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내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11월 1일.
달력에도, 휴대폰 메모에도, 셀프 카톡 창에도 자주 보는 항목마다 11월 1일을 표시해 두었다.
제8회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에 등록하기 위해 기존부터 생각해둔 소재를 반드시 이 날짜까지 멋지게 작성해 보겠다고 10월 초에 마음먹고 목차까지 써 놓고 단단히 기획하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회사를 옮기고 적응하며, 그리고 취미로 시작한 스윙댄스의 졸업 공연을 준비하는 탓에 점점 시간에 쫓기듯 어렵게 낸 시간에도 책상 앞에 앉았지만 집중력은 이미 바닥이 나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아무리 바쁜 직장인들도 영감이 떠오르면 뚝딱 하고 몇 주 만에 책을 내기도 하던데... 나는 능력의 부족인지 아니면 뚝딱이 진실은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난 자정을 넘기고 12시 2분에 제출을 눌렀고 당연히 공정한 브런치에서는 지각생을 받아 주지 않았다.
허무, 절망, 씁쓸, 분노, 원망 잡다한 부정적인 감정이 종합세트로 오더니 40분을 그렇게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다. 제출된 책들 틈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표지를 찾아보았다. 역시나 시스템은 정확했다. 그 어디에도 10편을 묶어 놓은 내 책 제목 <여기에 없는 것들이 그곳엔 있다던데>는 보이지 않았다.
작가 되기는 2020 올해의 버킷 리스트였다. 돈 모으기, 살 빼기 그런 것들은 매해 다짐하는 기본 항목이지만,
명확하고 조금은 상세하게 적어본 나의 버킷 리스트, 바로 브런치를 통하여 책 출판하기는 올해 아니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서 스스로 결정해본 가장 잘한 일이 될 것이라 예견했다. 나의 글과 생각이 어떤 이에게 잠시 어깨에 붙었다 날아가는 작은 낙엽만큼의 영향 일지라도 잠시 그들의 곁에 머물렀다 가고 싶은 책이 되길 바랬다.
너무 큰 영향을 주는 책들은 나에게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또 한편 다른 고민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난 보다 무겁지 않은 잔잔한 주파수 같은 느낌을 선호했다.
뭐 이렇게 나름 철학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커버 페이지 반장을 넘기는 곳에 내 사진과 경력과 소개를 조금 적어 놓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올해는 또 상상으로만 끝나는 건가 참으로 11월 2일 12시 2분은 나에게 잔혹했다.
40분의 허망한 시간을 보내고 조금은 담담해진 나에게 눈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근데 너, 글을 쓰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책을 내고 싶었던 거야?"
...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난 답했다.
"책은 목표고 글은 과정이지. 글이 있어야 책이 나오는 거고 그래서 난 글을 쓴 거고."
두 번째 질문이 날아왔다.
"그럼 글을 쓸 때 넌 즐거웠어?"
난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응. 즐거웠어. 중간중간 쓰다가 멈춰서 고민도 많이 했고 또 주제에서 벗어나서 지우다 쓰다를 반복했지만 내 경험과 생각을 어쨌든 글로 써 내려갔고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어보면서 나도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나를 기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묻는다.
"근데 뭐가 그렇게 아쉬워. 네가 좋아하는 건 다 여기 있는데."
놀라며 대답한다.
"책! 내 버킷리스트 책을 출판할 수 없잖아.. 1년에 한 번만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고 내년까지는 너무 오래 남았어!"
미소와 함께 답한다.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썼다면, 결국 책으로 만들어진대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는 없을 거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답한다.
"난 꼭 이루고 싶어.. 내 이야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닫혔던 문을 조용히 열며 대답했다.
"좋은 글이면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공감해줄 거야. 그리고 말하겠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라며. 목표도 중요하지만 우린 목적이 중요하잖아. 목적은 네가 책을 출판하는 게 아닌 너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임을 잊지 마. 우린 책을 내는 것보다 글을 맛있게 지어보자."
우습게도 나는 나에게 설득당했다.
나름 설득력 있는 의견으로 나를 이해시키고 결국 분노 종합 세트 대신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한 줄씩 써내려 갔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나는 공감하고 싶어 한다.
나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글로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꾸준히 사고를 넓혀가며 접근하고자 한다.
책을 위해서가 아닌 글로 나를 전하기 위해
그리고 또 전달받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