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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들 Feb 26. 2024

갈등은 해방으로 나아가는 과정

갈등이 있어서 자유로워지기도 하지

갈등을 두려워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통과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일종의 해방을 맞이할 수 있다. 갈등이 무섭고 두려운 건, 어쩌면 분리나 소외, 상실감 같은 것을 마주하게 될까 봐 그런 게 아닐까.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 이면에는 이전에 맺고 있던 관계를 -그것이 나와 주변에 해로울지라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맺고 있었던 관계에서 멀어지게 되는 상황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딘가에 소속되고 연결되고픈 건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매슬로우도 이야기 한 바 있다.


아주 오래된 심리학자의 설명이 없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고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깊고 강하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추방’하거나 ‘독방’에 가두는 것이 극한 처벌에 해당했다. 처벌까진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이별을 하게 되면 무척이나 가슴이 쓰리다. 이런 고통을 겪느니 기존에 관계를 맺으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갈등은 참고 넘어가자고 마음먹게 된다.


그런데 혹시 이별이나 상실, 단절의 고통을 실제보다 더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갈등이 벌어지면 긴장감이 생기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갈등을 겪으면서 이전부터 맺어왔던 관계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익숙한 방식을 떠나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나쁜 일일까?


돌아보면 이전의 관계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고 더 좋은 경우도 많았다. 가정 먼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슬프고 섭섭하긴 했지만, 동시에 가볍고 자유로워져서 홀가분하기도 했다.


대학에 가고 나서도 부모님께서는 여러 이유로 집에서 통학을 하길 원하셨다. 거리가 멀어서 장시간 차를 타고 다녀야 했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서 한 학기 동안은 그렇게 지냈었다. 그렇다 보니 체력이 떨어져서 쉽게 지치곤 했다. 무엇보다 대학 생활을 마음껏 즐겨 보고 싶었는데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섭섭했다.


결국 자취를 하게 해달라고 졸랐다. 처음엔 반대를 하셨지만, 고민 끝에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주셨다. 이로서 부모님과의 갈등은 매듭이 지어졌다. 그때부터 갖은 고생이 시작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벗어나 생활력을 키워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 전에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그 드라마에서는 세 남매가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한다. 장거리 통근 때문에 겪는 여러 불편함이 표현되어 있었다. 다 큰 성인 자녀가 한 집에 살면서 지지고 볶는 장면도 나오고, 부모님과 부딪히는 장면도 묘사되었다.


진즉에 집을 나온 내 입장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는 해도 삼사십 대가 되어서 부모님 밑에서 산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좁은 집에서 저러고 살고 있고, 왜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서 차를 사야 되며, 왜 어머니는 다 큰 자식들의 밥을 해먹이고 빨래를 해 주며 힘들다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 건지? 아마 나도 대학 시절 집을 나오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비슷한 모습으로 살았을지 모르겠다.


결국 드라마에서는 어머니가 밥을 하다가 돌연사를 하시고, 세 남매가 서울에 집을 얻어 살림을 꾸려 간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크지만, 결국 세 남매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며 자신의 인생을 이어 나간다.


처음 원가족에서 분리되어 독립을 할 때뿐 아니다. 사귀었던 사람이랑 헤어졌을 때, 대학원 연구실이 해체되었을 때,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등등. 잃어버리면 큰 일 날 것 같았던 관계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후에도 삶은 계속 이어졌고, 어떤 면에서 보면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갈등은 이전의 나와 결별할 수 있도록 해주곤 했다. 갈등을 겪는 순간에 겪는 긴장감과 불편함은 어떤 방식으로든 결정을 내리고 움직이게 했다. 갈등은 기존에 살던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살아가라고 채찍질을 했다. 울며불며 겨우 움직여 갈등을 통과하고, 익숙했던 생각과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보면, 결국엔 더 좋은 곳에서 원하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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