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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별 Jul 07. 2021

할머니 입에서 나온 가장 험한 말

모녀 삼대는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일본의 맛을 보러 갔는데..

할머니, 이번 여행은 일본 맛보기예요.
고향집은  다음와서 찾아요 





나는 할머니에게

집 주소를 구글에 검색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아 찾으러 가지 못한다고 말하지 못하였다.



60년 전에 살던 집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10년도 안되어 짓고 고치고 부시고 또 짓고 하는 것이 건물 아닌가. 일본은 옛 건축물을 조금 더 오래 보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60년 전 집이 그 자리 그대로 있다면 되려 기쁘고 놀라울 일이라 생각했다.


할머니에게는 말하지 못하였고, 사실 구글(인터넷 검색)로만 찾았으니 정확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일본 방문을 진행한 이유는 할머니 다리를 수술해야 할 수도 있다는 진단 결과 때문이었는데. 어릴 때 다친 한쪽 다리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여 뼈와 근육들이 크게 닳고 손상되었단다. 수술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수술을 해도 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일본 방문을 지체 없이 진행해야 했고, 고향집 찾기에서 고향의 향기 찾기로 살짝 콘셉트를 틀어버리게 되었다.




때는 LCC 항공사가 서로 경쟁하며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던 시기였다. 나도 할머니도 그리고 엄마도 첫 자유여행에 설렘을 안고 후쿠오카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나는 거의 2-3주를 일정 짜기에 바빴지만 호텔경영을 전공하던 나에게는 어쩌면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본어 실력을 실전판에서 맹렬하게 사용해볼 생각에 들떠있기도 했다.


후쿠오카 라멘 대회에서 일등 했다는 식당을 찾았다. 신기하게도 몰 꼭대기층에 위치해있었다. 블로그에 후기도 있고 일등을 한 라멘은 어떤 맛인가 궁금해서 공항에서 숙소를 들리기 전에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3박 4일 치의 짐을 이고 낑낑거리며 식당에 도착했다. 단출한 식당 하나가 나왔고 나는 속으로 역시 일본은 이런 아기자기한 음식점들이 메뉴 한 가지로 승부를 본다던데 라며 가운데 위치한 식탁에 할머니를 마주 보며 앉았다.



가장 대표적인 돈코츠라멘을 주문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일본에 도착해서 먹는 첫 끼였고 할머니께서 드디어 고향에 오셔서 맛보실 음식이라 내심 걱정도 되었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고 직원분께서 먹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해주셔서 할머니에게 전달하려는 찰나

할머니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이거 맛이 ㅈ같다!"라는 욕이 육성으로 튀어나온다. 순식간이었다. 손을 쓸 새도 아니 뭘 어찌할 시간도 없었다. 생체의 반응처럼 할머니는 라멘 국물 한입을 먹은 뒤, 내 앞에서 처음으로 험한 말을 뱉으셨다.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욕을.

엄마, 나 그리고 할머니는 동시에 눈이 마주쳤고 셋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후쿠오카 일등 라멘을 맛본 할머니의 당황한 혀가 뱉어낸 아주 통쾌하고 매운 표현이었다. 나는 놀란 와중에도 오픈 주방을 향해 고개를 획 돌렸다. 혹시나 이 엄청난 욕설을 알아듣고 누군가 토끼눈을 뜨고 우리를 보고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주 다행히도 주방도 눈치채지 못하였고 시간대가 점심을 살짝 지나서인지 다른 테이블에 손님이 없었다.


할머니 말씀을 듣고 얼마나 입맛에 안 맞으면 자동반사적으로 욕을 하셨을까 싶어 나도 엄마도 한 입씩 먹어보았다. 아주 진하고 느끼하고 신비로운 맛이 혀끝을 감싸며 우리는 끄덕끄덕 할머니에게 순응한다는 사인을 보냈다.



생각보다 일본 현지 라멘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다는 후기는 나중에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저 날은 우리 셋 모두가 라멘을 처음 먹어본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낯설고 어려운 맛이었으리라. 절대 그 후쿠오카 일등 라멘집의 맛이 이상했다거나 부족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 세 모녀는 찐 현지 맛에 놀라고 특히나 한국 음식에 적응을 더 오래 해 온 우리 할머니의 혀가 많이 놀랐다는 것. 이로 인해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얘기를 회자하며 돼지 소리를 낼만큼 실컷 웃게 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이렇게 우리 세 모녀의 일본 여행 첫날이 시작되었다. 아주 그냥 벌써 다이내믹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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