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넘어 사람으로, 나의 첫 낙찰과 명도 분투기
경매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데, 전체 물건은 지역별로 나뉘어 각기 다른 법원에서 다뤄진다. 그래서 다른 곳의 물건을 보고 싶거나 일정이 겹치게 되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동안 발품을 팔며 돌아다닌 나는, 가계약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었기에, 사고 싶은 물건의 지역이 "지금 사는 곳에서 동쪽으로" 확고하게 정해져 있었다. 오랜 시간 한 동네에서 자라다 보니, 아예 낯선 지역으로 떠나는 것은 마치 해외 이민처럼 큰 결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분위기와 흐름도 잘 모르는 지역에서 신축 분양도 아닌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 물건을 고른 후에는 더 철저히 분석하고, 동네를 걷고, 그곳에서 밥도 먹어보았다. 당시 나는 경매 전문가들과는 다소 다른 접근 방식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바로 '작은 물건을 낙찰받는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서 독립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내가 진짜 살면 어떨지를 한 번 더 꼼꼼히 살폈다.
마침 느낌이 좋았던 동네에 물건이 올라왔고, 이번에는 조금 더 먼 수원 법정으로 향했다. 회사에서는 꽤 멀어지지만, 동네 자체가 주는 따뜻함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내 눈에 좋은 물건은 남들 눈에도 인기가 많았다. 20명이 넘는 입찰 경쟁 속에서 나는 1등 금액을 적어내지 못해 또 한 번 패찰하고 말았다.
경매장에 갈 때마다 혹시나 너무 비싸게 적어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그래서 패찰이 되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될 때가 있다. 낙찰자와 내가 쓴 금액의 차이가 좁혀져서 패찰 할 때는 '내 분석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자신감도 조금씩 붙는다.
주말에나 겨우 시간을 내어 공부하다 보니, 물건을 볼 때마다 낯선 단어와 낯선 상황들이 튀어나왔다. 몇 번의 패찰을 겪고 난 후, 첫 낙찰에는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자는 결심을 했다. 여러 번의 미팅 끝에 지금의 담당자를 만났다. 조심스러운 생각이지만, 내가 스스로 몇 번 부딪혀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났다면 큰 실수를 했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해지니, 협업의 방향도 명확해졌다. 아마도 나는 꽤 잔소리가 많은 고객이었을 것이다. 아직 모든 과정이 끝나지 않은 지금도 여전히 그렇고 말이다.
함께 권리분석을 마치고, 입찰에 나섰다. 이번에는 남부지방법원이었다. 몇 번 와 봤다고 이제는 익숙하게 길을 찾는 내 모습이 제법 재미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단 한 번의 낙찰.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화려한 성공담이나 엄청난 수익률은 아닐지언정, 내 손으로 직접 얹은 삶의 무겁고 튼튼한 첫 벽돌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솔직히 다소 높은 금액을 써냈다고 생각한다. 발끝에 완벽히 맞추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이후 시장이 정책에 따라 움직여준 덕분에 운영비는 모두 벌어들일 수 있었다.
"경매의 진짜 시작은 입찰이 아니라 명도"라는 말이 있다. 경매의 끝은 결국 낙찰받은 집의 기존 거주자를 내보내는 과정이다. 물건의 상황에 따라 매우 까다롭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가장 날 선 감정들이 오가는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내 본업인 '사람을 향한 관찰'과 '비폭력 대화'의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다행히 내가 낙찰받은 곳은 크게 어려운 물건은 아니라서, 별문제가 없다면 곧 마무리가 될 예정이다. 오히려 원활한 진행을 위해 고용한 중간 담당자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더 까다로웠다. 상대해야 할 임차인이 다수이다 보니 내가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뒤에서 조율하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참 많다. 서류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담당자들을 위해 협의서 문구나 협상의 메시지를 일일이 다듬어서 보내주고 있다. 상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논리를 세워 회신하는 과정에서 머리의 힘을 아주 많이 쓴다.
일단 시작한 일이니 제대로 끝을 보고 싶은 마음에, 요즘은 한 주 한 주가 유독 길게 느껴진다. 예전엔 하루가 길었는데, 이제는 주 단위로 시간이 흐르는 기분이 드니 그마저도 고맙다.
내가 하는 인사 업무가 그렇듯, 이것 또한 결국 다 사람의 일이다. 무작정 화를 내거나 방어기제를 작동하기보다, 상대를 관조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해 나가는 경험. 부동산은 결국 차가운 돈과 숫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한 번의 낙찰 경험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대출 레버리지를 크게 일으켰기에 당장은 손실을 담보한 적금에 가깝다. 쉽게 말해 당분간 하우스푸어일 지 모른다. 하지만 이 경험은 내 삶을 지탱할 아주 확실한 무기 하나를 손에 쥐여 주었다. 첫 달 이자를 갚으면서 더욱 확신이 든다.
주변에 경매를 공부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지인들은 "그 무서운 곳에 뛰어드는 게 두렵지 않냐"고 묻곤 했다. 책 『러브 팩추얼리』에서 읽었던 "내가 겪는 일이 세상 어딘가에서도 비슷하게 발생하는 '확률'에 의한 것임을 안다면 덜 두렵다"는 구절처럼, 나는 그저 이 낯선 두려움을 내 삶의 곳간을 채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확률과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10%정도는 나와 같이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호기심 하나로 직감만 믿고 뛰어들던 20대를 지나, 매주 낯선 동네로 임장을 다니고 묵직한 대출 상환을 고민하며 현실적인 균형을 잡아가는 지금의 내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이 경험을 마중물 삼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한 달에 한 번 투자 독서 모임에도 나간다. 통찰력 깊은 전문가들 틈에서 초보인 나는 그저 듣기만 할 때가 많지만,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에서 좋은 에너지를 가득 충전해 돌아온다.
가만히 앉아 돌아보면, 어릴 적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좋아하는 찌개처럼 다채로운 재료들로 나만의 냄비를 보글보글 끓여가는 중이다. 이 치열하고도 고요한 안온함이 참 즐겁다. 부디 나의 첫 벽돌과 함께, 무사한 올해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