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루는 인사담당자의 레질리언스
가족들과 같이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상의 변수들을 마주한다.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며 욕실에 허둥지둥 들어갈 때가 특히 그렇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먼저 씻은 동생이 덜렁 놔둔 슬리퍼를 아무 생각 없이 신었다가, 발이 흠뻑 젖어버리고 마는 운 나쁜 날들.
그 찝찝하고 불쾌한 순간, 나는 생각한다. '아코, 오늘도 당해버렸네.'
축축해진 신발을 신고 계속 짜증을 내느니, 얼른 벗어서 옆에 세워두고 조심스레 맨발로 타일에 올라 세수를 하는 편을 택한다. 동생이 악의를 가지고 내게 함정을 파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저 매번 짜증을 내는 것보다는, 장난스럽게 파둔 함정에 걸린 듯한 기분을 선택하는 것이 내게 훨씬 이롭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이마를 툭 치고 만다.
'아이코.'
회사에서도 이 젖은 슬리퍼를 밟는 것과 같은 날이 있다. 특히 사람의 마음과 조직의 문화를 다루는 HRBP로서, 가장 날 선 감정들이 부딪히는 '노무 이슈'를 마주할 때가 그렇다.
평가에 대한 불만, 구성원 간의 마찰, 혹은 조직의 불가피한 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들. 일이든 개인적인 관계든, 그런 종류의 부정적인 상황들은 꼭 한꺼번에 몰려와서 극심한 피로감을 준다. 갈등을 중재하고 누군가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내 감정을 쏟아붓다 보면, 간신히 길어 올린 내 마음속 우물물을 누군가 이리저리에서 낚아채 마셔 버리는 기분이 든다.
'아, 진짜 왜 그럴까. 사람 마음이 내 마음 같지가 않네.' 감정의 바닥이 드러날 때면 속으로 숱하게 삼키는 말이다.
하지만 숱한 노무 이슈의 한가운데를 지나오며 깨달은 사실이 있다. 회사의 갈등도 가족 간의 마찰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규정을 들이밀며 싸우는 듯 보여도, 사실 정말 미워서 상대를 파멸시키고자 그러는 일은 많지 않다. 밉다기보다는 '나의 억울함을, 나의 수고로움을, 나의 입장을 알아주기를 바라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일 때가 대부분이다. 동생의 젖은 슬리퍼처럼, 악의라기보다는 각자의 서투름과 여유 없음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밉다기보다는, 잘 알아주기를 바라서.
이 사실을 인지하고 나면, 날 선 말들에 베여 내 우물물을 빼앗기는 대신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서 관조할 수 있게 된다. 상대의 분노를 내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것이 내가 조직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식이다.
"밉다기보다는, 잘 알아주기를 바라서."
가까운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매일매일 좋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투성이고, 나는 내일도 어김없이 누군가가 남겨둔 젖은 슬리퍼를 밟게 될지도 모른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면을 채울 감정을 고르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아 진짜 짜증 나'라며 축축한 감정에 하루 종일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아이코 오늘도 당해버렸구먼' 하며 가볍게 털어낼 것인가.
노무 이슈라는 갑작스러운 파도가 밀려와도, 피할 수 없는 순간순간에 보다 건강한 감정들을 고르고 싶다. 축축한 감정은 욕실 한쪽에 벗어두고, 맨발로 단단한 타일을 딛고 서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 그럴듯하게 말해본다면 회복탄력성, '레질리언스(Resilience)'를 키워보려 노력하며 산다.
출렁거리는 일터에서 스스로의 안온함을 지키고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 좋다.
피할 수 없는 순간에, 내면을 보다 좋은 감정으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