리에 힘을 주면 아직도 악 소리가 나는 상황인지라 뭔가 짚고 일어날 곳,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에 바지를 입으려고 드러누울 때 침대 머리맡 벽에 가까운 쪽에 누웠어야 한다는 뒤늦은 후회가 일지만 말 그대로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꿈틀이처럼 누운 자세로 아주 오랫동안 조금씩 전진해서 간신히 벽 쪽에 닿았다.




그다음은 돌아눕기다. 반듯이 누워서 양말과 바지를 뀄으니 이제는 돌아누워야 벽을 짚든 어쩌든 직립을 할 것 아닌가. 근데 이 돌아눕기가 또 맘 같지 않다. 팔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어깨를 빼야 방향을 바꿀 수 있는데 허리를 돌릴 수 없으니 대략 난감이구나... 우선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은 다음 손바닥이 아래쪽을 보도록 방향을 바꾸면서 팔을 먼저 뒤집고 그 상태에서 아주 천천히 어깨를 뒤로 빼 본다. 이때 다리의 협응도 중요하다. 비록 허리에 힘을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어나려는 방향으로 다리 한 짝을 어떻게든 보내야 간신히 일어날 수 있다.



양말 신을 때와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진땀도 많이 난다. 이 어려운 과정을 견디고 벽을 붙잡고 간신히 침대에 걸터앉는 데 성공했다.

이 순간 몸의 하중이 실리면서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난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제대로 비명을 질러야 일어날 수 있다.

다시 벽에 양 쪽 손을 짚고 힘을 넣은 다음 천천히 천천히 힘겹게 일어난다. 비명은 자연스레 터져 나온다. 당장은 허리를 곧게 펼 수 없어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무릎에 반쯤 걸쳐진 바지를 내려다보 한숨이 절로 난다.



옷을 입었다고 끝이 아니다.

단차가 있는 주택에서 살다 보니 자동차가 주차된 도로까지 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벽을 짚어도 지팡이에 의지해도 편의 부축을 받아도 한 계단 아래로 발을 내릴 때마다 새롭게 허리가 자극이 되면서 이를 악물게 된다. 호흡이 자꾸만 머리 쪽으로 치솟는 걸 느낀다.


그다음엔 승차와 하차.

차를 타고 내릴 때의 고통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다.

아무리 누군가가 부축해 준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내 두 팔에 내 몸의 모든 무게를 실어서 차 위로 기어올라가야 한다.

그래도 올라갈 때가 낫다. 등산보다 하산이 어렵다더니 그 말이 딱 맞다. 차에서 다리를 떨구고 땅에 내려와 두 발로 땅을 밟고 서는 이 간단한 동작이 이렇게도 어려울 줄이야....



회사 앞에서 차를 내려서 보니 다시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계단이 이토록 높은 태산이었던가.

11 계단 오르고 3걸음 평지, 다시 10 계단 오르고 26걸음 걸으니 간신히 회사 사무실 앞까지 도착했지만 거기에는 현관문이라는 장벽이 있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여닫던 문인데 허리에 힘이 없는 상태라서 그런가, 2미터가 훨씬 넘는 높이의 육중한 유리문은 아무리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철벽이 된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문을 열주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지난 금요일에 바지를 입으려고 한 다리를 들어서 바짓가랑이에 발을 집어넣은 바로 그 순간 칼로 베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허리 뒤편 왼쪽을 섬광처럼 가르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아악~ '소리와 함께 주저앉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 앉지도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기어 다녔다는 게 더 정확하다.

처음 허리를 삐끗한 게 대학교 1학년 때였고, 얼마 안 있어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으니 어느새 40년 가까운 병력인데도 이번처럼 처절하게 아프고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거의 매일 하루에 한 가지씩, 눕고 몸을 뒤집고 앉고 일어서고 지팡이를 짚고 걷고... 하나하나의 동작을 배워가고 있다. 말은 쉽게 하루 하나씩이지만 그 하나하나가 허리의 통증을 감수하고 온통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수 있는 것이라 괴롭고 아프기 그지없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통의 아저씨.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까만 고무판을 하반신에 대고 엎드려 기어 다니던 아저씨가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상이용사라고 수군거렸는데 기어 다니는 그의 목 앞에는 옷핀과 실, 노란 고무줄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좌판이 달려있었다. 그 좌판을 목에 걸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통의 진창길을 오직 두 팔에  의지해서 배로 밀면서 기어 다니던 아저씨.



그리고 동네 골목의 아주머니.

요즘 저녁 먹고 동네 산책을 하다 보면  밤 8시쯤 항상 골목에서 마주치는 아주머니가 있다.

어쩌면 나랑 나이가 비슷할 수도 있겠는데 몸 전체가 활의 반대방향으로 휘어서 한 손에 장우산을 짚고 한 발 한 발 간신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무척 힘겨워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 그 골목에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참으로 성실하게 걷는 분이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벽을 향해서 꿈틀거리며 앞으로 전진할 때, 한의원에서 침을 맞은 후 장우산을 빌려서 지팡이 대신 의지하고 한 걸음씩 회사의 구름다리를 건널 때 그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힘든 노력의 결과인지 얼마나 숭고한 투쟁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을 볼 때 안 됐다, 얼마나 힘들까 동정심을 느꼈지만 내가 그런 지경에 이를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했던 당연한 동작이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순간 얼마든지 안될 수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내가 저렇게 되지는 않을 거야, 나만은 그럴 리가 없어... 하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주저앉은 지 만 1주일이 지나면서 많은 기능을 회복했다.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건 세수하기와 양말 신기인데 이 동작이 자연스럽게 되려면  앞으로도 2~3주는 지나야 한단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삼스럽게 나의 머리와 몸과 통증과 일상이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를 손에 잡을 듯이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기능하며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교훈도 몇 가지 얻었다.


각도를 줄여야 한다.

속도를 낮춰야 한다.

손을 뻗기 전에 먼저 발을 움직여야 한다.

어제까지 됐다고 오늘도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




근무 중에 화장실 간다.

조심조심 걸어가서 용변을 보고 세면대에서 비누로 손을 씻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1주일 만에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든 과정을 다 해낸 내 몸의 위대함이라니....

나의 머리여, 부디 지금 이 순간의 겸손함을 잊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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