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다루는 내가 경매 법정으로 향한 이유
나는 낮에는 조직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문화를 다루고 코칭하는 HRBP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다독이는 것이 내 일 중 하나다. 큰 규모의 조직에서 인사 업무의 기초를 다진 후, 지금의 지사에서 꽉 채워가는 5년을 보내고 있다. 감당해야 할 업무의 밀도가 높아 체감상 훨씬 오랜 기간을 다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새롭게 해내야 할 일이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그런 내가 어느 평일, 반차를 내고 향한 곳은 인간의 가장 현실적인 욕망과 자본이 숫자로 노골적으로 부딪히는 법원 경매장이었다.
평일 아침 10시, 나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두 세계는 사실 내 안에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내 삶의 '안온함'을 쌓기 위함이다.
원래부터 경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동산을 "잘 알고 많이 해 본" 전문가들이 마지막 심화 학습을 풀 듯 도전하는 영역이라고 여겼다. 주변에서 경매로 집이나 상가를 샀다는 소리는 내게 머나먼 성공 이야기처럼만 들렸다.
경매를 시작해 보자고 결심한 건, 내 집을 갖고 싶다는 아주 작은 소망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재테크로 작은 금액을 불려 나가다 보니, 이쯤 되니 작은 집을 하나 사야겠다는 강한 열망이 들었다. 유동성 자산도 훌륭하지만, 진짜 자산의 시작은 부동산으로 다지고 싶었다. 그렇게 주말마다 가방 하나 덜렁 메고 운동화 차림으로 무작정 동네를 걸으며 임장을 다닌 게 쉰 기간을 포함해 어느덧 햇수로 3년이다.
이런저런 고민과 발품 끝에, 어느 날 나는 무작정 경매장이라는 곳에 서 있게 되었다.
살면서 법원이라는 곳에 들어갈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약간 녹슬어 있는 초록색 금속 명패부터가 꽤 무거워 보였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지레 위축됐다. 막상 문 앞에 도착하니 어느 건물로 들어가야 하는지 찾는 것부터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안내해 주시는 분에게 물어물어 겨우 경매 법원으로 들어갔다.
너무 이르게 도착했는지 안은 한산했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복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아주 젊은 분부터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연령대도 참 다양했다. 대출이나 중개업체 직원분들도 열심히 복도에서 펜과 물티슈가 든 팸플릿을 나눠주셨다.
많은 사람이 좁은 복도에 모여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신중하게 오늘의 물건 리스트를 뒤적이거나 휴대전화로 정보를 찾고 있었다. 모두가 조용하면서도 분주했고, 동시에 비장해 보였다.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오래전 수능 날 교문 앞의 공기를 느꼈다.
첫 입찰 도전의 기억은 아직도 웃음이 난다. 전날 밤 '도장, 신분증, 보증금, 도장, 신분증…' 주문을 외우듯 잠들어 놓고선, 아침에 서두르다 그만 도장을 두고 온 것이다. 부지런히 움직여 보증 수표까지 끊어온 내가, 어이없는 실수로 입찰조차 못 해보고 물건을 놓치게 될까 봐 아찔해졌다. 곤란해하며 담당 직원분에게 물으니 지장을 찍어도 된다고 하셨다. 다행스러우면서도, '오늘 준비가 참 안 되었구나, 내가 참 무모하게 왔구나' 싶어 속으로 이마를 쳤다. 수능 날 컴퓨터용 사인펜을 두고 온 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분리된 공간에 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내게는 엄청나게 큰돈을 꾹꾹 눌러 적어 봉투에 넣었다. 수십 건을 낙찰받은 전문가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직장인인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운 도전이었다. 입찰표의 숫자 '0' 하나에 수천만 원이 오가는 긴장감에 심장이 뛰었다.
결과는 역시나 패찰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분식집에서 꼬마김밥과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좋아하는 김밥을 씹으며 오늘을 복기했다. 아직 공부가 부족했고, 무엇보다 현장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에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수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김밥과 뼈아픈 복기를 마친 나의 두 번째 도전은 과연 성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