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회사 직원이 아날로그 낭만을 소비하는 법 (feat.경험의멸종)
먼저 '효율성'에 대한 찬사와 기술에 대한 감사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다. 나는 현재 인공지능 회사에 다닌다. 타깃 고객에게 가장 효율적으로 광고가 추천되고 도달하게 만들고, 실제 구매로 이어지게 유도하는 기능을 제공하는 일이 기본적인 우리 회사의 핵심적인 일이다.
고객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ROI를 맞추며 최적의 효율을 제공한다. 더 복잡하거나 다양한 기능도 많지만, 시장에서 가장 오래 환영받는 제품의 본질은 결국 '효율'이다. 시간을 절약해 고객의 생산성을 높여주고 남은 시간을 인생의 다른 가치에 활용하게 만드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 회사는 이 책의 저자가 가장 경계하는, 대척점에 서 있는 기능을 팔고 있는 회사가 아닌가 싶다. 알고리즘으로 고객의 취향을 추적해서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은 이것"이라며 구매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 생산성을 높여 주고, 남은 시간을 다른 가치에 활용하게 만든다는 비전을 나는 꽤 좋아한다.
나는 어린 시절 만화책에서 본 것 처럼, 세 끼 식사를 대체할 알약이 발명되기를 오랫동안 바랐다. 음식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정말 맛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는 내 입맛 때문인데, 실제 맛있다!라고 생각되는 것 외에는 다 5점 만점에 반 점 정도로 느껴지고 다 그럭저럭이라는 느낌이다.
어쩌면 무던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이 취향의 좋은 점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하루 중 소비되는 조리와 정리 시간을 아껴 삶에 필요한 다른 일에 쏟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를 과거형으로 적는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성장이나 업무 처리에 점차 속도가 붙고 효율적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에 '잔여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여유가 생기니 스스로 요리를 해 먹는 과정이 가끔은 꽤 재미있게 다가왔다.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커피를 내리고 후식을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하는 취미도 생겼다. 비록 흉내 내기 수준일지라도, 정성껏 담아내고 천천히 맛보는 행위에서 작지만 확실한 삶의 충만감을 느끼고 있다. 효율성이 극대화된 끝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낭만을 되찾은 셈이다.
효율성이 극대화된 끝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낭만을 되찾은 셈이다.
책에 언급된 터키 여성여행객 살인사건의 위협도 여성으로서 크게 와 닿았다. 위험한 나라들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도 특정 그룹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거 현지 정치 시위가 한창이던 터키를 동기들과 10박 동안 여행한 적이 있다. 이스탄불에서 교통이 통제되는 아찔한 경험도 했다.
생각보다 안전하게 마치긴 했지만, 만약 일행이 없었다면 렌터카와 국내선을 번갈아 타며 그 넓은 땅의 세 도시를 누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혼자 해외여행을 꾸준히 다니지만, 인도나 아프리카, 남미 같은 곳에 홀로 갈 배짱은 아직 없다.
대신 나는 디지털 영상으로 마추픽추를 보며 대리만족을 한다. 화면 속 풍경이 실제의 생생함과 흙먼지까지 담아내진 못하겠지만,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해 준다. 물리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곳을 디지털 콘텐츠로 먼저 안전하게 접하는 것은 일상의 하나의 즐거움이 되고, 꿈을 유지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인간관계나 정서적 고립을 다룬 책의 내용에 일부 동의하며, 기술 의존적 세태에 경각심을 일깨워 준 점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반대로 효율의 끝에는 감성, 경험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낭만적인 특성을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극보수적인 관점을 가졌다고 여긴다.
논문의 증거가 없더라도, 손을 쓰는 연습이 두뇌 발달에 좋다는 것을 우리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지는 나이를 거치며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큰일이 날 것이라는 경고는 잠깐 멈춰서 생각해 보고 싶다.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디지털에 박제하고 이를 돈으로 상품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캐나 부업 같은 도전을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도태될까 두려워한다. 관심이 없던 사람도 일정 기간 관심을 가지거나 도전해보는 기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오히려 억지로 고개를 돌려 기술적인 큰 흐름을 안 본 척하는 일에 되려 힘이 소모된다. 전통적인 손글씨로 기록하지 않아도, 실제 감정 경험에만 몰입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결과적으로 감성과 직접 해 보는 경험을 향유하는 것을 꿈꾼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빠르고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기술을 통해 궁극적인 효율과 삶의 영속성까지 추구하고 마는 것 같다.
이 과정은 인류의 경험의 멸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의 생명적인 진화'가 아닐까?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